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책을 보는 것은 약을 복용하는 것과 같다

장횡거(張橫渠 송(宋) 장재(張載) 장자(長子)는 이렇게 말하였다. “책은 이 마음을 지켜 준다. 잠시라도 그것을 놓으면 그만큼 덕성(德性)이 풀어진다. 책을 읽으면 마음이 항상 있고, 책을 읽지 않으면 의리(義理)를 보아도 끝내 보이지 않는다.” 《장자전서(張子全書)》


안지추(顔之推 남북조 시대의 문신(文臣))는 말하였다. “재물 1천 만냥을 쌓아도 작은 기예(技藝, 갈고 닦은 기술과 재주) 한 가지를 몸에 지니는 것만 못하고, 기예 가운데 쉽게 익힐 수 있고 또 귀한 것은 독서만한 것이 없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모두 면식(面識, 얼굴을 서로 알고 있음)이 많기를 바라고(서로 아는 사람 즉 인맥이 넓기를 바라고) 일을 널리 보려고 하면서도 독서를 하려 하지 않으니, 이는 배부르기를 구하면서 밥짓기를 게을리하는 것과 같고, 따뜻하기를 바라면서 옷 만들기를 나태하게 하는 것과 같다.” 《안씨가훈(顔氏家訓)》


또 안지추는 말하였다. “독서란 비록 크게 성취하지 못하더라도 오히려 한 가지 기예는 되는 것이라 스스로 살아가는 바탕이 된다. 부형(父兄 부모형제)은 항상 의지할 수 없고, 향국(鄕國, 고향, 고국)도 항상 보호해 주지 않는다. 일단 유리(流離 정처없이 떠돔)하게 되면 아무도 도와 줄 사람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에게서 구하여야 한다.” 《안씨가훈》


설 문청(薛文淸 문청은 명(明) 설선(薛瑄)의 시호)은 말하였다. “독서는 고요하고, 여유 있으며, 자세하게 해야 마음이 그 가운데 들어가 독서의 묘미(妙味)를 얻을 수 있다. 만약 시끄럽고, 조급하게, 건성으로 하면 이른바 《중용(中庸)》에 있는 말처럼,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먹어도 그 맛을 모르게 되니, 어떻게 그 묘미를 얻을 수 있겠는가. 《독서록(讀書錄)》 ”


또 설 문청은 말하였다. “독서를 자기 심신(心身)에서 마음의 공부로써 체득하지 않으면 고금 천하의 책을 다 읽어도 무익하다.” 《독서록》


동파(東坡 송(宋) 소식(蘇軾)의 호)가 왕랑(王郞)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이 젊은 사람으로 학문이 없는 자는 매양 책 한 권을 가지고 여러번 읽어야 된다. 바다에 있는 여러 가지 보화(寶貨)를 사람들이 자기 힘에 따라 가져올 뿐 그것을 다 가져 올 수 없듯이 독서도 다만 자기가 바라는 것을 얻을 뿐이다.


그러므로 학문을 하려는 자는 언제나 한 가지 뜻을 가지고 무엇을 구해야 한다. 만약 고금(古今)의 흥망(興亡)ㆍ치란(治亂)과 성현(聖賢)의 이력(履歷)을 구하려 한다면 여기에다 뜻을 두고 구해야 하고, 다른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또 다른 사적(事跡)이나 문물(文物) 등을 구하려 한다면 역시 이와 같이 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여 학문이 이루어지면 팔방에서 질문을 해 와도 대답할 수 있게 되어 건성으로 독서한 사람과는 비교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동우(董遇, 후한(後漢)의 학자)가 경서(經書)를 끼고 틈만 있으면 외웠는데, 그는 사람들이 배우겠다고 청하여도 억지로 가르치려고 하지 않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먼저 1백 번을 읽으면 그 뜻이 자연 드러난다.” 


또 난성(欒城 송(宋) 소철(蘇轍)의 호)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책을 보는 것은 약을 복용하는 것과 같다. 약의 양이 많으면 약의 힘이 자연 퍼진다.”


왕도곤(汪道昆)의 책장의 책갈피에 쪽지를 꽃아 놓은 책이 1만 권도 더 되었다. 객(客)이 그 책들을 곁눈질해 보면 왕도곤은 말하였다. “쪽지 꽂아 놓은 책이 많다고 흠선(欽羨, 경하고 부러워함)하지 말게. 다만 내가 뒤에 찾아보는 데 편리하도록 그렇게 했을 뿐이네. 인생에 있어 꼭 필요한 책을 몇 가지를 숙독해야 하네. 이는 비유하면, 한 고조(漢高祖)가 천하를 통일하는 데 가장 뜻이 맞은 사람은 불과 소하(蕭何)ㆍ장량(張良)ㆍ한신(韓信) 세 사람에 지나지 못한 것과 같네.” 《명세설신어(明世說新語)》


-허균(許筠, 1569~1618) '정업(靜業)'부분 발췌,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한정록 제12권/정업(靜業)-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김주희 정태현 이동희 임정기 이재수 정기태 (공역) |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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