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눈과 귀로 받아들이고 마음으로 길러 나간다

나는 젊었을 적에는 세상을 오만하게 내려다보면서 어떤 물건이든지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그 아름다움을 보고 즐길 수 있는 가치가 있는 사물들에 대해서도 그다지 좋아하는 습관을 가지지 못했다. 


이런 까닭에 일찍이 왕자유(王子猷, 자유는 왕휘지(王徽之)의 자(字))가 대나무를 좋아한 나머지 “하루라도 이 친구가 없으면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何可一日無此君)”라고 말했다는 고사(故事)를 접했을 때나, 소자첨(蘇子瞻, 자첨은 소식(蘇軾)의 자(字))이 이를 인하여 “대나무가 없으면 사람이 저속하게 되고 만다.(無竹令人俗)”고 읊은 시구를 접했을 때, 이를 비웃었다. 


나는 말하기를, “사람은 자신의 마음이 청량(淸凉)하게 되지 못할까 하는 점만을 걱정해야지, 외물(外物)을 의지해서 저속하게 되지 않으려고 해서야 어찌 될 말이겠는가?” 하였다.


그러다가 나이를 꽤 먹고 나서 갈수록 세상과 더불어 갈등과 반목을 더욱 빚게 되면서 이에 대한 나의 인식이 조금씩 변해 가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즉 나와 마주치는 외물이 주는 그 운치(韻致)가 비록 나의 마음을 감화시키는 정도에까지는 꼭 이르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것을 통해서 나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나를 다시 새롭게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요소를 발견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었다. 


이러한 점은 옛 성현(聖賢)에게서도 이미 발견할 수가 있다. 가령 '아무 까닭 없이 옥(玉)을 몸에서 떼지 않았다거나 거문고와 비파(琴瑟)과 같은 악기를 항상 눈앞에 보이게 했다는 것'* 등이 하나의 예라고 하겠다.


저 대나무로 말하면 하나의 식물에 불과한 만큼 사람의 마음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을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눈으로 그 색깔을 보면 마치 옥(玉)과 같고, 귀로 그 소리를 들으면 마치 말고 고운 악기에서 울리는 아름다운 소리를 듣는 느낌을 갖게 하는 면이 있다. 


따라서 눈과 귀를 통해 일단 그것을 받아들인 다음 마음을 길러 나가는 방향으로 노력한다면, 이것 역시 학자(學者)가 날로 새롭게 변화해 가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살펴본다면, 옥을 몸에서 떼어 놓을 수 있고 금슬의 음악을 듣지 않을 수 있게 된 후에야, 비로소 대나무 없이도 살 수가 있다고 할 것이다. 


이런 생각에 이르게 되자, 비로소 나는 예전에 비웃어서는 안 될 일을 내가 함부로 비웃었다는 사실을 크게 깨달을 수가 있었다.(이하 생략)


※[역자 주]

1. 소자첨(蘇子瞻)의 시구 : 자첨은 소식(蘇軾)의 자(字)이다. 그의 〈어잠승녹균헌(於潛僧綠筠軒)〉이라는 시에 “밥 먹을 때 고기가 없는 것은 괜찮지만, 사는 집에 대나무가 없어서는 곤란하지. 고기가 없으면 몸이 마를 뿐이지만, 대나무가 없으면 저속하게 된다오.[可使食無肉 不可居無竹 無肉令人瘦 無竹令人俗]”라는 표현이 있다. 《蘇東坡詩集 卷9》

2. 아무 까닭없이 : 《예기(禮記)》 옥조(玉藻)에 “임금은 아무 까닭 없이 옥을 몸에서 떼어 놓지 않으며, 대부는 아무 까닭 없이 걸어 놓은 악기를 치우지 않으며, 선비는 아무 까닭 없이 금슬을 철거하지 않는다.[君無故玉不去身 大夫無故不徹縣 士無故不徹琴瑟]”는 말이 나온다.


-최립(崔岦 1539~1612), '낭간권(琅玕卷序)'부분, 『간이집(簡易集)』/ 간이집 제 3권/서(序)-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이상현 (역) ┃ 1999


※옮긴이 주: 낭간(琅玕)이란 옥처럼 고운 대나무를 가리킨다. 낭간권(琅玕卷序)은 조선 중기의 묵죽화가인 석양정(石陽正) 이정(李霆 1554∼1626, 호는 탄은(灘隱), 자는 중섭(仲燮))이 소장한 대나무 그림에 붙인 서문이다. 이정(李霆)은 시와 글씨에도 뛰어났다고 한다. 정(正)은  조선왕실의 직계 근친에게 붙여지는 작호다. 후일 석양군(石陽君)으로 승격되었다. p.s: 번역문에서 개인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일부분을 풀어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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