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사람 품격의 세가지 종류

대저 사람의 선악(善惡)은 높고 낮은 정도가 천층만층이지만 대략 3품(品)으로 나눌 수가 있으니, 선(善)의 부류와 범(凡, 무릇 범, 평범, 보통)의 부류와 악(惡)의 부류가 그것이다. 선의 부류에도 허다한 계층이 있으니, 대체로 성인(聖人)이 있고 현인(賢人)이 있고 군자(君子)가 있고 선인(善人)이 있는데, 성인이 되고 현인이 되고 군자가 되고 선인이 된 사람들 역시 대소(大小)와 고하(高下)의 차이가 있다. 


범()의 부류에도 허다한 계층이 있으니, 선에 가까운 자도 있고 악에 가까운 자도 있는데, 그 가까운 자들 역시 얕고 깊은 정도의 차이가 있다. 대개 그들이 잘하는 일 가운데에는 볼 만한 점이 있기도 하나 그래도 범인의 수준을 벗어나지는 못하고, 또 어떤 일이 혹 범인의 수준을 능가하는 점이 있어도 다른 일은 그렇지 못한데, 선하지 못한 점이 있다 하더라도 그다지 크게 어긋나는 지경에 이르지는 않는다. 


악의 부류에도 허다한 계층이 있을 뿐더러 그 명색(名色)이 또한 하나로 그치지 않으니, 혹은 탐욕스럽고 인색하며 혹은 포학하고 패려(悖戾)하며 혹은 기만하고 혹은 악독한 행태를 보이곤 한다. 그런 가운데 몇 가지를 함께 가지고 있기도 하고 어느 한 가지가 특히 심한 경우도 있는데, 각종 명색의 행태 역시 각각 얕고 깊은 차이가 있다.


사람의 품류(品類)가 비록 한없이 많다 하더라도 요컨대는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 품류가 이와 같은 것은 물론 품부받은 형기(形氣)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하겠지만, 자기가 그렇게 하는 데에서 연유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사람 자신이 진정 선을 행하려는 뜻을 갖고 힘껏 행하기만 한다면, 선을 행하지 못할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선의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은 모두 스스로 노력하는 사람들이요, 범의 부류와 악의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은 모두 자포자기한 사람들이라고 하겠다.


대저 악은 상서롭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 모두가 그런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범의 부류는 악의 부류와 같지는 않지만, 사리를 가지고 말한다면 범속하게 행하는 것도 수치스러운 점에서는 마찬가지라고 하겠다. 오직 선만이 천하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요, 또 사람의 도리로 볼 때에도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진정 스스로 행하기만 한다면 모두 행할 수가 있는데, 어찌하여 그만 범인의 수준에 머무른 채 선인이 되려고 하지 않는단 말인가. 이는 너무도 어리석은 일이라고 할 것이다. 만약 깊이 생각해 본다면 이것이 당연한 말이 아니겠는가.


세간의 허다한 재능(才能)과 술업(術業)을 보면 좋아할 만한 것 아닌 것이 없지만, 모두 선을 행하는 것만은 못하다. 그중에서도 특히 문장(文章)은 사람들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이지만, 만약 선에 뜻을 두지 않고 전적으로 문장만 일삼는다면, 이것 역시 귀하게 여길 가치가 없다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지은 문장의 수준이 매우 높아서 사람들이 따라갈 수 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의 식견이 꼭 통달했다고는 할 수 없고, 그의 심술(心術)이 꼭 정대하다고는 할 수 없고, 그가 말하고 행동하는 사이에 꼭 허물이 없다고는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만약 식견이 통달하지 못하고 심술이 정대하지 못하고 말과 행동에 허물이 많다고 한다면, 그의 인품은 고작 범인(凡人)의 부류에 속한다고 할 것이요, 심지어는 악을 행하는 자가 간혹 그 사이에 섞여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그 문장이 비록 좋다 하더라도 그 사람됨이 좋지 못하다면 또 무슨 유익함이 있다고 하겠는가. 가령 근세(近世)의 문재(文才) 가운데 허균(許筠) 같은 사람은 어찌 절세(絶世)의 재능을 소유한 이가 아니겠는가마는, 악행을 빠짐없이 저지른 자를 찾아 보아도 허균과 같은 자가 없고 보면, 문장을 귀하게 여길 것이 없다는 사실을 이를 통해서도 더욱 확인할 수 있다고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선비된 자들이 있는 힘을 모두 기울여서 문사(文辭)를 잘 지으려고만 애를 쓸 뿐 자기 몸을 선하게 하려고는 하지 않으니, 아,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고 하겠다.(이하생략)


-조익(趙翼1579 ~1655), ☞'개혹천어(開惑淺語)' 중에서, 『포저집(浦渚集)  제20권/잡저(雜著)/』-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이상현 (역) |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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