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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산문] 글을 귀로 먹는 자들 / 허균

무릇 문장과 서화는 공벽(拱璧, 큰 옥석, 즉 진귀한 물건)이나 장주(掌珠, 손에 쥔 진주)와 같아서 정해진 제 값이 있는 것이나(즉, 안목과 식견을 갖춘 사람만이 그 가치를 알아볼 수 있다는 의미), 세상이 파사호(波斯胡, 서역인, 즉 페르시아 상인)가 아닌 이상 어찌 그 고하(高下, 값어치의 높고 낮음)를 알겠는가? 오늘 날 눈 어두운 자들이 모두 시문(詩文, 시와 글)도 세태를 따라 오르내린다 하여 눈으로 본 것은 배척하고, 귀로 들은 것만 귀히 여겨 모두 다 고인(古人, 옛 현인들)을 절대 따를 수 없다 하니, 아아, 큰 물이 밀어닥쳐 공중까지 넘실대어 산호가 잠긴 곳이 어느 곳인지도 모르면서, 맥모르고 스스로 나불나불 가리켜 구하는가. 이는 귀로 먹는 자들과 무엇이 다르랴!(이하생략) -허균(許..

[고전산문] 나를 판단하고 비난하는 사람에게 답함 / 허균

갓을 쓴 풍채가 좋고 의기가 당당해 보이는 사람이 나에게 힐문하였다. "그대는 문장을 지녔고 벼슬은 높은 지위에 이르렀다. 높은 지위에 걸맞는 관과 넓은 띠를 하고 임금님을 모실 적에는, 큰 길에 나서면 종자들이 구름처럼 옹위하여 뭇 행인들을 호령하며 앞길을 정리(呵導)했다. 공적인 사귐에 있어서는 지위에 걸맞게 당연히 공경 재상과 한 무리가 되어 서로 어울려 나라 위한 모의(謀議)를 함께 하였다. 이럴진대 그대가 마음만 먹는다면 서열과 단계를 뛰어 넘어 권력을 붙잡고 일신에 호화로운 생활 누릴 수 있었건만, 어찌하여 조회만 마치면 입 다물고 바보처럼 하고 다니는가?세상 이치에 밝고 명성있는 현명한 사람은 자네를 찾아 오는 일은 없고, 천박하고 기이한 사람들과 어울리고 있느니 어찌된 일인가. 게중엔 얼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