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금수거기(禽獸居記): 짐승보다 못한 사람

내가 금화(金化)에 살게 되면서 몇 칸짜리 집을 세내었다. 그 집에서 독서하며 지내던 중 맹자(孟子)가 진상(陳相)에게 말한 대목을 읽고서는 탄식의 말이 터져 나왔다. 정말이지 옛사람은 따라잡을 수가 없다.


“배부르고 등 따뜻하며 편안하게 지내면서 교육을 받지 않는다면 짐승에 가깝게 될 것이다.”라고 맹자는 말씀하셨다. 하지만 그런 자라 해도 오히려 짐승보다 나은 점이 있을 것이다.


반면에 나는 조정에서 쫓겨나 떠돌면서 옷가지와 먹을거리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으니 배부르고 등 따뜻하며 편안하게 지내는 자들과는 처지가 다르다. 옛 성인들의 책을 읽기도 했고, 오늘날의 군자들로부터는 직접 가르침을 받은 것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짐승보다 못하니 ‘짐승에 가깝다’는 말을 어떻게 감히 쓸 수 있겠는가?


개는 똥을 먹는다. 개가 먹는 것을 사람은 똥으로 보지만 개는 먹을거리로 본다. 그렇다고 해서 똥을 먹는 것이 개의 의로움에 어떤 손상을 입히는가? 그러나 나는 가끔 의롭지 않은데도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린 진수성찬을 먹기도 했으므로 똥을 먹는 개보다 훨씬 못하다.


저 돼지는 음란하지만 제가 그릇된 행동을 한다는 사실을 원래 모른다. 그런데 지금 나는 부끄러운 짓인 줄 뻔히 알면서도 아리따운 여인을 보면 마음이 흔들리는 짓거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므로 아무 것도 모르고 저지르는 돼지보다 훨씬 못하다.


아! 먹는 것과 성욕은 많은 문제 가운데 일부를 들어본 데 지나지 않는다. 내가 하는 말이나 행동 하나하나로 넓혀 볼 때, 무엇 하나 그렇지 않은 것이 없다.


옛날에는 교육을 받지 못한 연유로 짐승에 가까워지는 사람조차도 성인께서는 염려하셨다. 그러니 교육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짐승보다 못한 자를 두고서는 어떻다고 하시겠는가? 아아! 참으로 부끄럽구나! 참으로 두렵구나!


-이가환(李家煥, 1742~1801),'금수거기(禽獸居記)', 《시문초(詩文艸)》/ 안대회 번역-


▲원글출처: 한국고전번역원


**옮긴이 註: 윗글의 저자는 18세기의 문신, 학자 이가환(李家煥)이다. 스스로 가리켜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라고 자학적으로 고백하는 내용에 흥미가 끌려 인물자료를 뒤져보니 정조의 총애를 받던 인물로 남인 실학파의 학자로 나와 있다. 조선 최초로 천주교 세례를 받은 이승훈의 조카이기도 하다. 이가환은 숙부의 영향을 받아 실학자로서 천주교 교리를 번역하고 연구하기도 했으나, 정치적인 이유로 중단하고 이후에 관직에 있으면서 오히려 그 자신이 앞장서서 천주교 탄압에 앞장 섰다고 한다. 


번역자 안대회 선생의 해설에 의하면, 이가환은 "1787년 정주목사(定州牧使)로 재직하던 중에 암행어사 이곤수(李崑秀)의 탄핵을 받아 면직되고 강원도 금화(金化)로 유배되었다."라고 글의 배경을 밝히고 있다.


글의 배경이야 어찌하던간에 당시 조선 사회의 상부 기득권의 일부로, 또 유학자로써 자신을 가리켜 '짐슴만도 못하다'고 공개적으로 글로 표현하여 고백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요점은 역경 가운데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세상에 대해 원망하고 세태의 허물을 탓하기 보다는 그 초점을 자기의 적나라한 허물로 향하고 있다는데에 있다. 또 유학자로서의 권위와 사회적 가면을 주저없이 벗어 던지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치부를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데에 가식이나 체면치레를 부리지 않고 교육받은 자로서의 치열한 자기 반성을 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수오지심은 의지단이라고 하였다. 이로써 사람됨의 도리와 의를 우선시하는 조선 선비정신의 또 다른 일면을 본다. 배운 도적에 북곽선생같은 짓을 예사로 하면서도 부끄러움이 뭔지를 모르고, 카멜레온같은 요즘의 기능전문에 완장까지 찬 기지촌 학자정신과는 비교자체가 안됨을 알 수 있다. 


이가환은 1801년 신유박해때 천주교탄압을 빌미로 반대 당파의 정적 숙청작업에 걸려들어 천주교인으로 내몰리고 숙부 이승훈과 함께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신유박해 기록을 보면 이가환은 순교자로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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