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진리가 어지럽혀지고 사람의 도가 없어지는 것을 두려워 한다

요순(堯舜)이 사흉(四凶 요순 때에 죄를 지은 4명의 악한 즉 공공(共工)ㆍ환도(驩兜)ㆍ삼묘(三苗)ㆍ곤(鯀))을 벤 것은 그들이 말을 교묘하게 하고 얼굴빛은 좋게 꾸미면서 명령을 거스르고 종족을 무너뜨리기 때문이었다. 


우(禹)도 또한 말하기를, “……말을 교묘하게 하며 얼굴빛을 좋게 꾸미는 자를 어찌 두려워하랴?” 하였으니, 대개 말을 교묘하게 하고 얼굴빛을 좋게 꾸미는 것은 사람의 본심을 잃게 하며, 명령을 어기고 종족을 무너뜨리는 것은 사람의 일을 망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이 제거하여 용납하지 않았던 것이다.


탕(湯 은(殷)왕조의 시조(始祖)다)과 무왕(武王 은(殷)왕조를 무너뜨리고 주(周)왕조를 세운 임금)이 걸(桀 하(夏)왕조 최후의 임금 폭군)ㆍ주(紂 은(殷)왕조의 최후의 임금ㆍ폭군)를 쳐부술 때 탕(湯)은 말하기를, “나는 상제(上帝)가 두려워 감히 치지 않을 수 없다.” 하고, 무왕(武王)은 말하기를, “내가 하늘에 순종치 않으면 그 죄가 주(紂)와 같다.” 고 하였으니, 하늘의 명령과 하늘의 토벌은 자기가 사양할 수 없는 것이라는 뜻이다. 


공자도 말씀하기를, “이단을 깊이 파고들면 해로울 뿐이다.” 라고 하였으니, 해롭다는 한 글자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오싹하게 한다.


맹자(孟子)가 호변(好辯, 제자백가를 비판한 글)으로 양묵(楊墨 양주(楊朱)와 묵적(墨翟))을 막은 까닭은 양묵의 도(道)를 막지 않으면 성인(聖人)의 도를 행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맹자는 양묵을 물리치는 것을 자기의 임무로 삼았다. 그의 말에 이르기를, “능히 양묵을 막을 것을 말하는 사람은 성인의 무리이다.” 고 하면서까지, 그는 사람들이 동조해 주기를 바란 것이 지극하였다. 


묵씨(墨氏)는 똑같이 사랑한다(兼愛 겸애) 하니, 인(仁)인가 의심되고, 양씨(楊氏)는 자기만을 위한다(爲我 위아) 하니, 의(義)인가 의심되어 그의 해(害)가 아버지도 없고 임금도 없는 데까지 이르므로 맹자가 이를 물리치고자 힘썼던 것이다.


그런데 불씨(佛氏, 불교)의 경우는 그 말이 고상하고 미묘하여 성명(性命)ㆍ도덕(道德) 가운데에 출입함으로써 사람을 미혹(迷惑)시킴이 양묵보다 더 심하였다.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불씨(佛氏)의 말이 더욱 이치[理]에 가까워서 진(眞)을 크게 어지럽힌다.” 고 하였으니, 이것을 이른 것이다.


내 어둡고 용렬하면서도 힘이 부족함을 알지 못하고, 이단을 물리치는 것으로 나의 임무로 삼은 것은 앞서 열거한 여섯 성인과 한 현인의 마음을 계승하고자 함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이단의 설에 미혹되어 모두 빠져 버려 사람의 도가 없어지는 데 이를까 두려워하는 까닭이다.


아아! 난신(亂臣) 적자(賊子)는 사람마다 잡아 죽일 수 있으니, 반드시 사사(士師 형벌을 다스리는 관리)를 기다릴 필요가 없는 것이며, 사특한 말이 횡류(橫流)하여 사람의 마음을 무너뜨리면 사람마다 물리칠 수 있으니 반드시 성현을 기다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여러 사람에게 바라는 바이며 아울러 내 스스로 힘쓰는 것이다.(이하생략)


-정도전(鄭道傳 1342~1398), '이단을 물리치는 데 관한 변[闢異端之辨] 부분' 『삼봉집(三峯集)삼봉집 제 5권/불씨잡변(佛氏雜辨)-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조준하 (역) ┃ 1977


※옮긴이 주: 亂臣 (난신)은, '국정을 농단하여 나라 정치(政治)를 어지럽게 하는역신(逆臣)'을 말하고, 賊子 (적자)는, '임금이나 부모(父母)에게 거역(拒逆)하는 불충(不忠), 불효(不孝)한 사람' 을 뜻하는 말이다. 유교에서 불교에 대한 비판은 춘추시대 이래로 매우 다양한 글에서 발견된다. 조선의 개국공신인 삼봉 정도전선생의 "불씨잡변(佛氏雜辨)"은 그 비판의 정수로 손꼽아도 될만하다. 윗글을 포함하여 19개 항목으로 나눠 구체적으로 불교를 비판한 '불씨잡변'의 요체는 위의 글처럼, "세상 사람들이 이단의 설에 미혹되어 모두 빠져 버려 사람의 도가 없어지는 데 이를까 두려워하는 까닭"에 있다. 이로 보건대, 불교의 진리에 대한 논리적 학술적 비판이라기보다는 현실의 삶에서 드러나는 불교의 부작용, 폐해를 비판하고 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앞서 소개한 바 있는 안영의 유교비판도 현실성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하겠다.  안영은 극단적인 개인 이기주의를 지향하는 양웅의 위아설은 배격히였지만, 유교의 인(仁)과 의(義) 그리고 묵자의 겸애와 근검 절약정신은 그의 삶의 행적에 고스란히 실천적으로 드러난다. 한편으로 기독교 비판의 경우, 비슷한 상황적 맥락에서 찾아보자면, 참으로 역설적이게도 기독교 그 자체이신 예수로부터 나온다. 그 대표적인 비판이 마태복음 23장에 나온다. 그 요점은, "그들이 가르치는 진리는 따르되, 그들의 행실은 본받지 말라"는데에 있다. 안영과 정도전 그리고 예수의 비판은, 진리 그자체보다는 종교인, 즉 인간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모든 종교에 공히 해당된다는 점이 특징적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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