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모습과 거리가 자꾸 멀어지는 까닭

옛날에 원민손(袁愍孫)이 부상시(傅常侍)의 청덕(淸德)을 칭송하면서, “그 문을 지날 때면 고요하여 사람이 없는 듯하다가, 막상 그 휘장을 걷고 보면 그 사람이 거기에 있다.”했는데, 나는 매양 눈 속을 걸어가서 쪽문을 열고 매화를 찾을 때면 문득 부상시의 청덕을 느낀다오.(☞석치에게 보낸 첫번째 편지 之一/ 역자주 참조)


“군자의 도는 담박하면서도 싫증 나지 않고 간결하면서도 빛이 난다.”(君子道淡而不厭簡而文)했는데, 이 말은 바로 매화를 위한 칭송인 것 같소. 소자첨(蘇子瞻)이 도연명(陶淵明)의 시를 논하면서 “질박해 보이면서도 실은 화려하고, 여위어 보이면서도 본래는 기름지다.” 했는데, 이로써 매화에 빗대어 말하면 다시 더 평할 말이 없지요.(☞之二)


옛날에 이 학사(李學士) 어른을 모시고 계당(溪堂)으로 매화 구경을 갔는데, 그 어른이 위연(喟然)히 탄식하며 말하기를, “곽유도(郭有道)는 도도하면서도 속세를 끊지 않았고 부흠지(傅欽之)는 맑으면서도 화려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뜻밖에도 홀로 빼어난 향기로운 꽃 매화가 이 두 가지 덕을 갖추었단 말인가.”라고 했지요.(☞之三)


《시경》과 《서경》에는 매화를 말하면서 열매만 말하고 꽃은 말하지 않았는데, 우리들은 지금 매화시(梅花詩)를 지으면서 향기를 평하고 빛깔을 견주어 꽃의 아름다움을 음미하면서 그래도 부족하여, 또 따라서 그 모습을 그림으로 그리곤 하니, 겉치레에다 또 겉치레를 더하여 참모습과의 거리가 더욱 멀어지고 말았소. 어째서 태산이 임방(林放)만 못하다고 보는 거요?(☞之四)


-박지원(朴趾源, 1737~1805), '석치(石癡)에게 보냄(첫번째~네번째 편지)', 연암집 제5권/영대정잉묵(映帶亭賸墨)/척독(尺牘)-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신호열 김명호 (공역) ┃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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