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학문에 해를 끼치는 6가지 / 이현일
갑신년(1644, 인조22), 내 나이 이미 18세이다. 이제 또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이에 무어라 일컬을 만한 것이 없는 지난날을 두려운 마음으로 점검해 보고, 인하여 보잘것없는 나의 행적에 탄식하였다. 이에 경계하는 글을 짓는다.
옛사람들은 학문을 할 때에 아주 짧은 시간도 아껴서, 잠시만 느슨해져도 항상(恒常, 언제나 변함없이 일정하고 한결같음 )이 아니고, 잠깐만 멈추어도 유종(有終, 시작한 일의 끝 혹은 결실)이 없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 때문에 삼가고 조심하는 마음을 종일토록 지니고 있었고, 밤에도 그 마음이 해이해지지 않았다. 한 사람의 몸에 만 가지 이치가 갖추어져 있으니, 이 이치를 따르면 옳게 되고 이 이치를 어기면 어그러지게 된다. 하늘이 이것으로 명하고 사람이 이것을 받은 것이 성(性)이고, 성의 자연(自然)을 따르는 것이 도(道)이다. 이것을 잘 아는 것을 지(知)라 하고, 이것을 몸에 체득한 것을 인(仁)이라 하며, 이것을 힘써 행하는 것을 용(勇)이라 한다. 경황이 없거나 위급한 순간에도 조금도 간단이 없으면(無少間斷, 즉, 틈을 주지않고 흔들려 끊김이 없으면), 대본(大本, 가장 중요한 근본)이 서고, 달도(達道,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가 행해지는 것이다.
아, 성명(性命)의 근원과 도학(道學)의 요체는 비록 초학(初學)이 헤아려 알 수 있는 바가 아니겠으나, 사람이 이것에 대해서는 당당하게 옳은 천품을 하늘로부터 모두가 부여받고 태어났으니, 행하지 않는다면 모르겠지만 행해야 할 것이라면 이것을 버리고 장차 무엇을 구하겠는가.
오늘날에는 학문을 하는 자가 적다. 부질없는 뜻만 크게 품고 큰소리를 치면서 옛사람들처럼 하고자 하는 자들이 있기는 있다. 그러나 한걸음에 높은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여겨, 차곡차곡 공부를 해 나가 조금씩 경지에 이르러 가는 일에 게으르다. 때로는 탄식하면서 외물과 어그러지고 마음이 천리 밖에서 놀아 정착하는 곳이 없다. 천천히 탐구해 나가지 아니하고 가까운 곳에서부터 도모하지 아니한다. 말은 우활하고 일은 허물이 있다. 아, 탄식스럽다.
드디어 아래와 같이 조목에 따라 하나하나 잠(箴, 훈계 혹은 경계의 목적으로 새기는 글)을 짓는다. 태타(怠惰)는 기운을 풀어지게 하고 학업을 병들게 하는 것이며, 희완(戲玩)은 바깥에서 잃어 안을 황폐시키는 것이며, 불전정(不專靜)은 뜻이 갈라져서 일에 두서가 없게 하는 것이다. 동작(動作)은 더러는 구차한 데에서 잘못이 생기고, 언어는 더러 지리한 데에서 잘못이 생긴다. 긍대(矜大)는 그 병통이 자만에 있다. 이 여섯 가지는 모두 학문에 해를 끼치는 것이기 때문에 걸어 두고 스스로를 경계한다.
우리 사람들이 태어남은, 오직 하늘로부터 타고나는 것이니, 하늘이 형체를 주고 품성을 주어 그 본성은 진실하고 심원한 것이네. 오직 저 철인(哲人,품성이 바르고 사리에 밝은 사람)만이 그것을 잘 따르고 잘 행하고 저 어리석어 무식한 자들은 날마다 그곳에서 멀어지네. 부지런하지도 않고 용기도 없고 구차스럽게 지낼 뿐이라네 . 엄숙하고 경건하게 지켜 나가야 실추됨이 없다고 할 수 있겠지.
도는 천하에 있는 것이라. 군자는 그것을 구한다네. 군자가 그것을 구하여 군자가 그것을 행한다네. 군자가 과감히 그것을 행하면 선(善)이 이에서 일어나고 군자가 말아야 할 일 하지 않으면 허물이 거의 빨리 없어질 것이네 . 갈고 또 닦아서 너를 훌륭히 이루어야 할지니.
이상은 태타(怠惰)를 경계하는 글이다.
장난 섞인 말은 마음에서 나오고 장난 섞인 행동은 생각에서 나오네 밖이 이미 어수선하고 경황이 없다면 안이 어찌 고요히 안정될 수 있으랴 바르고 좋은 말을 하지 않으면 실로 마음에 병이 되어 편치 못하지 항상 공경하고 경계를 하여 오직 예법에 맞게 해야 한다네
이상은 희완(戲玩)을 경계하는 글이다.
괴이한 행동을 하지 말고 괴벽한 이치를 찾지 말라 옛 성현들이 세운 규범이 있는데 그런데도 어디 다른 데로 가랴 도는 효성과 공경에서 시작되는 것이고 학문은 바르고 곧음*에 근원하는 거라네 세월은 빠르게 흘러가는 것 밤낮으로 쉬지 않고 노력하여라
이상은 불전(不專)을 경계하는 글이다.
선왕(先王, 앞서 산 훌륭한 왕)께서 교훈을 주셨고 선성(先聖, 앞서 산 성인)께서 규범을 세우셨네 그것을 말하면 넉넉하고 행하면 여유롭지 저자(저사람)는 어떤 사람이길래 말이 많고 행동이 변덕스럽나 그런 언행에 익숙히 젖어들면 안 되니 마음에 허물만 될 뿐이라네
이상은 언동(言動)을 경계하는 글이다.
사람이 참여하여 삼재(三才, 하늘, 땅 사람, 天地人)가 되니 만물은 같이 하나의 몸이라네 종일토록 부지런히 노력을 해도 오히려 부족하다 해야 하거늘 어찌 스스로를 하찮게 여겨 원대한 포부를 품지 않으리 내가 할 일을 내가 행할 뿐인데 다른 누구에게 자랑을 하랴 나의 성품을 따라 사는 것 족히 자랑거리 될 것 없다네 저 안씨((顔氏) 집안의 아들*은 (가득)차 있으면서도 빈 듯이 하였네 경솔히 말을 앞세우지 말고 몸소 체득해 실천을 해야 한다네
이상은 긍대(矜大)를 경계하는 글이다.
※[역자 주]
1. 학문은 바르고 곧음에 근거 하는 것 : 《주역(周易)》 곤괘(坤卦) 문언(文言)에 “군자는 공경으로써 안을 곧게 하고 의로움으로써 밖을 반듯하게 한다.〔君子敬以直內 義以方外〕”라고 하였다.
2. 안씨(顔氏) 집안의 아들 : 증자(曾子)가 말하기를, “유능하면서도 무능한 사람에게 물으며, 학식이 많으면서도 적은 사람에게 물으며, 있어도 없는 듯이 하며, 가득해도 빈 듯이 하며, 자신에게 잘못을 범하는 자가 있어도 따지지 않는 것을, 예전에 내 친구〔顔回〕가 그렇게 했었다.” 하였다. 《論語 泰伯》
-이현일(李玄逸, 1627~1704), '세제자경잠(歲除自警箴) 병서(幷序) ', 『갈암집(葛庵集』/갈암집 제22권/잠명찬(箴銘贊) -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박헌순 (역) |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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