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소인론(小人論)
요즈음 나라에는 소인(小人)도 없으니 또한 군자(君子)도 없다. 소인이 없다면 나라의 다행이지만 만약 군자가 없다면 어떻게 나라일 수 있겠는가? 절대로 그렇지는 않다. 군자가 없기 때문에 역시 소인도 없는 것이다. 만약 나라에 군자가 있다
면 소인들이 그들의 형적(形迹)을 감히 숨기지 못한다.
대저 군자와 소인은 음(陰)과 양(陽), 낮과 밤 같아서 음(陰)이 있으면 반드시 양(陽)이 있고 낮이 있으면 반드시 밤이 있으니, 군자가 있다면 반드시 소인도 있다. 요ㆍ순 때에도 역시 그랬는데 하물며 뒷세상에서랴.
대개 군자라면 바르고 소인이라면 간사하며, 군자라면 옳고 소인이라면 그르며, 군자라면 공변되고 소인이라면 사심(私心)을 지녔으니 윗자리에 있는 사람이 사정(邪正)ㆍ시비(是非)ㆍ공사(公私)의 판단으로써 살핀다면 저들 소인들이 어떻게 감히 그들의 실정(實情)을 숨길 것인가?
요즈음의 이른바 군자ㆍ소인이란 서로간에 큰 동떨어짐이 없다. 자기들과 뜻을 같이하면 모두 군자로 여기고, 달리하면 모두 소인으로 여긴다. 저편이 이쪽과 다르다면 배척하여 사(邪)하다 여기고, 이편과 같이 뜻하는 사람이라면 치켜 세워 정(正)이라 여긴다. 시(是)란 그들이 옳다고 여기는 것이 시이고, 비(非)란 그들이 그르다고 여기는 것이 비이니, 이건 모두 공(公)이 사(私)를 이길 수 없는 이유로 그런 것이다.
진실로 대인 군자(大人君子)로서 학행(學行)과 재식(才識)이 한 시대의 대표되는 사람으로 하여금 나와서 높은 지위에 있도록 하여, 모든 관료들을 권장해 주고, 신분 높은 대부(大夫)들로 하여금 모두 바름을 지키고 공(公)에 봉사하며 시비(是非)의 분별을 밝힐 줄 알게 해 준다면, 한 시대의 음흉한 붕당 떼거리들이 장차 면모를 개혁하는데 시일이 걸리지 않으리라. 어떻게 감히 사분오열(四分五裂)하여 함부로 날뛰는 짓을 요즘같이 하겠는가? 그렇다면 음흉한 붕당 떼거리들의 해로움은 소인들이 국권을 전횡함보다 심한 것이 분명하다.
나라에서 소인들을 미워하는 것은 그들이 나라를 병들게 하고 백성들을 해롭게 하는 것을 미워해서이다. 오늘날 나라에 해를 끼치고 백성을 병들게 하는 것은 권간(權奸, 권력과 세력을 가진 간신)이 국정을 쥐지 않고도 이처럼 극도에 이르렀음은, 모두 사의(私意)가 크게 행해져서 권한이 한 곳에서 나오지 않고, 기강(紀綱)이 이미 무너져 다시는 진작시킬 수 없는 때문이다.
이른바 권간(權奸)이라는 자들도 있었다. 김안로(金安老)가 일찍이 농간을 피웠고, 윤원형(尹元衡)도 일찍이 전권을 휘둘렀다 요즘에는 최영경(崔永慶) 역시 전횡하고자 하여 자기 자신만을 이익되게 하고 자기와 뜻을 달리하는 사람들을 배척했음은 동일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나라의 기강에 있어서는 여전했었으니 이건 다름이 아니라 권한이 한 곳에서 나왔던 까닭으로, 전천(專擅, 자기독단으로 결정하고 행사함)하던 사람이 물러가면 곧바로 예전대로 회복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렇지 않아 권한이 나오는 곳이 여러 군데이고, 자신만을 이롭게 하며 자기와 달리하는 사람을 배척하는 것은 사람마다 모두 그렇다. 그런 것을 물리치려고 한다면 이루 다 쫓아낼 수가 없고, 나라의 기강도 끝내 수습할 수가 없게 된다.
오호라, 어떻게 하여야 소인들이 국권을 전횡하게 했다가, 그들이 세력을 펼치지 못할 때 공격하여 제거할 수 있을까? 또 어떻게 하여야 대인 군자(大人君子)가 나와서, 풍동(風動, 스스로 감화됨)하여 그처럼 음흉한 부당들을 해산시킬 수가 있을까? 때문에,“지금의 국가에는 소인도 없으니 또한 군자도 없다.”하였다.
또 하나를 말해보면, 옛날의 이른바 소인이라던 자들은 그들의 학문은 그들의 변설(辯說)을 돕기에 충분했으며, 그들의 행실은 세속을 속이기에 충분했었고, 그들의 재주도 사태의 변화에 적응하기에 충분하였다. 그러므로 그가 지위에 있는 동안에는 사람들이 그의 내심을 헤아리지 못했고, 충분하게 그가 하고 싶은 대로 행하였다.
그들이 군자와 다른 것은 오직 공(公)과 사(私)라는 아주 작은 차이지만 그들이 끼치는 화란은 오히려 참혹했으니, 하물며 재행(才行)과 학식(學識)도 없으면서 오직 좋은 벼슬만 탐내며 요직에만 기를 써서, 구차스러운 태도를 하는 사람들이 조정(朝廷)에 가득 찼다면, 그 화는 마침내 어떠한 정도이랴.
그러므로, “음흉한 붕당의 해는 소인이 조정을 전횡하는 것보다 심하다는 것이 분명하다.” 했었다.
-허균(許筠, 1569~1618) '소인론(小人論)',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제11권/ 문부(文部) 8 /논(論)
**[역자 주]
1. 김안로(金安老) : (1481~1573) 중종 1년 과거에 합격하여 여러 벼슬을 거쳐 좌의정에 이르렀다. 권력 남용이 잦아 귀양도 간 적이 있으나 정적이라면 공경(公卿)ㆍ종친(宗親)도 상관 없이 축출하고 살해하면서 전횡무도한 공포정치를 하였다. 마침내 유배 가서 사사(賜死)되었다. 정유삼흉(丁酉三凶)의 한 사람이다.
2. 윤원형(尹元衡) : (?~1565) 과거에 합격한 후 영의정에 이르렀다. 포악했던 정치가로 20년 동안 집권하여 온갖 짓을 다했다. 유배 가서 죽었다.
3. 최영경(崔永慶) : (1529~1590) 조선 시대의 학자. 호는 수우당(守愚堂). 조식(曺植)의 문인 정여립(鄭汝立) 모반 사건에 연루되어 무고하게 서인에 의하여 죽음을 당했으나, 뒤에 복관되고 대사헌에 추증되었다.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임형택 (역) ┃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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