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한갓 문장만을 가지고서 그 사람됨을 인정할 수 없는 일 / 이색
맹자(孟子)가 상우(尙友 옛사람과 벗하는 것)에 대해서 논하여 말하기를, “그의 시를 낭송하고 그의 글을 읽으면서도 그의 사람됨을 모른대서야 말이 되겠는가. 그래서 그의 당세의 삶을 논하게 되는 것이다.(맹자, 萬章下)” 라고 하였는데, 문장을 논할 때에도 이와 같이 해야 마땅하다고 내가 일찍부터 생각해 왔다.
문장이란 사람의 말 가운데에서도 정련(精鍊, 정성들여 고르고 다듬고 잘 훈련함)되어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말이라는 것은 모두가 꼭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것이라고 할 수도 없고, 일을 행한 실상을 모두 대변해 주는 것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다.
한(漢)나라 사마상여(司馬相如)와 양자운(揚子雲 양웅(揚雄)), 그리고 당(唐)나라의 유종원(柳宗元)이나 송(宋)나라의 왕안석(王安石) 같은 무리들이 그들의 말을 문장으로 펼쳐 놓은 것을 보면 뭐라고 따질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정작 그들이 일을 행한 실상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내가 참견하며 입을 놀리지 않을 수 없는 점이 있다고 하겠다.
이것을 비유하자면, 백정의 집에서 부처에게 절을 하고 창녀의 집에서 예절을 배우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겉에서 얼핏 보면 그럴듯하게 보일지 몰라도 막상 안으로 들어가서 보면 백정이요 창녀임이 분명하니, 어떻게 그 본색을 숨길 수 있겠는가.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내가 어떤 사람의 시를 낭송하고 그 글을 읽을 적에는, 그 사람이 당세에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 더욱 따지면서 물어보고 싶은 것이다. 나로 말하면 학문이 깊지 못하니, 어떻게 감히 옛사람을 논할 수 있겠으며 어떻게 감히 천하의 재사(才士)들을 논할 수 있겠는가마는, 그래도 내가 한갓 문장만을 가지고서 그 사람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만은 감히 숨기지 못하겠다. (이하생략)
-이색(李穡, 1328~1396), '동안거사 이공(李公) 문집 서문(動安居士李公文集序) '부분, 『목은집(牧隱集)』 / 목은문고 제8권/서(序)-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이상현 (역) ┃ 2001
'고전산문 > 목은 이색'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전산문] 뜬구름을 생각하는 까닭은 / 이색 (0) | 2018.09.29 |
---|---|
[고전산문] 문장짓는 법 (0) | 2018.0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