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마음 속에 축적된 것이 글로 표현된다 / 이지(이탁오)

세상의 정말 글 잘하는 사람은 모두가 처음부터 문학에 뜻을 둔 것은 아니었다. 가슴속에 차마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괴이한 일들이 무수히 고여 있고, 그의 목구멍에는 말하고 싶지만 감히 토해낼 수 없는 말들이 걸려있다. 입가에는 또 말로 꺼내놓고 싶지만 무슨 말로 형용해야 좋을지 알 수 없는 것이 허다하다. 그런 말들이 오랜 세월 마음속에 축적되면 더 이상 막을 수 없는 형세가 된다. 


그리하여 일단 멋진 풍경을 보면 감정이 솟구치고, 눈길 닿는 사물마다 절로 탄식이 흘러나온다. 다른 사람의 술잔을 빼앗아 자신의 쌓인 슬픔에 부어넣게 되고, 마음속의 울분을 하소연하거나 천고의 기박한 운명에 대해 한탄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쏟아져 나온 옥구슬 같은 어휘들은 은하수에 빛나며 회전하는 별들처럼 하늘에 찬란한 무늬를 수놓게 된다. 결국 자신도 거기에 뿌듯함을 느껴 발광하고 울부짖게 되며 눈물 흘리며 통곡하는 일을 스스로도 멈추지 못할 지경이 된다.


-이지(李贄, 1527~1602, 卓吾 이탁오), '잡설(雜說)'부분,『분서(焚書)』-


"태사공 사마천은 “ 설난(說難 )· 고분(孤憤) 은 성현이 마음 속에 쌓인 감정(울분)을 밖으로 드러내어(發憤, 발분지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것으로 볼 때 옛 현자와 성인들은 발분(發憤)하지 않으면 글을 짓지 않았던 것이다. 발분하지 않았는데 저술하는 것은 비유컨대 마치 춥지도 않은데 떠는 것과 같고 아프지도 않은데 신음하는 것과 같으니, 비록 저술한다고 해도 무슨 볼만 한 것이 있겠는가?" -이지('충의수호전서 忠義水滸傳序')


"이 세상에서 훌륭한 글은 동심(童心)에서 나오지 않은 것이 없다. 동심을 오래 지닐 수만 있다면 도리로만 행해지지는 않을 것이며, 듣고 본 것으로만 행세할 수 없을 것이며, 언제 글을 지어도 훌륭한 글이 되고, 어떤 사람이 지어도 좋은 글이 되며, 어떠한 체재나 어떤 내용의 글을 창작하더라도 좋은 글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대저 동심이란 진실한 마음(眞心)을 말한다. 만일 동심을 잃어버리게 되면 진실한 마음을 잃어버리는 것이 된다. 무릇 동심이란 거짓을 끊어버린 순진함으로 사람이 처음으로 갖게 된 본심이다. 동심을 잃게 되면 진심이 없어지고 진심을 잃어버리면 진실한 인간성마저 잃게 된다. 사람이 참되지 못하면 처음의 상태를 다시는 회복할 수가 없게 된다. 어린아이는 사람의 처음 모습이다. 어린아이의 마음(童心)이 곧 마음의 처음 모습이다. 처음의 마음이 어찌하여 없어질 수 있는가? 왜 느닷없이 동심이 사라지고 마는 것일까? 보건대 동심이 사라지는 것은, 귀와 눈으로 듣고 보는 것이 마음 속에 들어와, 외부의 것이 마음 안에서 사람을 주관하고 주장하게 되는데서부터 비롯된다. " -이지(동심설 童心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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