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글을 귀로 먹는 자들 / 허균
무릇 문장과 서화는 공벽(拱璧, 큰 옥석, 즉 진귀한 물건)이나 장주(掌珠, 손에 쥔 진주)와 같아서 정해진 제 값이 있는 것이나(즉, 안목과 식견을 갖춘 사람만이 그 가치를 알아볼 수 있다는 의미), 세상이 파사호(波斯胡, 서역인, 즉 페르시아 상인)가 아닌 이상 어찌 그 고하(高下, 값어치의 높고 낮음)를 알겠는가?
오늘 날 눈 어두운 자들이 모두 시문(詩文, 시와 글)도 세태를 따라 오르내린다 하여 눈으로 본 것은 배척하고, 귀로 들은 것만 귀히 여겨 모두 다 고인(古人, 옛 현인들)을 절대 따를 수 없다 하니, 아아, 큰 물이 밀어닥쳐 공중까지 넘실대어 산호가 잠긴 곳이 어느 곳인지도 모르면서, 맥모르고 스스로 나불나불 가리켜 구하는가. 이는 귀로 먹는 자들과 무엇이 다르랴!(이하생략)
-허균(許筠, 1569~1618) '사한전방서(詞翰傳芳序)'부분,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제4권 문부(文部) 1 / 서(序) 사한전방 서(詞翰傳芳序) -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김혜숙 (역) |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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