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우당기(六友堂記): 지조를 변치 않는 것들과 벗하다
한산(寒山) 어른 송계신보(宋季愼甫)가 나와는 내외종(內外從)이 된다. 내가 일찍이 그 집에 가보니, 뒤로는 감악산(紺嶽山)을 등지고 앞으로는 큰 들을 임하여 초막집을 한 채 얽어 한가히 휴식하는 곳으로 삼았었다. 그 당명(堂名)이 무어냐고 물었더니, 주인이 말하기를, “내가 ‘취한(就閑)’이라 이름하려고 하는데, 미처 써붙이지 못했다.”고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한(閑, 고요하고 한가함)은 본디 이 당(堂)이 소유한 것이거니와, 우리 형은 나이 70세가 넘어 하얀 수염에 붉은 얼굴로 여기에서 즐기며 바깥 세상에 바랄 것이 없으니, 어찌 아무 도와주는 것 없이 충분히 그 운취를 누릴 수가 있겠습니까?
내가 보건대, 당 한편에 애완(愛玩)하여 심어놓은 것들이 있으니, 바로 대[竹]와 국화[菊]와 진송(秦松)과 노송(魯松)과 동백(冬柏)이요, 게다가 빙 둘러 사방의 산에는 또 창송(蒼松)이 만여 그루나 있으니, 이 여섯 가지는 모두 세한(歲寒)의 절개가 있어 한서(寒暑,추위와 더위)에 따라 지조(志操 원칙과 신념을 지켜 끝까지 굽히지 않는 꿋꿋한 의지나 기개)를 변치 않는 것들입니다.
우리 형께서는 늙을수록 건장하여 신기(神氣)가 쇠하지 않았는데도, 사방에 다니는 것을 싫어하고 이곳에 은거하여, 여기에서 노래하고 여기에서 춤추고 여기에서 마시고 취하고 자고 먹고 하니, 이 여섯 가지를 얻어서 벗으로 삼는다면 그 취미나 기상이 또한 서로 가깝지 않겠습니까?
우리 형께서는 또 세상 변천과 세상 물정을 많이 겪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세상의 교우(交友) 관계가 처음에는 견고했다가 나중에는 틈이 생기어, 득세한 자에게는 열렬히 붙좇고 실세(失勢)한 자에게는 그지없이 냉담하며, 떵떵거리는 자리에는 서로 나가고 적막한 자리에는 서로 기피하는 것이 세태의 풍조입니다.
그런데 이 여섯 가지는 이런 가운데 생장하면서도 능히 풍상(風霜)을 겪고 우로(雨露)를 머금어 이제까지 울울창창하여서 앉고 눕고 기거하고 근심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항상 주인과 함께 하고 있으니, 차라리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하여 세상의 걱정을 피해서 나의 천진(天眞,자연 그대로 참되고 꾸밈이 없음, 변함이 없는 참된 마음)을 온전히 지키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이 당에는 실로 이 여섯 가지가 있고 옹(翁)께서 그 가운데에 처하시니, 어찌 ‘육우(六友)’라 이름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그 한(閑)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하니, 주인이 그렇게 하겠다고 승낙하고 인하여 나에게 그 기문(記文)을 써달라고 부탁하였다.
-윤휴(尹鐫 1617~1680), '육우당기(六友堂記)', 백호전서(白湖全書) 제24권/ 기(記)-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임정기 (역) ┃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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