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독서 벽(癖)을 위한 규범
대저 사람이란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다 벽(僻)이 생기게 마련이요, 벽이 없으면 수고로움도 없게 마련이다.
예를 들면 산수(山水)에, 혹은 화목(花木)에, 혹은 구마(狗馬)나 환고(紈袴 귀족 자제의 의복)에, 혹은 사죽(絲竹 관현악(管絃樂))에, 혹은 술에, 혹은 차[茶]에 벽이 있어서 그 정(情)이 끌리게 되면, 마침내 은근히 주선하고 간곡히 포치(布置)하는 사이에 자기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기필하여 교룡(蛟龍)이나 호표(虎豹)의 소굴에도, 풍정(風亭, 바람부는 곳)이나 노사(露榭, 이슬이 내리는 곳)에도 회피하지 않으면서 정신력을 소모하고 시청각(視聽覺)을 다하여 논(論)을 지어 칭송하는 한편, 좇아가고 싶어하고 또 기뻐서 어쩔 줄 몰라한다.
이는 한때의 벽(癖)임에도 오히려 이러한데, 이것이 만약 글로 이루어진다면 천추(千秋)에 규칙으로 되어, 소년에서 장년(壯年)에, 장년에서 노년(老年)에, 노년에서 죽음에 이르도록 조석(朝夕)으로 몽상(夢想)이 오가고 자손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데가 없을 터이니, 이를 어찌 한때의 흥(興)에 의해 섭렵(涉獵)했다가 흥이 다했다 해서 그만둘 수 있는 일인가?
그러므로 세속에 얽매여 낭함보질(琅函寶帙 진귀한 서적이란 뜻)을 상서롭지 못한 것으로 여기고 성현의 말을 끝내 격외(格外, 현시대의 관례나 격식을 벗어나 맞지 않음)의 것으로 간주하는가 하면, 혹 동벽(東壁 문장(文章)을 맡은 별이름인데, 출세를 뜻함)의 영화를 위하여 두어(蠹魚 서적 속의 좀인데, 서적을 뜻함)를 사우(死友 정의가 돈독하여 죽도록 저버리지 않는 벗)로 삼는다. 그러나 아침에는 수족(手足)처럼 여기던 것을 저녁에는 원수처럼 미워하여, 이전의 전칙(典則,지켜야할 규범)을 한때 자기의 의사를 표현하는 도구로 이용하곤 하니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이는 다름 아니라 그 운취(韻趣)의 깊지 못한 때문에 감고(甘苦)를 조절하지 못해서다. 경우에 따라 시의(時宜)를 얻어 운취로써 거둬들인다면 몸을 의지하고 시선이 닿는 데마다 다 유쾌하여 팔삭 구구(八索九丘, 모두 고서(古書)의 이름)를 자기의 몸에서 탈락시킬 수 없는 물건으로 간주하게 될 것이다.
벽(癖)이 있으면서도 수고롭지 않고 또 벽(癖)이 있는 이와도 앞서기를 다투지 않아야만 남들도 기꺼이 양보할 것은 물론, 나더러 남의 좋아하는 것을 탈취한다고 이르지 않을 것이므로 내가 직접 실험할 수 있다. 그래서 서헌(書憲, 독서 규범 혹은 준칙)을 만들어 동지들에게 기대하는 바이다.
대저 단란한 모임만을 빌어서 운취에 끌어들일 뿐, 규칙을 만들어 절제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벽에만 전락하게 되므로 나의 실수도 여간 크지 않을 것이다. 할 것은 물론, 나더러 남의 좋아하는 것을 탈취한다고 이르지 않을 것이므로 내가 직접 실험할 수 있다. 그래서 서헌(書憲)을 만들어 동지들에게 기대하는 바이다. 대저 단란한 모임만을 빌어서 운취에 끌어들일 뿐, 규칙을 만들어 절제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벽에만 전락하게 되므로 나의 실수도 여간 크지 않을 것이다.
1. 도(徒)
대저 놀이에서 동반자를 결집하는 데 한 가지 운치스럽지 못한 것만 있어도 오히려 연운(煙雲)이 색상을 상실하게 되고 화조(花鳥)가 운치를 감소하게 되거든, 하물며 고대(高大)한 재(齋)나 은비(隱祕)한 각(閣)에서랴. 그러므로 마음을 천추(千秋)에 두되 오활하지 않은 자와 마음을 조용한 데 두되 망령되지 않은 자와 적막(寂寞)을 깨뜨릴 만한 자와 말재주는 둔하되 끝까지 앉아 있을 자와 기색이 융화하여 떠들어대지 않는 자와 고금(古今)을 전도(顚倒)시켜 마구 논박하지 않는 자와 모든 행사를 품신하고 문권(文券)을 처리하는 데 낱낱이 절차에 부합되는 자를 스승으로 높이기도 하고 혹 벗으로 사귀기도 하여야만 다 우리의 무리가 될 수 있다.
만약 대경소괴(大驚小怪)하여 남의 재주를 억누르려 하거나 음험(陰險) 불량(不良)하여 좌중을 이간한다면 서책(書冊)마저도 다 시름겨운 눈으로 보게 될 것이다. 사를 쳤던 홀[觸邪笏]과 영을 가리켰던 풀[指侫草]에 대한 사적이 업가(鄴架)에 들어 있을 것이니, 화흠(華歆)이 관영(管寧)에게 절교당한[見割] 일이 어찌 그만한 이유가 없었겠는가? 그러나 고결(高潔) 탈속(脫俗)한 인품은 혹 이목(耳目)을 떠나서 절로 부합되기도 하여 마치 서책 중에 패사(稗史)도 있는 것과 같으니, 이 점은 별론(別論)으로 취급해야 한다.
2. 의(宜)
사기(史記)를 읽을 때에는 설창(雪窓)을 이용하여 현명(玄冥)한 지감(知鑑)을 통해야 하고, 자서(子書)를 읽을 때에는 월광(月光)을 동반하여 심원(深遠)한 정신을 붙여야 하고, 불서(佛書)를 읽을 때에는 미인(美人)을 상대로 하여 적멸(寂滅)한 데 빠지지 않아야 하고, 《산해경(山海經)》ㆍ《수경(水經)》ㆍ총서(叢書)ㆍ소사(小史) 따위를 읽을 때에는 듬성한 꽃가지와 청수(淸瘦)한 대나무와 냉랭한 바위와 차가운 이끼[苔]를 가까이하여 무한한 유담(遊談)을 모으거나 표묘(縹緲)한 논설을 집약시켜야 하고, 충렬전(忠烈傳)을 읽을 때에는 생황[笙]을 불거나 비파를 뜯어서 그 방혼(芳魂)을 들춰내야 하고, 간녕론(奸佞論)을 읽을 때에는 검(劍)을 휘두르거나 술을 들이마셔서 그 분기(憤氣)를 해소시켜야 하고, 소(騷 운문체의 하나)를 읽을 때에는 공산(空山)에서 슬피 부르짖어야 산학(山壑)을 놀라게 할 수 있고, 부(賦 문체(文體)의 이름)를 읽을 때에는 물가에서 미친 듯이 부르짖어야 바람을 일으킬 수 있고, 시사(詩詞)를 읽을 때에는 가동(歌童)을 시켜 박자를 치도록 해야 하고, 귀신에 관한 잡록(雜錄)을 읽을 때에는 촛불을 밝혀서 유명(幽冥)을 깨뜨려야 한다. 기타는 그 경우가 다르고 또 운치가 일정하지 않다.
대저 미공(眉公 명 진계유(陳繼儒)의 호)이 더위를 해소시키고 추위를 물리치던 예도 그 뜻에 적의(適宜)했다 하겠으나 어느 때인들 산질(散帙 소임이 없이 한산한 벼슬아치)이 될 기회가 아니겠으며, 어느 곳인들 엄권(掩卷 책을 읽지 않고 노니는 것)할 장소가 없겠는가. 괜히 숙야(叔夜 진(晉) 혜강(嵇康)의 자, 성격이 대쪽같이 모나기로 유명한 죽림칠현중의 한 사람)의 게으르다는 핑계[嬾托]를 내세워 구실로 삼을 필요가 없다.
3. 진(珍)
진장(珍藏)이란 꼭꼭 싸 둔다는 뜻이 아니다. 비유하건대, 홍안(紅顔 미인의 얼굴)을 어찌 줄곧 황금옥(黃金屋)에만 감춰둘 수 있겠는가. 만약 봄바람[春風 미인을 비유]이 동작대(銅雀臺 조조(曹操)가 건축한 것인데 호화로운 대(臺)의 대명사로 쓰임)에만 갇혀 있었던들 왕소군(王昭君)의 비파곡(琵琶曲)이 어떻게 먼 호지(胡地)에서 나왔겠는가. 그러므로 장중(掌中)에나 회중(懷中)에 두고서 은근히 애호해야만 헛것이 안 된다.
따라서 서적을 진장(珍藏)하는 데도 금보(錦寶)로써 함축(函軸)을 만들고 오색(五色)의 아참(牙籤 열람의 편리를 위한 장서(藏書)의 표지)만 붙일 뿐 아니라 신혼(神魂)을 서적에 쏟아 마치 한 나라의 구슬[漢珠 합포(合浦)에서 생산되던 구슬)]을 장중에 두고서 마음대로 애호하듯 차마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여야만 진짜이다.
만약 그렇지 않고 잔뜩 싸놓기만 하면 한갓 푸짐한 눈요기만 될 뿐이니 서적이 나에게 무슨 도움을 주겠는가. 이는 도리어 천(賤)하게 될 뿐이니 어찌 진장(珍藏)이라 하겠는가.
4. 축(蓄)
일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은 우연히 감상할 만한 것을 만나게 되면 아무리 귀중한 숙상구(鷫鸘裘)라도 선뜻 내놓고 쫓아간다. 그러나 서책만은 돈의 여유가 있어야 구입할 수 있다. 대저 기이한 서적은 잃어버리는 예가 많으므로, 자신이 한평생 기호(嗜好)하는 서적이나 책상 위에 없어서는 안될 서적이나 천하에서 구경하지 못한 서적은 마치 명주보완(明珠寶玩)처럼 수장(收藏)하려 하니, 옛사람의, “가산(家産)이 탕진되는 것도 불고한다.”는 말이 바로 이를 말한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서적을 구입할 만한 재력이 없을 경우에는, 노온서(路溫舒 한(漢) 나라 때 사람)처럼 부들잎을 엮어서 서책을 쓰거나 손경(孫敬 한 나라 때 사람)처럼 버들잎을 엮어서 경서(經書)를 쓰거나 범왕(范汪 진(晉) 나라 때 사람)처럼 불을 지펴 놓고 서책을 써서 독송(讀誦)하거나 유향(劉向 한 나라 때 사람)처럼 남의 고용자가 되어 글을 읽음으로써 그 소득이 바로 진장(珍藏)이 되고 한 권의 서책이 천고(千古)의 부인(富人)이 될 수 있다. 어찌 꼭 혜시(惠施)의 오거서(五車書)와 장화(張華)의 삼십승(三十乘)을 수장(收藏)하여 적석산(積石山)이나 봉래산(蓬萊山)으로 곳집을 삼은 뒤에야 부인(富人)이라 칭하겠는가?
5. 친(親)
대저 한궁(漢宮 한 나라의 궁중)에 가득찬 3천 명의 후궁도 그 동행자(同倖者 임금의 총애를 받고 있는 동료)를 투기했고 맹진(孟津 주 무왕(周武王)이 은(殷)의 주왕(紂王)을 칠 때 8백의 제후(諸侯)와 집결했던 곳)에 모인 8백의 제후도 다 한 나라의 군주였다. 겨우 한 장의 편지로도 전체의 뜻을 이해하는 이도 있으나, 사람의 총명에는 그 한계가 있으므로 마음이 박종(博綜)한 데 치닫고 부유(浮游)한 데 들뜨면 청각(聽覺)과 시각(視覺)이 어지럽게 된다.
그러므로 정기(精奇)한 것만을 골라서 침장(枕帳) 안의 비장(祕藏)으로 삼기를 마치 군중(軍中)의 효장(梟將)이나 궁중의 절색처럼 하여야만 거리가 날로 가까워지고 정리가 날로 친절해진다. 그럼 빈사(嬪使 미천한 내관(內官))들을 그 소친(所親 자기가 좋아하는 대상)의 측근에 보내어 뜻밖의 어려움에 대비하게 하고 은밀한 총애를 주어야지, 어찌 널리 사랑을 주다가 그 소친을 잃을 수 있겠는가?
저 서점(書店)에 가서 책들을 탐독한 왕충(王充 후한(後漢) 때 사람)이나 글을 한 번만 보고도 바로 통한 양웅(揚雄 한 나라 때 사람)이나 서음(書淫 서적에 탐닉하는 것)이란 칭호를 받은 현안(玄晏 진(晉) 황보밀(皇甫謐)의 호) 등은 내가 아예 곡학(曲學 사곡된 학술, 학문을 왜곡하여 입맛대로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으로 한정짓는 바이다.
6. 형(刑)
형(刑)이란 사실대로 색출해 내는 것을 말한다. 그럼 도(陶) 자를 음(陰) 자로, 어(魚) 자를 노(魯) 자로, 해(亥) 자를 시(豕) 자로 오기(誤記)한 자는 과오죄(過誤罪)에 해당하고, 증삼(曾參)이 사람을 죽였다고 말한 자나 손빈(孫臏 전국 시대 제(齊) 나라 사람)의 발을 자르게 한 자나 반첩여(班婕妤 한 성제(漢成帝)의 후궁)의 은총을 질투한 자는 무고죄(誣告罪)에 해당하고, 설씨(薛氏 당(唐) 설수(薛收))의 《원경설씨전(元經薛氏傳)》이나 양웅(揚雄)의 《논어(論語 《논어》를 의방해서 지은 법언(法言)을 말함)》와 왕망(王莽 한(漢)을 찬탈하고 신(新)을 세웠음)을 위해 부명(符命 문체(文體)의 이름인데, 양웅이 왕망의 공덕을 찬양한 것을 말함)을 지은 자나 조조(曹操)에게 구석(九錫 공신(功臣)에게 특별히 내리는 거마(車馬)ㆍ의복(衣服)ㆍ악기(樂器) 등 90가지 은전)을 내리게 한 자는 반역죄(叛逆罪)에 해당된다.
사건의 형적(形迹)이 모호할 경우에는 당연히 엄격한 법관(法官)을 본받아서 심리해야 한다. 헌원경(軒轅鏡 황제 헌원씨(黃帝軒轅氏)가 만든 거울)이 나의 눈앞에 환한데, 형적을 감춘 죄인의 죄상을 낱낱이 색출해내지 못한다면 기록되어 있는 형서(刑書)가 한낱 휴지조각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그럼 모쪼록 세밀히 심리하여 단안을 작성하고 또 공초를 받아서 억울한 죄인을 석방, 소루한 법망(法網)을 보완함으로써 천년 이후에 나더러 시비(是非)에 정확했다고 하도록 해야만 옛사람이 나에게 쓸모없는 입과 귀를 맡겨 준 결과가 되지 않을 것이므로 형(刑)이라 한다.
7. 임(臨)
《좌전(左傳)》에 ‘하늘이 너의 머리 위에 임(臨)해 있다.’ 하였고 《시경(詩經)》에 ‘마치 깊은 못[淵]가에 임해 있듯이 한다.’ 하였으니, 여기에는 외경(畏敬)과 긍지(矜持 자신을 눌러 조심하는 것) 두 가지의 의의가 있다. 책상과 서가(書架)에 가득 쌓인 서적에는 옛 성현이 의지하여 있으니, 한 조각 한 치의 종이엔들 어찌 빈말[空言]이 씌어졌겠는가?
하늘이 나에게 불가환(不可逭 자기가 지은 허물은 도저히 회피할 수 없다는 뜻)의 의(義)를 부여하였으니, 훈고(訓誥)에 충실하기를 행여 남보다 뒤질까 걱정해야 한다. 만약 성현의 초자(肖子 어진 아들이란 뜻)가 되지 못하면 명교(名敎)의 죄인이 되고 하늘을 경홀(輕忽)히 여기면 곧 밑바닥으로 타락하게 되니, 그 세교(世敎)에 주는 도움이 얼마나 대단한가. 만약 서적을 기이한 향(香)에 쐬거나 비단으로 포장하거나 향초(香草)로써 두충(蠹虫)을 물리치거나 이슬로써 손을 씻는 등 외모만 장엄하기를 힘쓰면서 불자(佛子)의 장경(藏經)과 도가(道家)의 비록(祕籙) 따위나 지송(持誦)한다면 자신에게 아무 도움도 없거든, 하물며 장식용으로 삼아서 마치 아이들의 장난처럼 뒤적일 수 있겠는가?
지리낭자(支離狼藉)하게 간수하면 경사(經史)도 혼(魂)이 나가게 되고, 난잡회명(亂雜晦冥)하게 다루면 영웅도 기(氣)를 상실하게 된다. 하늘의 감시가 바로 가까이 있는데, 내 어찌 감히 쓸데없는 말을 하겠는가.
8. 범(範)
밭을 매면서 독서(讀書)하던 상림(常林 삼국 시대 위(魏) 나라 사람), 쇠뿔에 《한서(漢書)》를 걸어놓고 소를 먹이면서 읽던 이밀(李密 당 나라 사람), 땔나무를 팔아서 독서하던 갈홍(葛洪 진(晉) 나라 사람), 마른 풀로 불을 지펴놓고 독서하던 이강(李康 원 나라 사람), 보리가 빗물에 떠내려가는 줄도 모른 채 독서하던 고봉(高鳳 후한(後漢) 때 사람), 남의 양(羊)을 치면서 독서하다 양을 잃어버렸던 왕육(王育 전조(前趙) 때 사람), 금(金)을 주웠다가 도로 버리고 독서에 전력하던 악양자(樂羊子 후한 때 사람), 나무하던 도끼를 내던지고 취학(就學)하던 문옹중(文翁仲 옹중은 후한 문당(文黨)의 자), 성인의 유서(遺書)를 힘써 독송하던 공총자(孔叢子 서명(書名)인데, 여기는 진(秦) 나라 때 공부(孔鮒)를 말함), 생업(生業)을 불고하고 독서하던 주매신(朱買臣 한 나라 때 사람), 나의 도가 동으로 옮겨간다[吾道東]고 한 마계장(馬季長 계장은 마융의 자), 기자(奇字 문자(文字) 육체(六體)의 하나. 즉 고문(古文)이면서 다른 것)를 가르쳤던 양자운(揚子雲 자운은 양웅의 자), 산곡(山谷)에 숨어 고용살이하면서 독서하던 환영(桓榮 후한 때 사람), 자명 무쌍(慈明無雙)이란 칭찬을 받던 순상(荀爽), 언치[牛衣]를 팔아 독서하던 유식(劉寔 당 나라 때 사람), 죽순 껍질로 산건(山巾 산인(山人)의 두건(頭巾))을 만들어 썼던 동알(董謁 후위(後魏) 때 동밀(董謐)의 오기(誤記)인 듯하다), 벽(壁)을 뚫어놓고 남의 집의 등불을 빌어 독서하던 광형(匡衡 한 나라 때 사람), 좌탑이 패인[穿榻] 관영(管寧), 옥산이 사람에게 반사된 것 같다[玉山照人]는 칭찬을 받은 배해(裵楷), 여화를 감응시켰던[藜火分色] 유향(劉向), 상투를 대들보에 매달아 놓고 독서하던 소계자(蘇季子 계자는 전국 시대 소진(蘇秦)의 자), 흔연히 벌주를 받아 마셨던 소자미(蘇子美 자미는 송(宋) 소순흠(蘇舜欽)의 자) 등 그 운치가 갖가지이니, 다 나의 스승이다.
9. 적(適)
산들바람이 불 때, 맑은 이슬이 내릴 때, 가벼운 배[舟]를 탈 때, 높다란 누각에 오를 때, 산비 내릴 때, 계운(溪雲)이 피어오를 때, 미인들에게 향(香)을 나눠주는 때, 고사(高士)들이 죽림(竹林)을 방문하는 때, 새가 조용하게 우는 때, 꽃이 차갑게 웃는 때, 낚시꾼들이 안개와 물기운을 띠고 서로 맞아 주는 때, 늙은 중이 게송(偈頌)을 물을 때, 하인이 유한(柔翰 붓[筆]의 별명)을 희롱하는 때, 침상 위에 술독이 놓인 때, 구름 사이에 학(鶴)이 나는 때, 차를 맛본 뒤에 낙엽을 쓰는 일, 가부좌(跏趺坐)하고 있다가 산보(散步)하는 일, 고적(古蹟)들을 전시하는 일, 앵무새를 길들이는 일 등, 흥에 맞는 대로 운용하여 신정(神情)이 너무 삭막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태사(太史) 풍개지(馮開之 명 풍몽정(馮夢禎)의 자)가 말하기를, “독서하는 데 너무 좋아하면 산만해지고 너무 싫어하면 간삽(艱澁)해진다.” 하였는데, 이 말을 세 번 되풀이해 보면 나의 의취와 절실히 부합된다.
10. 배(配)
대저 단편으로 된 글을 읽을 때에는 빨리 끝나는 것을 아쉬워하고, 장편으로 된 글을 읽을 때에는 빨리 끝나지 않는 것을 괴로워하고, 폄격(貶激)한 글을 읽을 때에는 머리칼이 곤두서게 되고, 통쾌한 글을 읽을 적에는 타구(唾具)가 깨어지게 되고, 방패(滂沛)한 글을 읽을 때에는 흉금이 활짝 열리게 되고, 울분에 찬 글을 읽을 때에는 마음이 슬퍼지게 되고, 허무한 논설을 읽을 때에는 마음이 허황해지게 되고, 우유(迂儒)의 진부(陳腐)한 글을 읽을 때에는 곡신(谷神 사람의 오장(五臟)을 기르는 신(神))이 사멸(死滅)되고, 은사(隱士)의 글을 읽을 때에는 그 상(相)을 따져서 신(神)을 궁리하려 하게 되고, 까다로운 글을 읽을 때에는 편리한 대로 따라 자의(自意)를 맞추려 하게 되고, 결루(缺漏)된 글을 읽을 때에는 보완하기를 생각하게 되고, 몽롱한 글을 읽을 때에는 참고하기를 생각하게 되고, 적막한 글을 읽을 때에는 목이 타기 전에는 트이지 않게 되고, 화려한 글을 읽을 때에는 청화(淸華)해지거나 부미(浮靡)해지게 된다.
그러므로 어느 한 서책을 읽을 적마다 반드시 다른 글을 곁들여서 편고(偏苦)한 정(情)과 비희분쾌(悲喜憤快)한 마음을 조절하여 제각기 적절한 데 돌아가도록 함으로써 읽기를 그만두고 탄식하거나 책을 덮고 실소(失笑)하는 일이 없으니, 이것이 곧 배(配)의 본지가 된다.
11. 호지(護持)
서재(書齋)는 그윽한 것이 좋고, 난간은 굽이진 것이 좋고 수목(樹木)은 성긴 것이 좋고, 담쟁이 덩굴[薜蘿]은 푸르게 드리워진 것이 좋고, 궤석(几席)ㆍ난간ㆍ창문은 추수(秋水)처럼 깨끗한 것이 좋고, 좌탑(坐榻) 위에는 연운(煙雲)이 떠 있는 것이 좋고, 묵지(墨池)와 필상(筆牀)에는 수시로 꽃향기가 풍겨져 있는 것이 좋고, 필경(筆耕)하는 데는 사리에 밝은 사람의 배려를 받는 것이 좋고, 아첨(牙籤)을 부착하는 데는 재치스러운 하인이 있는 것이 좋다. 독서하는 데 이상과 같은 호지(護持)를 얻는다면 만권(萬卷)의 서책에 모두 다 환희를 느끼게 되어서, 아무리 온유향(溫柔鄕)이나 신선경(神仙境)이라도 부러워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12. 감계(鑑戒)
망령된 훈계와 쓸데없는 비평으로 영웅들의 호언장담을 잘못 인용하며, 문 밖에 나가서는 괜히 낙화(落花)를 밟거나 착란한 별들을 가리키며, 완전한 서책을 훼손(毁損)시키거나 부질없이 패거리들과 동반(同伴)하여 속자(俗子)에게 글자를 물으며, 취한 녀석이 당돌히 호상(胡床)에 걸터앉아 귀신에 대한 말을 마구 지껄이며, 편견(偏見)만을 내세워 검적(檢迹 행실의 잘잘못을 점검하는 것)하는 일을 변란시키며, 비바람을 방어하지 못하여 서황(書幌 서재(書齋)에 치는 휘장)과 운사(韻事 시가서화(詩歌書畫) 등 운치 있는 일)를 방해하는 어려움이 있으므로 몇 가지 경계를 대충 뽑아 놓았으니, 부디 조심하여 나의 글을 욕되게 말고 나의 침상(寢牀)을 범하지 말고 나의 의상(衣裳)을 전도(顚倒)시키지 마라.
부(附) 서(敍)
대저 천도(天道)는 서리가 내린 뒤에야 만물(萬物)이 성숙하고 인정(人情)은 법도가 확립된 뒤에야 행세할 수 있으므로 헌(憲)이 아니면 율(律)을 굳힐 수 없고 율이 아니면 헌을 받들 수 없으며, 왕자(王者)의 제도가 지켜지는 곳이라야 문리(文理)도 통하게 된다. 경생(經生)들은 칠예(七藝 중고 시대의 학교 과목인 삼학(三學)과 사술(四術)의 합칭인 듯하다)에 손을 묶고, 운사(韻士)들은 사성(四聲 한자음(漢字音)의 평성(平聲)ㆍ상성(上聲)ㆍ거성(去聲)ㆍ입성(入聲))에 겁을 먹게 되는데, 법도를 잃은 자는 월형(刖刑)을 가해야 하고 요점을 잃은 자는 밥을 굶겨야 한다.
머리털이 하얗도록 중랑서장(中郞署長 한(漢) 나라 풍당(馮唐)을 말함)에 머무른 것 또한 출세이니, 청산(靑山)이 절로 늙는 것은 아무리 왕(王)이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오늘에는 연왕(燕王)을 달래고 내일은 초왕(楚王)을 달래다가 그만 풍진 속에 지쳐버리고 말곤 하니, 어찌 채찍을 갈다가 검(劍)을 얻고 검을 갈다가 침(針)을 얻는 줄을 알겠는가?
농괄(籠括 천하를 주름잡는 것)하려다가 세월만 흐를 뿐, 영척(寧戚 전국 시대 현인(賢人))이 소 먹이던 들판에 온전한 소[全牛 현인이 없음을 비유]가 없다. 이전에는 보리[麥]가 비에 떠내려가는 줄도 모른 채 독서에 도취되어 하루에 한 권의 서책이 떨어지고 붓[筆] 세탁에 못물이 검어진 나머지, 그들의 소매(笑罵)도 다 문장이 되고 놀이도 다 전칙(典則)이 되었으므로 요즈음 서헌(書憲)을 만들어 공부를 도우려 한다.
예를 들면, 칼을 막 숫돌에서 갈아내면 부용(芙蓉 강 이름)도 갈라지고 비단을 화축(畫軸, 족자)에 배합하면 광채가 찬란하다는 말은 다 절실한 말이다. 어찌 해학에서 나온 것이겠는가? 세상에서 식견이 있는 자는 글자마다 주옥(珠玉)이고, 식견이 깊은 자는 말마다 혈성(血誠, 진실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정성, 진정성)인 것이다. 그래서 나도 일부를 만들어 일 만들기 좋아하는 이들의 오락을 제공하고, 다음 전서(全書)에 수록하여 시문(詩文)하는 이들의 감상을 넓히는 바이다.-유사엽(兪思燁) 서.
-허균(許筠, 1569~1618) '서헌(書憲)',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한정록 제19권-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김주희 정태현 이동희 임정기 이재수 정기태 (공역) ┃ 1981
★옮긴이 주: 이덕무가 스스로를 '책만 읽는 바보'라 한 반면, 허균은 스스로 '성질이 더럽고도 오독하며 성기고도 거칠다'고 공언한다. '오독하다'라는 말은 ' 삐딱하다'고 이해하면 되겠다. "나의 성품은 더럽고도 오독하며 성기고도 거칠어서 권모없고 술수도 모르는데다 아첨까지도 할 줄 모른다네. 하나라도 맞지 않으면 잠시라도 참지를 못해 남 칭찬하는 이야기가 나오면 입이 벌써부터 더듬거려진다네. 권세 있는 집 대문에 이르면 발꿈치가 일찌감치 쑤셔대고 높은 이들에게 절 하려면 몸이 마치 기둥처럼 뻣뻣해 진다네"('나를 나무라는 자에게'). 여러 설에 의하면, 허균에 대한 인물평은 극단을 치닫는다. 이러한 사실을 허균 자신도 잘 아는듯 하다. "나는 평생 동안 가장 심하게 비방만 받았다. 해가 가고 날이 갈수록 비방이 더욱 신기(新奇)해졌으나 들을수록 털끝만큼도 괘념치 않았으며 또한 스스로 해명하려 하지도 않았다. 오래가면 혹 저절로 해소되기도 하는데 지금까지 15년 동안을 그렇게 해 나왔다.(큰조카에게 답하는 글)".
'세속의 부귀영화, 세상의 평판, 삶의 부침과 생사에 연연치 않아 세상이 보기에 성질 더러운 현인' 이런 류의 대표적인 역사인물은 중국 위진시대 죽림칠현의 중심인물인 혜강이 손꼽힌다. 당연히 허균도 자주 혜강을 들먹인다. 벽(癖)의 관점에서 기록으로 보면, 이덕무는 원칙을 고수하는 우직하고 청명한 바보라 한다면, 허균은 그나마 풍류와 운취를 즐길 줄 아는 꼿꼿한 바보다. 개인적으로 허균의 직설적인 글에서도 그만의 화려한 운취와 느낌이 물씬 풍긴다. 이들 옛 바보들이 가진 벽(癖)의 특징은 세속에 구애되지 않고 괘념치 않는, 뜻이 확고한 의지과 몰입에 있다.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이옥(李鈺, 1773~1820)도 이런 점에선 이들과 어깨를 견줄만 하다.
어째튼 여타의 옛 선현들도 그렇지만, 허균의 독서규범, 서헌을 통해 의식이 깨어 있는 옛 어른(선비)들이 독서에 임하는 자세는 입신양명의 과거시험용, 혹은 단순한 지식함양의 차원이나 또는 단순히 좋아하는 일(好事)로써의 취미생활을 넘어서 있음을 본다. 위의 글처럼 그들이 쓴 산문도 그렇지만, 심지어 개인사적인 편지글에서 조차 깊이와 넓이가 있는 방대한 독서의 흔적이 논거가 분명한 깊이 있는 식견과 인격의 품격과 속멋으로 고스란히 드러나며, 한결같이 이우보인의 정신이 깃들어 있고 의취(意趣)와 함께 사람냄새를 그윽히 풍긴다. 당연히 남녀불문 혀가 꼬이는 서구식 교양의 프레임을 고상한 지성과 실용의 잣대로 삼는 현대의 북곽선생들 그리고 '바담풍' 향원류의 꼰대들과는 그 차원의 깊이부터 다르다. 독서(혹은 취미, 취향)를 자기를 내세우기 위한 방편이나 변설, 자기과시용의 겉멋과는 무관한 것으로 허투로 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여튼 우리네 옛 선현들이 여러 형태의 글들을 통해서 독서에 대한 나름의 여러 원칙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특히 허균은 아예 서헌(書憲)이라는 독서 규범을 만들어 놓고 뜻이 맞는 지우들과도 교류하였음을 글을 통해 추측할 수 있다. 다른 옛 선현들이 강조하는 것들과 비슷한 맥락으로 조목조목이 구체적이다. 다만 번역문에 인명과 한자어가 많아 읽기가 쉽지는 않다는게 다소 아쉽다. 통독에 호흡을 요하고, 한자어 사전을 뒤지는 수고와 인내를 요한다. 그럼에도 그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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