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용졸재기(用拙齋記)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같지 않은 이유는 그들 속에 내재(內在)한 기(氣)와 이(理)가 서로 꼭 합치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기(氣)라는 것은 원래 사람이 태어날 때 넉넉하게 받을 수도 있고 부족하게 받을 수도 있는 반면에, 이(理)라는 것은 처음에는 중(中)의 상태가 못 되었던 것이라도 중의 상태로 되돌아가게 할 수 있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가령 교(巧)와 졸(拙)을 쓰는 것으로 말하면, 선천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사람의 후천적인 행위 여하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교졸(巧拙)이라고 흔히 병칭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강유(剛柔)나 강약(强弱)과 같은 상대적인 개념을 지닌 명칭은 아니다.
교(巧)라는 것은 보기 좋게 합리화하여 꾸미면서 장난을 치려고 하는 데에서 일어나는 것이니, 필경에는 사람의 거짓된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졸(拙)이라는 것은 뭔가 모자란 상태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보일지는 몰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늘의 작용(天機)에서 전혀 이탈되지 않는 순진(純眞)한 행동이라고 할 것이다.
주자(周子)의 《역통(易通)》에, “성(誠) 그 자체는 아무런 작용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가 처음 발동될 때 선과 악이 나뉘어진다.(誠無爲 幾善惡)”는 말이 나온다.
주자가 이런 말을 한 본의(本意)는, 선(善)이란 오직 성(誠)을 그대로 계승하여 곧장 행하는 것이고 악(惡)이란 성(誠)을 왜곡해서 얽어매는 것임을 밝히려고 한 것인데, 호씨(胡氏)는 이를 잘못 이해하고는 선악(善惡)이 서로 병행해서 나오는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지금 시험 삼아 이것을 교(巧)와 졸(拙)로 유추(類推)해서, 어떤 것이 악이고 어떤 것이 선인지를 판별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보통 사람의 수준을 뛰어넘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홍범(洪範)의 삼덕(三德)*에 의거해서 살펴보건대, 첫째는 정직(正直)이요, 둘째는 강극(剛克)이요, 셋째는 유극(柔克)이라고 했으니, 그렇다면 강(剛)과 유(柔)라는 것 속에도 이미 과(過, 넘침, 지나침)와 불급(不及 모자람)의 잘못됨이 없을 수 없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런데 이 안에다 졸(拙)을 자리매김해 본다면, 침잠(沈潛, 성정(性情)이 가라앉아 있어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을 뜻함)과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드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고명(高明)한 자질의 소유자가 아니라면 또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기야 하겠는가. 그러니 급기야 허위와 경망함을 제거하고 인위적인 조작이 적어지도록 노력한다면, 마침내 그 마음이 담박(澹泊)해지는 가운데 다시는 한 점의 삿됨과 왜곡됨도 없게 될 것이니, 굳이 정직(正直)을 필요로 할 것이 뭐가 있다 하겠는가.
이렇게 본다면 졸(拙)하게 여김을 받는 도리가 삼덕 가운데에서도 가장 우월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데, 그렇지 않다면 주자(周子)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졸(拙)하다는 말을 듣고는 스스로 기뻐할 이유가 뭐가 있었다고 하겠는가.
그때 그가 시를 지어 노래하기를, “교자는 말을 잘 하고 졸자는 입을 다물며, 교자는 수고롭고 졸자는 편안하며, 교자는 남을 해치고 졸자는 덕을 베풀며, 교자는 흉하게 되고 졸자는 길하게 된다.(巧者言 拙者默 巧者勞 拙者逸 巧者賊 拙者德 巧者凶 拙者吉)”고 하였는데, 이처럼 졸(拙)에 대해서 말한 내용을 음미하노라면 끝없는 감흥이 우러나오곤 한다.
우리 신사문(申斯文 신식(申湜)) 공이 선왕(先王)의 조정에 몸담고 있을 적에, 상(上, 임금)이 하루는 근신(近臣)들의 인품을 차례로 평론하였는데, 그때 “식(湜)은 졸(拙)하다.”는 말씀을 얻어들었다. 대저 거룩하신 선왕께서 신하들이 어떠한지 환히 내다보고 계셨을 텐데 급기야 졸(拙)하다는 평가를 내려 주셨으니, 공이 이 말씀을 듣고 기뻐한 것이 어찌 염계(濂溪 주돈이)가 남의 말을 얻어듣고 기뻐한 정도로 끝났겠는가.
그래서 공이 일찍이 용졸(用拙)이라는 두 글자를 자신이 거처하는 곳에다 편액(扁額)으로 내걸기에 이르렀으니, 이는 대개 상이 내려 주신 말씀을 은근히 자랑하려고 하는 뜻과 함께 아무쪼록 졸의 의미를 십분 발휘하여 만에 하나라도 국가에 보답하려는 뜻이 깃들어 있다고 하겠다. 그러고는 나에게 기문(記文)을 써 달라고 부탁하기에, 내가 삼가 이렇게 적게 되었다.
※[역자 주]
1. 홍범(洪範)의 삼덕(三德) : 삼덕은 정직(正直)과 강(剛)과 유(柔)를 말하는데, 《서경(書經)》 홍범의 글에, “삼덕의 첫째는 사(邪)와 곡(曲)이 없는 정직이요, 둘째는 강함으로 극복하는 것이요, 셋째는 부드러움으로 극복하는 것이다. 평화롭고 안락한 자에게는 정직으로 대하고, 강경해서 따르지 않는 자에게는 강함으로 극복하고, 유화하여 굽신거리는 자에게는 부드러움으로 극복한다. 그리고 조금 부족한 듯하면서 뒤로 물러나 숨으려 하는 자에게는 강함으로 극복하고, 조금 지나친 듯하면서 높이 드러내려 하는 자에게는 부드러움으로 극복한다.[三德 一曰正直 二曰剛克 三曰柔克 平康正直 彊不友剛克 燮友柔克 沈潛剛克 高明柔克]” 하였다.
-최립(崔岦 1539~1612), '용졸재기(用拙齋記)', 『간이집(簡易集)』/ 간이집 제 9권/희년록(稀年錄)-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이상현 (역) ┃ 2000
※참고:
1.拙(졸): 옹졸할 졸, 1. 옹졸하다 2. 둔하다, 어리석다 3. 질박하다(꾸민 데가 없이 수수하다) 4. 서툴다 5. 불우하다, 곤궁하다
2.용렬(庸劣): ‘사람이 변변하지 못하고 졸렬하다(마음이 좁고 천박하여 행동거지가 비굴하거나 비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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