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가난한 생활을 하는 3가지 방법
가난한 생활을 하는 데는 다음 세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운명을 아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기운을 안정시키는 것이며, 또 다른 하나는 의리를 변별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를 해야 오래도록 가난함에 처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목숨을 구하도록 괴롭도록 부지런하게 노력하고 제도를 가지고 검소하게 아낀다고 해도 말할 만한 것이 못 된다.
무엇을 가지고 운명을 안다고 하는가? 운명이란 하늘에서 정해지는 것이고, 사람의 지력으로 능히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천하는 진실로 지력을 가지고 부귀를 얻을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얻어 보면, 운명은 본래 있었던 것이다. 운명이 본래 있었던 것이 아닌데도 천하에서는 진실로 지력의 힘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있다.
그러나 하늘이 부여해주지 않은 것인데 사람들이 억지로 얻는다면, 잃어버리는 것도 또한 반드시 따를 것이기 때문에 억지로 애를 써서 부유함을 얻는다면 그 자신의 수를 잃을 것이며, 억지로 애를 써서 귀함을 얻는다면 그 자신의 죽음을 얻지 못할 것이며, 억지로 애를 써서 안일함을 얻는다면 그 자신의 자손을 잃어버릴 것이다. 더하거나 빼는 셈을 나누어 안배해서 그러한 것이지만, 이것은 오히려 이해의 득실을 가지고 말한 것일 뿐이다.
도리를 가지고 말하게 된다면, 동파(東坡)가 “정해진 운명에는 터럭만큼의 보탬도 없고, 도덕에서는 산더미처럼 큰 손해가 있다.”고 한 것은 또 모두 비유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터럭이라도 도덕을 손상시키면서 언덕과 산처럼 큰 이익을 얻더라도 군자는 오히려 하지 않는다. 만약 언덕과 산처럼 큰 도덕을 손상시키면서 터럭 정도의 이익을 다투는 자들은 미치고 현혹되어 본마음을 잃어버린 사람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옛말에 “사슴은 산 숲으로 달아나는데 참으로 그 운명이 매달려 있는 곳이 있다.”라고 하였다.
선유들은 “물 한 모금 마시고 하나의 낱알을 쪼더라도 모두 정해진 분깃이 있는데, 만약 정해진 운명이 있다면 구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를 것이고, 만약 정해진 운명이 없다면 구하더라도 무슨 보탬이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공자(孔子)는 “운명을 알지 못한다면 군자가 될 수 없다.”라고 하였다. 하필이면 군자라는 사람이면서 운명을 알지 못하는 자라면 사람이라고 칭할 수 있겠는가.
무엇을 가지고 기운이 정해진다고 하는 것인가? 사람으로 참으로 대략이라도 운명을 알면서도 빈곤한 생활에 편안할 수 없는 자라면, 그 자신의 기운을 안정시키지 못한 것이다. 기운을 안정시키지 못한 것은 그 자신의 뜻이 정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옛날의 성현들은 진실로 헤진 솜옷을 입고도 여우와 담비 가죽옷을 입은 사람들에게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칠일 동안 먹지 않고도 노래를 부르는 소리가 마치 악기에서 나온 것과 같았던 것은 어찌 유독 뜻만 정해져서 그런 것이겠는가. 그 기운을 채워서 그런 것이다. 육노망(陸魯望)은 “내가 어찌 정육점에서 술과 음식이 있음을 알지 못하겠는가.”라고 하였다. 이것은 뜻을 정하고 기운을 채우는 방법이다.
옛 청(淸)나라 학사인 모공(某公)은(이름은 잊었다.) 젊어서 너무도 가난하였다. 천자가 한번은 그 집에 미행을 나갔다가 그 집 벽에 “벽에는 용과 봉이 그려진 그림, 대청엔 해와 달이 비춰주는 빛.”이라고 크게 쓴 글을 보고 크게 놀라 “이 말은 오직 천자가 거처하는 곳에만 해당될 수 있는 것인데, 어떻게 주인은 멋대로 칭하는 것입니까?.”라고 하였다. 공은 “그렇지 않습니다. 벽 틈에 비가 샌 흔적은 용과 봉을 그린 것과 같지 않습니까? 대청의 벽이 뚫린 구멍으로 푸른 하늘을 비춰 보이니, 햇빛과 달빛이 아니겠습니까? 손님께서는 어떻게 그리도 지나치게 이상하게 보는지요?”라고 사과하였다.
천자가 또 크게 놀라고 감탄하면서 “대단하구려. 저처럼 빈곤한데도 이처럼 기운이 대단하니, 앞날을 헤아릴 수 없겠습니다.”라고 하였다. 모공은 이 때문에 천자의 지우를 받아서 재상의 지위에 이르렀다.
이러한 일을 통해 보자면 기운을 어떻게 채워야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내 고향의 손창사(孫昌舍) 명래(命來)가 그의 숙부 검암선생(儉巖先生)의 행장을 지으면서 “명래는 중년에 거듭 상고(喪故)를 당하여 강우(江右) 지방을 떠돌 때 가난과 병이 번갈아 극심해서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라고 하였다.
공은 늘 “나는 네가 실성할 것을 두려워하였다.”라고 경계하였다. 실성한다는 것은 꼭 미쳐서 날뛰면서 마구 소리를 질러댄 다음에야 비로소 실성을 했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무릇 환난과 빈천으로 옮겨지는 것이니, 혹 시름 때문에 그 자신의 모습을 바꾸고, 혹 좌절 때문에 그 자신이 지키던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 모두 실성한 것이다. 좋은 말이다. 여기서 뜻을 어떻게 정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을 가지고 의리를 변별한다고 하는 것인가? 어느 한 가지 일이라도 마땅히 변별하지 않을 수 없고, 가난과 부귀 및 취하고 버리는 문제에 대해서는 더욱 마땅히 먼저 변별해야 하는 것이다. 부유하려고 하고 가난하지 않으려 하며, 살려고 하고 죽지 않으려고 하니, 어떻게 유독 중인만이겠는가. 군자도 또한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바란다고 해서 의리로 마땅히 취하지 말아야 할 것을 취하며, 바라지 않는다고 해서 의리로 마땅히 버려야 할 것을 버리려고 하지 않는다. 이것은 중인이 되는 까닭이고, 군자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의리로 마땅히 취해야 한다면, 천하를 녹으로 주고 만종(萬鍾,곡물로 1종은 6석4두, 1석은 15두로 대략 현재의 쌀 2가마(144kg)에 해당한다. 따라서 만종은 곡물로 치면 12,500여 가마에 달한다. 즉 보통사람은 상상조차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금액을 뜻한다.)을 선물로 주더라도 사양하지 않는다. 의리로 마땅히 버려야 한다면, 비록 지금 부귀하였다가 내일 굶어죽더라도 잠시라도 있을 수 없다.
공자(孔子)가 위령공(衛靈公)에 대해 그때 벼슬을 할 수 있었지만, 한 마디 말이 합치되지 않으니 드디어 떠났다. 그 당시 문인 제자들로 따른 사람은 10인이었다. 거마(車馬)와 종복(從僕)도 또한 마땅히 이에 맞추어졌을 것인데, 수십 명이 길을 떠나면서 열흘의 준비도 하지 않았으니, 어찌 유독 일신을 의지할 계책이 없어서일 뿐이겠는가? 진(陳)나라에서 양식이 떨어지고 병으로 일어날 수 없게 되자, 용기 있는 자로(子路)조차도 오히려 성내는 말을 하였으니, 나머지 사람들이야 어떠했겠는가? 그러나 성인(聖人)은 또한 추호도 원망하거나 후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전에 손님이 나에게 “이문익(李文翼, 이덕형(李德馨, 1561~1613)) 한음공(漢陰公)이 처음 벼슬을 하여 한 고을의 수령을 하다가 돌아오는 행낭은 뇌물로 몹시도 두툼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상해서 물으니까 ‘나는 이제 국사에 힘을 쏟아야 하는데, 반드시 먼저 집안의 식구들을 잊어야 하기 때문에 이렇게 한 것이다.’라고 대답하였답니다.”라는 말을 해주었다.
나는 “자신을 욕되게 해서 나라와 천하를 안정시키는 이치는 없다. 더구나 당시에 진실로 이러한 일이 있었다면, 뇌물을 받은 혐의로 벼슬을 그만두게 했을 것인데, 누가 국사를 맡기겠는가.”라고 하였다.
아, 세상 사람들은 도리도 없는 것을 가지고 가탁하기를 좋아해서 그의 사사로움에 스스로 편안해하는 것이 그 부류가 이와 같으니, 너무도 한탄스럽다.(옮긴이 주: 마지막 문장을 원문의 맥락에 맞게 나름 의역하면, "아아!, 세상사람들은 도리를 벗어난 불의한 것을 가지고 실제와 다른 것을 갖다붙여 거짓 핑계를 대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불의를 마땅한 것처럼 편안하게 여긴다. 바르고 마땅한 도리를 벗어나 개인적인 이해관계에 치우쳐 옳고 그름을 곡해하는 부류들의 실체가 이렇다. 실로 통탄을 금치 못할 일이다." 선생은 그 대표적인 예로 한음 이덕형의 일화를 들어 자기 합리화를 하고 거짓핑계를 하는 것을 들고 있다.)
※[역자 주]
1. 동파(東坡) : 《동파전집(東坡全集)》 76권 〈여이방숙서(與李方叔書)〉에 보인다. 원문은 “정해진 운명에는 터럭만큼의 보탬도 있을 수 없고, 도덕에서는 산더미처럼 큰 손해가 있다.〔於定命, 不能有毫髮増益, 而於道徳, 有丘山之損矣.〕”로 되어 있다.
-조긍섭(曺兢燮, 1873~1933), '가난한 생활을 하는 것에 대한 해명(居貧解)', 『암서집(巖棲集)』/ 암서집 제16권/ 잡저(雜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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