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백성을 위하고 염려하는 일 / 이현일

왕이 된 자는 백성을 하늘로 삼고, 백성은 먹을거리를 하늘로 삼는다. 그렇기 때문에 자고로 인성(仁聖)한 임금은 백성과 먹을거리를 중하게 여기지 않은 적이 없어서 재물을 만들어 내고 식량을 풍족하게 하는 방도에 그 힘을 다하지 않은 바가 없었고, 또 반드시 예비로 저축하여 어렵고 위급할 때를 대비하였다. 


주(周)나라에서 현(縣)과 도(都)에 축적해 둔 것과 수(隋)나라와 당(唐)나라에서 의창(義倉)에 비축해 둔 것이 모두 흉년과 재해를 대비하는 것이었으니, 백성을 위해 염려한 것이 치밀하고 극진하지 않은가. 


천재(天災)가 유행하여 사방이 번갈아 가며 흉년이 들어 새 곡식이 나오기 전에 묵은 곡식이 떨어져 공사(公私) 간에 모두 고갈되었고, 심지어 전답을 팔고 자식을 팔아도 먹고살 수 없어서 쪽박을 들고 걸망을 메고서 골육이 뿔뿔이 흩어져서 혹은 산야(山野)에서 굶어 죽고 혹은 길가의 나무에 목을 매어 죽는다. 


이런 때에 임금이 비록 애통해하는 하교를 내려 백성을 염려하는 생각이 말이면에 넘치고 불쌍히 여기는 뜻이 글에 드러나더라도 건더기 없는 떡국과 같이 되는 것을 어찌하겠는가. 


거짓말을 하고 태만한 형편없는 관리는 말할 것도 없지만, 사목(事目)을 봉행하여 성지(聖旨)에 부응하려는 자도 동쪽 담장을 부수어 서쪽 담장을 보수하고 저쪽에 있는 것을 이쪽으로 옮기는 것에 불과하여 결국은 실제적인 혜택을 입힐 수가 없으니, 백성이 허둥대고 낭패스러워 기아(饑餓)에 위태로운 것은 그대로인 것이다. 


이에 재물을 불리는 자들이 사람들에게 인색하여 빚을 늘리고, 요행을 바라는 자들은 재해를 요행으로 여겨 이끗을 꾀하여 온갖 사기가 나오고 간사함이 날로 늘어나게 되니, 이렇게 계속되면 약탈하는 변란에 이르기 쉽다. (이하생략) [※옮긴이 주:갈암선생은 이후 이어지는 글에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구체적인 대안 즉 부조리한 제도와 구습을 혁파하는 혁신적인 개혁의 방법을 3조목에 걸쳐 구체적으로 논하고 있다. 원래는 8조목이라고 전해진다.]


-이현일(李玄逸, 1627~1704), '정설(政說)'부분발췌, 『갈암집(葛庵集』/갈암집 별집 제3권/잡저(雜著)/ 정설(政說)-


▲원글출처: 한국고전번역원 ⓒ 한국고전번역원 ┃ 홍기은 (역) ┃ 2005


※[역자 주]정설(政說) :선생이 일찍이 무신 연간에 백성의 고통을 목격하고 치도(治道) 8조목을 지었는데, 지금은 모두 없어져서 전하지 않고 이 3조목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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