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사람을 안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
옛날 한(漢)나라의 적공(翟公)이 정위 벼슬을 그만두자, 찾아오는 손님이 하나도 없었는데, 그 뒤에 다시 벼슬을 하자 손님들이 다시 찾아오려 하였다. 이에 적공은 그의 집 대문에 이렇게 크게 써 붙였다.
“생사의 기로를 넘나들어 보아야만(一死一生일사일생) 사귀던 정을 알 수가 있고(乃知交情 내지교정), 한 번 가난해졌다 한 번 부해져 보아야만(一貧一富 일빈일부) 사귀던 실태를 알 수가 있고(乃知交態 내지교태), 한번 귀한 자리에 있었다가 한 번 천한 신분이 되어보아야(一貴一賤 일귀일천) 사귀던 정이 드러나게 된다(交情乃見교정내현).”
세상에서는 이것을 이야기거리로 삼았었다. 그러나 나는 일찍이 적공의 사람됨을 천박하게 보았다. 이런 까닭에 적공을 찾았던 손님들도 하나같이 비루하고 용렬하기는 하나 적공이 손님을 대하는 방법이나 마음 씀씀이도 매우 졸렬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었다.
옛날 태자태사였던 구양수 공은 선비를 좋아함이 천하에서 첫째 가는 정도였다. 한 마디 말이라도 도리에 맞는 말을 하는 선비가 있으면 천리길을 멀다하지 아니하고 그를 찾아갔는데, 선비들이 구양수공을 찾아가는 것보다 더욱 열심이었다. 그 때문에 천하의 호걸들을 모두 모아들여 용렬한 보통 사람으로서 세상에 유명해진 사람들이 참으로 많았다. 그러나 선비들 중에는 구양수 공을 배반하는 자도 가끔 있었다. 그때문에 그는 일찍이 크게 한숨을 쉬면서 '사람을 안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以人之難知 이인지난지)'고 토로함으로써 선비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훈계가 되도록 하였다.
그래서 나는 속으로 구양수공이 선비들에 대하여 약간 실망하고 낙담했으리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그가 영수의 강가로 물러나 노년을 보내고 있을 때에 내가 찾아가 뵈었는데, 선생은 여전히 선비 중의 현명한 어떤 사람에 대하여 논하면서 오직 세상에서 그 사람의 이름이 행여나 알려지지 않을까 걱정하고 염려하고 계셨다. 자신을 배반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것은 자신에게 허물이 있는 것이지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아아! 적공의 손님들은 적공을 죽고 살고 또 신분이 귀하고 천한 사이의 이해관계에서 배반했던 것이고, 구양수 공의 선비는 그들이 가진 본래 성정(性情)에 따라 구양수 공을 눈 깜작하는 잠깐 사이에 배반했을 따름이다. 적공은 손님들에게 그 죄를 돌렸으나. 구양수 공은 그 허물을 자기에게 돌리고 선비들과 더욱 두텁게 사귀었으니, 옛사람보다도 훨씬 더 현명했다.
구공(구양수)은 불교와 도교를 좋아하지 않았으나 그 무리 중에서 <시경>과 <서경>에 대한 학문이나 인의(仁義)의 이론을 공부한 사람이 있기만 하면 반드시 그를 끌어들여 힘이 되어주고 밀어주었다. 부처를 받드는 승려 혜근(惠勤)은 구공을 따라 삼십여 년이나 그와 가까이했다. 구공이 일찍이 그를 총명하고 재주와 지혜가 있고 학문을 갖춘 사람이며 더욱이 시를 잘 짓는다고 칭찬한 바가 있다.
구공이 여음에서 돌아가시자 나는 그의 집에서 곡을 하였는데, 그 이후에 혜근을 만났을 때 이야기가 구양수 공에 미치기만 하면 눈물을 흘리며 울지 않는 적이 없었다. 혜근은 본시 세상에서 추구하는 바가 없었고, 또 구양수공은 혜근에게 은덕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가 눈물을 흘리며 울면서 잊지 못하는 까닭이 어찌 사사로운 이해관계 때문이겠는가?
나는 그런 일이 있었던 뒤에야 더욱 혜근의 사람됨이 의롭고 현명함을 알게 되었으니, 만약 그가 사대부들 사이에 끼어서 공명을 다루는 일에 종사하였더라도 필시 그가 구양수공의 바램을 배반하지 않았을 것이 확실하다
희령 7년에 내가 전당으로부터 고밀로 떠나가려 할 때에, 혜근이 그의 시 약간편을 내놓고 내게 글을 써주기 바랬다. 혜근은 내 글을 통하여 그 시들이 세상에 전해지게 되었으면 했다. 나는 시란 글을 통해서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의 사람됨의 대략은 이글이 아니라면 전해질 수가 없을 것이라 여겨진다.(개인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번역글을 필사하여 옮기면서 문장과 문맥을 약간 다듬다)
-소식(蘇軾, 1037~1101 소동파 蘇東坡, 북송 시인,학자), '전당근상인시집서(錢塘勤上人詩集序)', 『고문진보후집(古文眞寶後集)』-
▲원글출처: 오세주의 한시감상실
“ 눈은 믿을 수 있는 것이지만 그 눈도 믿을 수가 없고, 마음은 의지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 마음마저 의지할 수가 없다. 사람을 안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임을 제자들은 기억하라(所恃者心也 소시자심야 而心猶不足恃 이심유부족시 弟子記之제자기지 知人固不易矣 지인고불이의) ” -공자(여씨춘추/팔람/임수[任數] )-
'고전산문(중국) > 소동파(소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전산문]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말과 태도와 행동 / 소식 (0) | 2018.06.11 |
---|---|
[고전산문]술을 마시다(飮酒) (0) | 2017.1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