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사람은 마땅히 그른 것을 그르다고 하는 것으로 바름을 삼아야 한다
천하에는 옳고 그른 것이 있을 뿐이다.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함이 그 바름을 얻어야 군자의 도가 밝아지고, 군자의 도가 밝아져야 천하의 일이 다스리지 못할 것이 없게 된다.
옛날에 구양영숙(歐陽永叔)이 ‘비비(非非)’로써 스스로 그 당(堂, 집)의 이름을 삼고 기록하여 말하기를, “옳은 것은 군자가 마땅히 가진 바이니, 사람은 마땅히 그른 것을 그르다고 하는 것으로 바름을 삼아야 한다.〔是者 君子之所宜有 人當以非非爲正〕”고 했는데, 내가 읽어보고 의심하여 생각하기를 “군자의 마음은 선을 선하게 여김이 길고 악을 악하게 여기는 마음이 짧은데, 어찌 그른 것을 그르다고 하는 것으로 바름을 삼기에 이르겠는가?”라고 하였다.
이윽고 《논어》와 《맹자》에서 무릇 고금 인물의 현부(賢否)와 득실(得失)을 논한 것을 자세히 살펴보니, 공자가 그르게 여긴 바와 옳게 여긴 바가 대략 같았으나 맹자의 경우는 그르게 여긴 것이 십 분의 칠 팔이 넘는 것을 보고, “이것이 성인과 현인의 구분이고, 전후로 시세(時世)가 다른 것이다.”라고 여겼다.
그러나 공자가 미워한 바의 교령(巧令, 교언영색(巧言令色)의 줄임말. 말을 교묘하게 잘하고 표정을 꾸미는 사람치고 선하고 어진 이가 드물다는 뜻)ㆍ은괴(隱恠)ㆍ색려(色厲)ㆍ향원(鄕原)ㆍ영인(佞人)ㆍ비부(鄙夫)와 논한 바의 위인지학(爲人之學)ㆍ삼질지무(三疾之亡)ㆍ종정지두초(從政之斗筲)를 보니, 또 마치 온 세상 사람들을 들어 모두 그르다고 하기가 불가함이 없을 것 같으니, 어찌 성인의 관후(寬厚)한 덕으로 이렇게 각박하고 가혹하게 하기를 좋아해서 그랬겠는가?
대개 병통을 근심하고 그른 데 빠지는 것을 슬퍼하여 하나를 들어 백을 징계하려는 것이었으니 그 인(仁)의 무궁함을 더욱 보겠다. 이에 구양자의 말이 비록 격하기는 하지만 지나치지 않음을 알았다.
그러나 세도가 쇠퇴함으로부터 분명한 주장이 없이 모호하게 하는 것이 습속을 이루어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않는 것을 공근(恭謹, 공손하고 삼가함)하고 관후(寬厚, 너그럽고 후함)하다고 한다. 그른 바를 한 번 그르다고 하는 이가 있으면, 그에 대하여 편벽되고 사사롭다고 지목하지 않으면 기세가 억세고 사납다고 병통으로 여겨, 어지럽게 뒤섞인 채 훈유(薰蕕, 착한이와 못된이를 통칭하는 의미)가 냄새를 함께 내고 서박(鼠璞, 쥐새끼와 옥돌)이 이름을 같이 한다. 이에 색려ㆍ향원ㆍ교령ㆍ은괴의 무리가 모두 그 속임수와 거짓됨을 엄폐할 수 있게 되어, 군자의 도는 밝힐 수 없고 천하의 일은 다스릴 수 없으니, 어찌 그리 슬픈가?
긍섭이 젊을 때 강우(江右) 지역에 노닐면서 물재(勿齋) 이공(李公, 이상돈(李相敦, 1841~1911))의 ‘곧은 명성〔直名〕’을 들은 것이 여러 날이었는데, 이윽고 또 진주의 동쪽 행정(杏亭)에서 뵈니 이미 하얗게 백발이 되었다. 그러나 정명(精明)ㆍ강간(強幹)한 기상이 오히려 미목(眉目)과 담설(談說) 사이에 드러났으니 마음에 홀연히 놀랍고 특별하게 여겼다. 그 후 15년이 지나 공의 여러 아들이 공의 유집 여러 권을 가지고 산중으로 나를 찾아와 선별해주고 서문을 써줄 것을 청하니, 공이 돌아가신 지 9년이나 되었다.
공은 젊은 시절에는 과거공부를 익히고 중년에는 경례(經禮)에 몹시 마음을 두었는데, 지금 기록한 것은 대체로 모두 남에게 응수(應酬)한 작품이다. 오직 이른바 〈만록(漫錄)〉과 〈기문(記聞)〉은 근세의 인물과 시사를 지적함이 절실하여 기피하는 바가 없었다. 이것을 비록 다 전하는 것도 불가하지만 또한 결국 묻어버리는 것도 불가하여 그 대략을 보존함으로써 세상의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놀라서 깨달아 스스로 반성하게 한다면, 이 또한 어찌 인(仁)의 방법이 아니겠는가?
강우 지역은 남명(南冥)ㆍ수우당(守愚堂) 등 제현 이래 직도(直道)가 성행했는데, 세월이 오래 지나기에 미쳐서는 혹 지나치게 남의 허물을 들추어내고 실정에 맞지 않게 떠벌리는 폐단이 없지 않아 식자의 근심거리가 되었다.
그렇지만 공이 시비를 판단한 것과 같은 것은 모두 분명하게 남들이 다 함께 보는 것이고 남모르는 사사로운 일을 공격하여 들추어내는 것에 비길 것이 아니다. 그리고 또 평소에 행한 취사(取捨)와 출처(出處)가 자신이 말한 것에 족히 부끄러울 것이 없다. 그러므로 후일의 군자 가운데 마땅히 이 책을 어루만지면서 감개하여 생각을 일으키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역자 주]
1.구양영숙(歐陽永叔): 구양영숙은 송나라 때 문인 학자 구양수(歐陽脩, 1007~1072)를 말한다. 낙양에서 지낼 때 새로 청사를 짓고 서쪽에 당(堂)을 마련하여 비비당(非非堂)이라 명명하고 기문을 지었는데, 《문충집》 권63에 〈비비당기〉가 보인다. 〈비비당기〉의 원문에는 “옳은 것은 군자의 상도이니 옳은 것을 어찌 더할 것인가? 한편으로 보자면 그른 것을 그르다고 하는 것이 바르기만 못하다.〔是者, 君子之常, 是之何加? 一以觀之, 未若非非之爲正也.〕”라고 하였다.《文忠集 卷63 非非堂記》
2. 교령(巧令) : 교언영색(巧言令色). 남에게 듣기 좋게 하는 언어와 보기 좋게 하는 안색. 밖으로 꾸며서 남을 기쁘게 하는 소인의 작태를 말한다. 공자가 “남에게 듣기 좋게 하는 언어와 보기 좋게 하는 안색이 인(仁)이 되기 어렵다.〔巧言令色 鮮矣仁〕”고 한 말이 있다.《論語 學而》
3. 은괴(隱恠) : 색은행괴(索隱行怪). 깊이 은벽(隱僻)한 이치를 찾으며 지나치게 궤이(詭異)한 행실을 하는 것을 말한다.《중용장구(中庸章句)》 제11장의 공자 말에 “색은행괴를 후세에 칭술(稱述)하는 이가 있으니, 나는 이것을 하지 않는다.〔素隱行怪, 後世有述焉, 吾弗爲之矣.〕”라고 경계한 것이 있다.《중용》 원문에는 소은행괴(素隱行怪)라고 되어 있는데, 주자가 《한서(漢書)》의 기록을 근거로 하여 색은행괴(索隱行怪)라고 하였다.
4. 색려(色厲) : 겉으로만 위엄이 있고 내면은 유약한 것을 말한다. 공자가 “안색은 엄하지만 내면은 유약한 것을 소인에 비유하자면 벽을 뚫고서 엿보고 담을 넘는 도둑과 같을 것이다.〔色厲而內荏, 譬諸小人, 其猶穿窬之盜也與!〕”라고 한 말이 있다.《論語 陽貨》
5. 향원(鄕原) : 시류에 편승하여 덕이 없으면서 삼가고 덕이 있는 것처럼 보여 세상에 잘 보이는 사람을 말한다. 공자가 “향원은 덕의 적이다.〔鄕原, 德之賊也.〕”라고 하여 미워한 말이 있다.《論語 陽貨》
6. 영인(佞人) : 실덕은 없이 말재주만 있는 사람을 말한다. 어떤 사람이 공자의 제자 염옹(冉雍)을 두고 “어질기는 한데 말에 능하지는 못하다.〔雍也, 仁而不佞.〕”고 하니, 공자가 말하기를 “어찌 말 잘하는 것을 쓰리오? 그것은 말재주 넉넉한 것으로만 남을 막아 자주 남에게 미움을 사니 염옹의 인을 알지는 못하겠으나 어찌 말 잘하는 것을 쓰리오?〔焉用佞? 禦人以口給, 屢憎於人, 不知其仁, 焉用佞?〕”라고 하였다.《論語 公冶長》
7. 비부(鄙夫) : 비루한 소인을 말한다. 공자의 말에 “비루한 사람과는 함께 임금을 섬길 수 있겠는가. 임금의 마음을 얻지 못해서는 얻을 것을 근심하고 얻고 나서는 잃을 것을 근심하니, 실로 잃을 것을 근심하면 이르지 못할 곳이 없다.〔鄙夫 可與事君也與哉 其未得之也 患得之 旣得之 患失之 苟患失之 無所不至矣〕”고 한 것이 있다.《論語 陽貨》
8. 위인지학(爲人之學) : 남에게 알려지기를 바라는 학문을 말하는데, 자신에게서 얻고자하는 위기지학(爲己之學)과 상대되는 말이다. 공자가 “옛날의 학자는 자신을 위했더니, 지금의 학자는 남을 위하는 구나.〔古之學者, 爲己;今之學者, 爲人.〕”라고 한 말이 있다.《論語 憲問》
9. 삼질지무(三疾之亡) : 병통이 되는 것일지라도 옛날에는 그나마 볼만했는데, 시속이 박하게 변하여 현재는 그것마저 변하여 보기 어렵게 된 상황을 말한다. 공자의 말에 “옛날에는 사람들이 삼질이 있었는데 지금에는 혹 이것도 없다.〔古者, 民有三疾;今也, 或是之亡也.〕”고 한 것이 있는데, 삼질은 광(狂)ㆍ긍(矜)ㆍ우(愚)이다. 공자의 설명에 따르면, 옛날의 ‘광’은 소절에 구애되지 않는 사(肆)인데 지금의 ‘광’은 큰 한계를 넘는 탕(蕩)이고, 옛날의 ‘긍’은 분별이 엄한 염(廉)인데 지금의 ‘긍’은 다투어 어긋나는 분려(忿戾)이고, 옛날의 ‘우’는 다급하게 행하여 스스로 이루는 직(直)인데, 지금의 ‘우’는 사사로이 속이는 사(詐)를 말한다.《論語 陽貨》
10. 종정지두초(從政之斗筲) : 정사(政事)에 종사하는 사람의 기상과 국량이 협소한 것을 말하는데, 두(斗)는 열 되의 용량이고 초(筲)는 한 말 두 되를 담을 수 있는 대그릇〔竹器〕이다. 여기서는 공자 당시 노(魯)나라 대부 맹손(孟孫) 숙손(叔孫) 계손(季孫) 등과 같은 정치가를 뜻한다. 공자의 제자 자공(子貢)이 사(士)의 조건을 물으면서 그 단계가 점점 아래로 내려가다가 “오늘날 정사에 종사하는 사람은 어떻습니까?〔今之從政者 何如?〕”라고 하니, 공자가 탄식하면서 “두초의 사람을 어찌 족히 헤아릴 것인가?〔斗筲之人, 何足算也?〕”라고 하여 말할 거리가 못됨을 경계하였다. 筲는 현재의 자전에 음이 ‘소’로 나오지만 《논어언해(論語諺解)》의 음을 따라 ‘초’로 표기하였다.《論語 子路》
11. 훈유(薰蕕) : 훈은 향내 나는 풀, 유는 악취 나는 풀인데, 선인과 악인 또는 군자와 소인을 비유한다.
12. 서박(鼠璞) : 포로 만들지 않은 쥐고기와 다듬지 않은 옥 덩어리. 춘추 시대에 정(鄭)나라 사람은 다듬지 않은 옥덩어리를 박(璞)이라고 하고 주(周)나라 사람은 아직 포로 만들지 않은 쥐고기를 박(璞)이라고 하였다. 주나라 사람이 정나라 사람에게 박(璞)을 사겠느냐고 묻자 정나라 사람이 사고자했는데, 주나라 사람이 내놓은 것은 쥐고기였다. 이에 정나라 사람이 사절하고 취하지 않은 고사가 있다.《尹文子 大道下》.
-조긍섭(曺兢燮, 1873~1933), '물재집 서〔勿齋集序〕', 암서선생문집(巖棲先生文集)/ 암서집 제18권 /서(序)
▲원글출처: 한국고전번역원 ⓒ 부산대학교 점필재연구소 ┃ 김홍영 (역)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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