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하면서 진짜는 아닌 것

보원이 하는 말이, "금년 봄부터 큰 새가 어디에서 왔는지 몰라도 산 속에 날아다니고 있는데 생김새는 야학(野鶴) 모양이고 목이 길고 꼬리는 검고 다리는 적색이고 몸은 껑충한데, 사람들이 보고 싶다고 말하면 반드시 제 몸을 돌려가며 보여주고 소리는 학의 소리를 낸다. 아마 선학(仙鶴)인 것으로 지금도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고 있지만, 이 산 속 어딘가에 틀림없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내가 생각하기에, 학은 우는 소리가 길고 맑아서 하늘에까지 들린다는 것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시경》에서도, ‘학이 구고에서 우니 그 소리 하늘에까지 들리네’ 했고, 옛날 기록에도 역시 ‘난새와 봉황은 함께 무리 짓고 반드시 지대를 골라서 날며 때가 돼야 울기 때문에 그래서 선금(仙禽)이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그 새는 난봉(鸞鳳) 같은 벗도 없고 사광(師曠)의 거문고 가락도, 상악(相岳)의 북소리도 없는데 왔으며, 또 우는 소리가 여운도 없고 높지도 길지도 않아 저 혼자 그런 체하는 것이지, 사실은 학 같아도 학이 아니면서 선금 축에 끼어보려고 하는 것이리라. 진짜가 아니면서 이름이라도 빌려보려고 함은 모든 물건이 다 그 모양인데 왜 새라고 그렇지 않겠는가.


언젠가 치사헌(致思軒) 이원(李黿)이 쓴 《금강록(金剛錄)》을 보았더니, 거기에 이르기를, “바위 틈에다 둥지를 틀고 사는 새가 있었는데 대개 평범한 들새였다. 그런데 중들이 학으로 잘못 알고 저를 학이라고 불러주니, 그 새가 반드시 둥지에서 나와서 제가 학이 아니라는 사실도 모르고 사람들에게 춤을 추어보였다.”고 한 부분이 있었는데, 지금 그 새도 저 자신을 학으로 자처하고 있고 사람들도 학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그도 깃털을 뽐내면서 사람들에게 과시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쩌면 그렇게 이름만 내고 스스로 감출 줄은 모른다는 것인가. 어쩌면 산새 들새들도 진세의 속된 인간들과 똑같은 생각이란 말인가. 지금 이 일이 치사헌이 써 놓은 것과 아주 비슷하니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 


그리고 학(鶴, 문맥으로 보아 전설상에 나오는 신선이 기른다는 학)이라는 것도 신령한 새여서 나타나지 않고 있는 지가 지금 천 년이나 되었는데 비슷하면서 진짜는 아닌 것이 하필 오늘에 나타났으니 그것은 또 무슨 까닭일까. 내 그 모든 것을 듣고 묵묵히 앉아 마음속으로 탄식을 했었다.


-윤휴(尹鐫 1617~1680), '풍악록(楓岳錄)'중에서, 『백호전서(白湖全書) 제34권/ 잡저(雜著)』-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양홍렬 (역) |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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