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이라면
혜강(嵇康)의 쇠붙이 다루기를 좋아한 것과 무자(武子, 왕제)의 말(馬)을 좋아한 것과 육우(陸羽 당 나라 사람)의 차(茶)를 좋아한 것과 미전(米顚)의 바위에게 절한 것과 예운림(倪雲林 원(元) 예찬(倪瓚)의 자호(自號))의 깨끗한 것을 좋아한 것은, 다 벽(癖)으로써 그 뇌락(磊落, 마음이 너그럽고 사사로운 일에 얽매이지 않음)ㆍ준일(雋逸 독특하고 뛰어남)한 기개를 보인 바이다.
내가 보건대, 세상에서 그 말이 맛이 없고 면목(面目)이 가증스러운 사람은 다 벽이 없는 무리들이다. 만약 진정 벽이 있다면 거기에 빠지고 도취되어 생사(生死)조차 돌아보지 않을 터인데, 어느 겨를에 돈과 벼슬의 노예 노릇을 할 수 있겠는가?
옛적에 화벽(花癖)이 있는 이는 어디에 기이한 꽃이 있다는 소문만 들으면 아무리 깊은 산골짜기나 높은 산봉우리라도 미끄러지거나 다리를 저는 것을 꺼리지 않고 찾아가되, 혹심한 추위와 무더운 더위에 피부가 얼어터지고 땀이 비오듯 하여도 일체 아랑곳하지 않았다.
즉 어느 꽃이 피기 시작하면 금침(衾枕, 이부자리와 베개)까지 가지고 가서 그 꽃나무 아래 묵으면서, 그 꽃이 피기 시작하고 만발하고 시들고 떨어지는 과정을 낱낱이 관찰한 뒤에야 떠나는가 하면, 혹 천만 개의 꽃으로써 그 변화를 궁리하기도 하고 혹 한두 개의 가지로써 그 의취를 즐기기도 하고 혹 잎을 냄새맡아 보고 나서 꽃의 대소(大小)를 짐작하기도 하고 혹 뿌리를 보고 나서 빛깔의 홍백(紅白)을 분별하기도 하였으니, 이는 진정 꽃을 사랑한다 하겠고 또 진정 일 만들기를 좋아한다 하겠다.
그런데 석공(石公)*의 꽃을 기르는 바는 그저 고적한 시름이나 잊자는 것이지, 진정 꽃을 좋아할 줄을 아는 것이 아니다. 만약 진정으로 좋아한다면 벌써 도화동(桃花洞 선경(仙境)을 말함) 사람이 되었을 터인데, 어찌 지금까지 속세의 벼슬아치가 되어 있겠는가?
-허균(許筠, 1569~1618) '호사(好事)'부분,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한정록 제17권/병화사(甁花史)-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김주희 정태현 이동희 임정기 이재수 정기태 (공역) | 1981
*[옮긴이주]석공(石公): 명나라 원굉도(袁宏道)의 호, 이지(이탁오)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명대 말기의 문장가로 스승 이지의 영향을 받아 세속의 틀과 시류에 연연하지 않았다고 한다. 산문의 격조나 형식에 치우치지 않고 자유로운 개성을 강조함으로써 조선의 열린 문인선비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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