풍서기(風棲記): 세상 어디서나 바람은 분다

석릉자(石陵子 김매순)가 미수(渼水) 가의 파손된 집을 구해 수리하고서 거기에 거처하였다. 집은 본디 사랑방이 없었는데 중문(中門) 오른쪽에 기둥 셋을 세우고 그 반을 벽을 치고 방을 만들었다. 흙을 발라 놓긴 했지만 잘 고를 틈이 없고 나무는 톱질은 했어도 대패로 다듬을 겨를이 없었다. 


기와, 벽돌, 섬돌, 주춧돌, 금속, 철재 등 집에 부속되는 것은 일체의 비용을 덜고 일을 빨리 하여 화려하고 견고한 것은 꾀할 겨를이 없었다. 터는 우뚝하고 처마는 나지막하게 위로 들려 있고 창문 하나에는 종이를 발라 울타리를 겸해 놓아, 바라보면 마치 높은 나무에 지어 놓은 새집처럼 간들간들 떨어질 것만 같다.


일하는 자가, “바깥 문을 만들지 않으면 바람 때문에 고생할 것입니다.”하여, 석릉자가 그렇겠다고 하였으나, 형편이 어려워서 미처 하지 못하였다. 매번 바람이 서남쪽에서 불어와서 언덕과 골짜기를 진동시키고 숲의 나무를 흔들며 모래와 먼지를 날리고, 파도를 일으켜 강으로 곤두박질쳐 동쪽으로 나갈 때는, 창을 밀치고 문설주를 스쳐 책상을 흔들고 자리에까지 불어와서 방 구석까지 언제나 소슬하게 소리가 난다. 


이것은 마치 손백부(孫伯符 백부는 삼국 시대 오(吳) 나라 손책(孫策)의 자)ㆍ이아자(李亞子 아자는 후당(後唐)의 장종(莊宗) 의 소명(小名))가 백만의 군사를 이끌고 광대한 벌판에서 전쟁을 벌여 성 하나와 보루 하나로 그 공격을 막은 것과 같으니, 오로지 힘써서 선봉을 무찌르지 않는다면 군사가 지나가는 곳에 베개를 높이 하고 놀 사람도 드물 것이다. 그래서 이름하기를 풍서(風棲)라 하였다.


석릉자는 약관(弱冠)에 과거에 합격하여, 안으로 믿을 만한 재산이 없고 밖으로 끌어 주는 사람도 없었으나 화려한 벼슬과 요긴한 자리를 두루 겪어, 뒤처진 또래 사람들이 영화롭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신을 돌아보면 도량이 좁고 성정이 매우 옹졸하여, 걸핏하면 시세(時勢)와 어긋나, 훼방이 뼈를 녹일 정도까지는 아니지마는 전진을 막고도 남았으며, 이를 갈 정도로 시기하지는 않지만 은총을 만나는 것을 이간시키고도 남았다.(이는 김매순이 가난하게 사는 이유로 일신의 영달과 이욕을 탐하지않으며 세태에 휘둘리지 않은 강직하고 청빈한 인물임을 뜻한다.


십수 년을 관직에 있었지만 흔들려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난리가 일어났을 때, 칼날과 살촉이 미치지는 못하였으나 그물로 덮자 인적 소리가 드물어지고 금수도 끊어지고 말았다. 이리하여 여러 사람이 석릉자를 걱정하고, 석릉자 자신도 반드시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밥 먹고 물 마시는 것과 처자 봉양을 평소처럼 하였으니, 바람이 심한데도 집 안에서 돗자리를 깔고 거처하는 것과 같은 셈이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바람이란 요동치는 것이요, 깃드는 집은 편안한 곳이다. 편안해야 하는데도 요동치는 것을 면치 못하고, 요동치면서도 편안함을 잃지 않으니, 바람과 깃드는 집이 서로 순환하기를 그치지 않는 것이다. 석릉자의 뜻과 행동도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하자, 석릉자가 탄식하며 말하기를, 


“바람은 진실로 사실을 기록한 것이다. 자네가 그것을 광범하게 설명하기를 원하는가? 저 해와 달, 추위와 더위, 바람과 비, 뇌성과 벼락은 모두 하늘과 땅의 가르침이다. 그러나 해는 양을 맡고 달은 음을 맡으며, 더위는 사물을 펴 주고 추위는 움츠리게 하며, 비는 사물을 적셔 주고 벼락은 내리치니, 저들은 오로지 한 가지의 기능이 있고 그 나머지가 서로 통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바람은 그렇지가 않다. 방위를 맡아서는 사방풍이 되고, 천지의 모퉁이를 합해서는 팔방풍이 되고, 소식을 전하여 24풍이 되고, 사계절과 조화하여 72풍이 되어서 한시도 바람이 아닌 때가 없다. 북쪽 바다에서 일어나서 남쪽 바다로 들어가기까지 왕궁(王宮)과 여염집을 가리지 않고 불어대니, 한 곳도 바람 불지 않는 곳이 없으며, 큰 나무를 뽑아 버리는 일이 있지만 굽은 싹을 펴 주기도 하고, 단단한 얼음을 얼리기도 하지만 물결을 일으키기도 하니, 한 가지 일도 바람 때문이 아닌 것이 없다. 저 하늘과 땅 사이에서 형체를 받은 것이 하루라도 바람을 떠나서 설 수 있는 것이 있겠는가?


석가는 땅ㆍ물ㆍ불ㆍ바람을 사대(四大)라 하여, 형체와 바탕이 있는 것은 땅이요, 진액(津液)을 불어나게 해 주는 것은 물이요, 찌는 듯이 덥히는 것은 불이라 했다. 그러나 그것을 불거나 빨아들이거나 굽히거나 뻗게 하는 것과, 가고 멎고 앉고 눕게 하는 것과, 찡그리거나 웃거나 소리쳐 부르는 것 등 모든 몸의 운동과 한 세상의 작용이, 가는 곳마다 바람이 아닌 것이 없다. 


복희(伏羲)ㆍ신농(神農)과 오제(五帝)의 삼고 시대(三古時代)는 너무 멀고 거칠어 증명을 하지 못하나, 춘추(春秋) 시대 이후로는 관중(管仲)ㆍ안영(晏嬰)의 재주와, 장의(張儀)ㆍ소진(蘇秦)의 웅변과, 맹분(孟賁)ㆍ하육(夏育)의 용맹과, 손무(孫武)ㆍ오기(吳起)ㆍ장량(張良)ㆍ진평(陳平)의 지모와, 소하(蕭何)ㆍ조참(曹參)ㆍ방현령(房玄齡)ㆍ두여회(杜如晦)의 훈공과, 마음에 서리고 맺힌 것이 굴원(屈原)ㆍ가의(賈誼)와 같으며, 뜻을 펴고 달성한 것이 공손홍(公孫弘)ㆍ위청(衛靑)과 같고, 부유하기가 석숭(石崇)의 금곡원(金谷園)과 같고, 사치스럽기가 이덕유(李德裕)의 평천장(平泉莊) 같은 것이 높고 얕게 진탕(震蕩)하고 넓고 크게 돌고 돌다가 수천 년 안에 사라져 버리니, 바람이 허공에서 일어났다 소멸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소육(蕭育)과 주박(朱博)이 서로 천거하여 현달(顯達 세상에 나아가 높은 지위를 차지하여 자신의 이름을 드날림)하는 것과, 우승유(牛僧孺)와 이덕유(李德裕)가 서로 알력(軋轢 수레바퀴가 삐걱거린다는 뜻으로, 의견이나 입장이 서로 맞지 않아 충돌하는 것)을 둔 것은, 아침에는 바람이 화한 듯하다가 저녁에는 분란을 일으키는 것이니, 바람으로서는 작고 작은 것이라 바람이 아니라 하여도 무방할 것이다. 남도 바람이요 나도 바람이니 유독 나만 그러하겠으며, 옛날도 바람이요 지금 역시 바람이니 단지 이 집만 그러하겠는가?


생각건대, 바람에 처하는 데에 길이 있으니, 막막한 가운데 정신을 모으고 빈 데에 형체를 맡겨서, 가해 오더라도 어기지 말고 거슬러 오더라도 부딪치지 않으면 바람도 또 나를 어떻게 하겠는가? 


편안함도 없고 요동도 없고, 바람도 없고 깃들 곳도 없다면 뭐 면할 것이 있어서 기쁘겠으며 뭐 잃을 것이 있어서 두렵겠는가? 그대 말이 그럴 듯하기는 하나 그 경지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였다. 그래서 글을 써서 풍서기(風棲記)라 한다.


**[역자 주]김매순 : 김매순(金邁淳)의 자(字)는 덕수(德叟)요, 호(號)는 대산(臺山) 또는 석릉자(石陵子)이고, 안동인(安東人)이다. 정조(正祖) 을묘년(1795)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은 이조 참판에 이르렀으며, 시호는 문청(文淸)이다.


-김매순(金邁淳, 1776~1840),'풍서기(風棲記)', 여한십가문초 제9권/ 한 대산 김매순 문[韓金臺山文]-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이한조 (역) ┃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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