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산골짜기에 흐르는 시냇물처럼

중 연사(然師)는 신인종(神印宗)의 시(詩)를 잘하는 스님이다. 그의 기상은 화목하고 마음은 담담하여, 공리(功利)와 명예의 마음을 버리고 선적(禪寂)*에 잠심하니, 당대 사대부들 중에 소중히 여기는 이가 많았다. 이제 ‘고간(古澗, 오래된 산골짝기의 물, 계곡의 물)’이라는 현판을 달고 나에게 기문을 청하였다. 


나는 생각하기를, 사람의 천성이 선(善)한 것은 물의 본성이 맑은 것과 같은 것이다. 성품이 본래 선한 것이지만 악(惡)이 생기는 것은 욕심이 유혹하기 때문이며, 물의 본성은 본래 맑은 것이지만 흐리게 보이는 것은 오물이 더럽히기 때문이다. 그 악을 버리고 그 선을 보존시키면 인성(人性)은 그 처음대로 회복될 것이며, 그 흐린 것을 없애고 맑음을 나타내면 물의 본성은 그 정상을 되찾을 것이다. 


그러나 온 천하의 물은 작은 도랑과 못이며 큰 것은 하수(河水)와 바다이지만 어느 것이나 모두 물이다. 도랑과 못은 아래에 있기 때문에 더러운 것이 모두 흘러 모여 더럽혀지기가 쉽고, 하수와 바다는 그 용량이 넓기 때문에 탁한 것도 모두 받아들여 사양하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하수(河水)와 바다도 모두 극히 맑을 수 없으니, 극히 맑은 것은 오직 산에 있는 시냇물뿐이다. 


시냇물은 그 근원이 높은 곳에 있어서 더러운 것이 흘러 모여들 길이 없고, 그 흐름이 빠르기 때문에 흐린 것이 머무를 수 없다. 돌이 있어서 물결을 만들고 모래가 있어서 걸러진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그 흐르고 쏟아지며 차서 넘치며, 더디고 빠르고 부딪치고 솟구치며 벼랑에서는 폭포가 되고 오목한 곳에서는 맴돌며, 어떤 곳에서는 평평하게 바로 흐르고 어떤 곳에서는 굽어서 굽이친다. 혹은 사납고 성내며 혹은 잠기고 숨으며, 장마가 지면 넘치고 얼음이 얼면 목메어 흐른다. 


이렇듯이 변화는 지극히 많지만 그 맑음은 언제나 그대로이다. 졸졸 콸콸하게 밤낮없이 만고를 지나도 쉬지 않는다. 도(道)를 닦는 선비는 마땅히 이것으로써 스스로 힘써서 그의 마음을 맑게 하고 그의 본성을 회복하여 선(善)에서 영원히 잃지 않아야 할 것이다. 


지금 연사(然師) 스님이 공허(空虛, 속이 텅빔, 마음을 비운 상태)에 숨고 산림(山林)에 깊이 들어가 숨는 곳이 깊지 않을까 걱정하여 시냇물 위에 집을 짓고 살면서 새벽에 일어나서 그 흐름을 관찰하고 밤에는 앉아서 그 소리를 들으며 매양 스스로 몸을 살피니 마음이 물과 더불어 함께 맑고 공부가 물과 더불어 쉼이 없어서, 천성의 선함이 담담하게 절로 날마다 일상 생활에 유행하니 이것이 고간(古澗)을 스스로 집의 현판으로 삼은 까닭인가. 


나는 선학(禪學)에 있어서 아직 그 흐름을 건너지 못하였기 때문에 언급하지 못한다. 갑자년 10월 갑술일.


-권근(權近 1352∼1409), '고간기(古澗記)'. 동문선 제78권/ 기(記)- 


▲원글출처:ⓒ 한국고전번역원 ┃ 김용국 (역) | 1968


※[옮긴이 주]

1.선적(禪寂):선적은 불가(佛家)에서 진리를 깨닫기 위해 조용히 명상(冥想)에 잠기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마음의 수양으로 마음이 외물의 상황이나 변화에 흔들림이 없고, 내면적으로도 마음에 잡념이 없는 평정(平定) 정심(正心)의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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