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감당할 수 없는 것을 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일

긍섭(兢燮)은 남주(南州)의 보잘것없는 선비입니다. 어려서부터 어리석고 나약해서 일마다 다른 사람에게 미치지 못하였고, 다만 오직 부형(父兄)의 가르침으로 글이나 짓고 경전의 자구나 해석하는데 몸을 기탁하였지만, 또한 이미 누차 넘어졌다가 자주 일어나면서 나이가 서른여섯이 되었지만, 안에 아무것도 든 것이 없는 박처럼 속이 텅텅 비어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채 이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몸은 천지의 커다란 변화를 맞아 큰 나루를 건너는데 낡은 노조차 없는 듯 망연하니, 개인적으로 생각하기로는, 스스로 평소 학문을 하여 천하의 의리를 대략이나마 알게 되어, 우리 부자(夫子, 공자의 높임말)가 “날씨가 추워진 다음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뒤늦게 시들음을 알게 된다.”라고 하신 뜻에 감동되었으므로, 한쪽 지역을 얻어 안신입명(安身立命)하는 장소로 삼기를 바랐습니다. 


군국(君國, 임금과 나라를 아울러 이르는 말)과 민생의 위망(危亡, 몹씨 위태로워 망할것 같는 지경)에 대해서는, 비록 한밤중에 천장을 우러르며 탄식하는 회포를 스스로 금할 수가 없지만, 나라와 세상을 경륜하는 일을 조용히 생각해보면 육지에서 수레를 밀어 옮기는 것처럼 한 자 한 발도 옮길 수가 없어서, 배운 학문이 헛됨을 스스로 늘 탄식하기 때문에, 진실로 썩은 선비라고 지목되는 것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지난 번 족하(足下)가 보내준 편지는 종횡으로 거침없이 써내려간 몇 천 자나 되는 분량이라, 읽어 보니 마치 원거(爰居)*에게 종고(鍾鼓)의 음악을 연주해주는 것과 같아서, 놀라서 급히 달아나고 싶었습니다. 


조금 진정하고 나서 답장을 하고자 했으나, 가만히 생각해보니 족하의 내력과 요사이 일의 곡절을 상세하게 알지 못해 자못 정황을 살피다가, 대략 보내온 편지에 의거해 갖추어 순서대로 답하는 말을 썼지만, 말이 너무도 온당하지 못함을 스스로 깨달아서, 혹 그로 인해 거듭 병통을 책망할까 염려되어 감히 부치지 못하였으나, 그 마음으로는 후한 가르침을 준 것을 잠시도 잊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족하는 끝내 끊어버리지를 않고, 다시 손수 편지를 보내 그 연고를 물으면서 더 엄하게 책망하여 애호하는 마음을 더 보여주니, 여기서 또 족하가 긍섭(兢燮)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전에 한두 차례 얼굴을 보여주어 지난번 편지는 명월주(明月珠)*를 무작정 던져준 것은 아니므로 나로 하여금 부끄럽고 두려워지게 하는데, 유독 족하는 번거로운 것도 마다하지 않고 보잘것없는 나 한 사람에게 진심을 다하니, 그 의도가 무엇입니까? 


긍섭은 어려서부터 일찍이 사우(師友)들에게 마음과 힘을 쏟아서 우연히 그릇된 이름을 얻었지만, 그 실 한마디 정도를 길게 할 수 있다고 시대에 조금이라도 가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지혜롭지 못한 것에 가까울 것이니, 가감할 것이 없음을 알고 스스로 그 허물을 피할 틈을 찾느라 근심하였습니다. 자신을 끌어다가 과보(夸父)의 발걸음*을 좇고자 해도 갑자기 넘어져 갈증이 나서 중도에서 죽을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면 불인(不仁)한 것에 가까울 것이니, 긍섭은 감히 스스로를 아끼는 것이 아니라 족하에게 누가 될까 두렵습니다.


대저 사람은 각기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있으니, 족하가 그 할 수 있는 것을 가지고 할 수 없는 긍섭에게 강요할 수 없는 것은, 긍섭이 할 수 있는 것을 가지고 할 수 없는 족하에게 강요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풀 명자와 배와 귤과 유자는 각 그 맛이 있으며, 바다의 붕새와 울타리의 메추라기는 둘이 서로 시샘하지 않습니다. 가령 족하가 진실로 신지식을 개발해서 중생을 널리 제도하여, 도탄에 빠진 이 백성들을 옮겨서 자리 위에 놓을 수 있다면, 긍섭처럼 한 오활하고 썩어빠진 자는 암혈에서 엎드려 지내며 묵은 글이나 외우면서, 천균(千勻, 중량단위로 1균은 30근, 즉 삼만근, 약 1.8톤)이나 되는 것에서 터럭 하나 정도를 떠받치고, 비바람 속에서 등불 하나를 외롭게 켜놓기를 바라는 경우는 유독 용납될 수 없는 것입니까? 


족하는 선비의 일을 죽 들어서 경계를 시켜주었지만, 긍섭은 그 중에 하나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천하의 선비를 두고 말하자면, 진정 오히려 용(龍)처럼 크게도 할 수 있고 작게도 할 수 있는데, 족하가 선비를 논하는 것에는 큰 것만 있고 작은 것은 없으니, 어찌 족하는 ☞ 《주역》의 〈건괘(乾卦) 문언(文言)〉을 살펴보지 않았는지요. 


내 생각으로는 그 잠겨있는 것이나 뛰어오르는 것이 마땅함을 잃는다면, 구름이 떠다니거나 비가 내리는 것이 혹 막히게 됩니다. 행하는데 족하는 노력해서 스스로 애를 쓴다면, 나중에 이름을 이루고 공을 세울 것입니다. 긍섭은 비록 자만하는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마땅히 족하의 집에 찾아가서 술을 따르며 한결같이 위로하고 축하할 것이고, 감히 살아온 종적 때문에 한계를 긋지 않을 것입니다.


만나볼 기약을 할 수 없어서, 글로 써서 답장을 보내느라 내 마음속의 이야기를 다하지 못합니다. 무더운 비는 참으로 고통스러우니, 오직 힘써 식사를 잘해서 더욱 몸을 조섭하기를 바랍니다.


※[역자 주]

1.원거(爰居)원거(爰居)는 해조(海鳥, 바다새)의 이름이다. 원거(鶢鶋)라고도 한다. 이 새가 노(魯)나라 교외에 날아와 앉자, 임금이 그 새를 정중히 모셔다가 종묘에서 환영연을 베풀면서, 순(舜) 임금의 음악을 연주하고, 태뢰(太牢)의 요리로 대접하니, 그 새는 눈이 부시고 근심과 슬픔이 교차하여 고기 한 점도 먹지 못하고, 술 한 잔도 마시지 못한 채 3일 만에 죽고 말았다고 한다.《莊子 至樂》

2.명월주(明月珠)를 무작정 던져준 것 : 아무리 귀중한 보배라도 사람에게 증정하는 도리를 다하지 못하면, 오히려 원망을 초래한다는 ‘명주암투(明珠暗投)의 고사를 차용한 것이다. 《사기(史記)》 卷83 〈노중련추양열전(魯仲連鄒陽列傳)〉에서는 “명월주(明月珠)나 야광벽(夜光璧)을 길에서 사람에게 무작정 던져주면, 모두들 칼을 잡고 노려보는 것은 어째서인가. 아무런 까닭 없이 자기 앞에 왔기 때문이다.〔明月之珠, 夜光之璧, 以闇投人於道路, 人無不按劍相眄者, 何則? 無因而至前也.〕”라고 하였다.

3. 과보(夸父) : 태양을 좇아가다가 8일 만에 목이 말라, 하수(河水)와 위수(渭水)의 물을 마시고도 부족하여 북쪽 대택(大澤)으로 물을 마시러 가다가, 그곳에 도착하기 전에 죽었다고 하는 중국 전설상의 인물이다.《山海經 海外北經》


-조긍섭(曺兢燮, 1873~1933), '어떤 사람에게 답함(答或人)', 암서선생문집(巖棲先生文集)/ 암서집 제15권 / 서(書)-


▲원글출처: 한국고전번역원 ⓒ 부산대학교 점필재연구소 ┃정석태 (역) | 201

TAGS.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