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여백

"귀하게 되면 인색해지고 / 부유해지면 더러워지고 오래 살면 포악해진다 / 인자하고 진실한 자에겐 요절이 뒤따르고 / 깨끗하여 찌끼 없는 자에겐 가난이 깃들고 / 베풀기 좋아하고 주는 것 많은 자는 높은 벼슬이 없다 / 이 여섯 가지 덕 중에 내 장차 어느 것을 택할꼬 / 아! 못난 자식에겐 격려하여 일으켜 세우고 / 얌전한 자에겐 가로막아 억누르다니 / 내 말을 못 믿거들랑 여기 새긴 글월을 보소."


얼굴을 그려 낸 글로는 천고에 사마천(司馬遷) 같은 이가 없다. 그는 매양 사람의 흠 있는 부분이나 결여된 부분에 대해 반드시 있는 힘을 다해 그려 내었다. 요컨대 흠 있는 부분이나 결여된 부분은 그 사람의 여백이지만, 그 여백이야말로 그 사람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 곳임을 알아야 한다. 정신이란 이른바 “붓을 들어 표현하기 이전에 있으며, 표현된 문장 너머에 있다.”는 것이다(千古寫照之文 莫如司馬遷 每於人疵處闕略處 必極力摹寫 要知疵處闕略處 人之餘也 餘者 神所寄也)


대가미(戴葭湄)가 남의 얼굴을 그리면서, “그 얼굴이 둥글면 모나게 그려 내고, 그 얼굴이 길면 짧게 그려 낸다. 그린 것은 모나고 짧지만, 초상은 둥글고 길다.” 하였는데, 이 말은 문장가에게 가장 합당하다 하겠다. 


**역자 주

1. 부유해지면 더러워지고 : 부정한 방법으로 부자가 된 것을 ‘탁부(濁富)’라고 한다. 청빈(淸貧)의 정반대가 되는 말이다.

2. 포악해진다 : 원문은 ‘虐’인데, 《병세집》에는 ‘毒’으로 되어 있다.

3. 격려하여 일으켜 세우고 : 원문은 ‘勸以作’인데, 여러 이본들에는 ‘以’ 자가 ‘而’ 자로 되어 있다.

3. 대가미(戴葭湄) : 가미(葭湄)는 청대(淸代) 초상화의 대가인 대창(戴蒼)의 자(字)이다.


-박지원(朴趾源, 1737~1805), '족손(族孫) 증(贈) 홍문관 정자(弘文館正字) 박군(朴君) 묘지명', 연암집 제2권 연상각선본(煙湘閣選本), 중에서-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신호열 김명호 (공역) ┃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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