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생사의 기로에 서면 사람의 진정이 드러나는 법

공자께서 “말을 알지 못하면 사람을 알 수 없다(不知言 無以知人).”라고 하셨다. 말은 능히 허위와 가식으로 남을 속일 수 있는 것이 있으니, 그것을 아는 것이 어찌 어렵지 않겠는가. 


오직 이치에 절충하고 성인(聖人)에게 헤아려본 뒤에(惟衷於理而衡諸聖  이치에 맞고 적절한 것인지 생각해보고 그 여부를 성인의 검증된 가르침을 기준으로 삼아서 헤아려 본 뒤에야) 그 말을 알 수 있으니, 말을 알게 되면 그 사람을 또한 알 수 있다. 그러나 말은 아무 일 없을 때에는 혹 허위와 가식으로 할 수 있지만 사생(死生)의 즈음(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 이르러서는 진정(眞情)이 드러나니, 허위와 가식을 어찌 용납할 수 있겠는가.


옛날 자장(子張)이 장차 죽으려할 때 그 아들에게 일러 말하기를, “군자의 죽음을 종(終)이라 하고, 소인의 죽음을 사(死)라 하니, 내 오늘 마치게 된 것 같구나.”라고 하였는데, 자장의 평소 학문은 외면으로 힘쓰는 것에 많이 있었기 때문에 죽음에 임하여서도 오히려 군자라는 이름에 집착하였다. 


증자(曾子) 같은 경우는 그렇지 않아 “새가 장차 죽을 때에는 그 울음소리가 애처롭고, 사람이 장차 죽을 때에는 그 말이 착한 법이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평소의 말이 반드시 다 선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고, “내 무엇을 구하겠는가. 내가 바름을 얻고 죽으면 그뿐이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자신이 오히려 바름을 얻지 못하였음을 밝힌 것이다. 


이것은 “있어도 없는 것처럼 여기고, 가득해도 빈 것처럼 여긴다.(有若無 實若虛)”라는 것과 “인(仁)으로써 자기의 책임을 삼고, 죽은 뒤에야 끝난다.(仁以爲任 死而後已, 논어 태백편에 나오는 증자의 말이다. 원문은 '仁以爲己任 不亦重乎 死而後已', 즉 '인은 내가 져야할 짐이니 죽은 뒤에야 멈춘다. 그러니 어찌 무겁지 않겠는가?')”라는 뜻이니, 어찌 넓고 넓어 그 말에 부끄러움이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비록 그러하나 증자는 노둔한 사람(魯人)이다. 그 재조(才調, 재능이 고르게 조화를 이루는 모양새), 변식(辯識, 조리있는 말에서 드러나는 식견과 학식), 문위(文爲, 문장으로 표현함), 용절(容節, 몸가짐에서 절개와 지조가 드러남)은 상(商), 사(賜), 언(偃), 사(師)의 무리*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많은데도, 마침내 성인(聖人)의 전함을 얻어 제자(諸子, 학문 또는 사상으로 일가를 이룬 사람)들이 감히 바랄 수 없는 사람이 된 것은 오직 실제로 인(仁)에 종사하였기 때문이다. 


인(仁)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부자(공자)께서 이른바 ‘자기의 사욕(私慾)을 이겨 예(禮)에 돌아간다.’라는 것이 이것이니, 재조ㆍ변식ㆍ문위ㆍ용절이 갑자기 엄습하여 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역자 주] 상(商), 사(賜), 언(偃), 사(師)의 무리 : 상(商)은 자하(子夏), 사(賜)는 자공(子貢), 언(偃)은 자유(子游), 사(師)는 자장(子張)의 이름이다


-조긍섭(曺兢燮1873 ~1933),  『암서집(巖棲集) 제37권』/잡지(雜)/잡지 하(雜識下) 중에서 부분-


▲원글출처: 한국고전번역원 ⓒ 부산대학교 점필재연구소 | 남춘우 (역)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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