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졸(拙)이란 것은 남이 버리는 것을 내가 취하는 것

(상략) 졸(拙, 옹졸할 졸)은 교(巧, 공교할 교, 교묘함)의 반대이다. ‘임기응변을 교묘하게 하는 자는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 부끄러움이 없는 것은 사람의 큰 병통이다.’ 하였으니, 남들이 이욕을 탐내어 나아가기를 구하면 나는 부끄러운 것을 알아서 의리를 지키니 졸(拙)한 것이요, 남을 교묘하게 속이기를 즐기는 데 나는 부끄러움을 알아서 그 참된 것을 지키니 이 또한 졸한 것이다. 


졸이란 것은 남이 버리는 것을 내가 취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아가는 자가 반드시 얻는 것이 아니고 교묘한 자가 반드시 이루는 것이 아니다. 교묘한 자는 정신이 날로 피로하여 한갓 스스로 병이 될 뿐이다. 어찌 나의 참된 것을 버리고 교묘와 허위에 의탁하여 이익을 구할 것인가. 만약 의리에 나아가고 참됨을 지키는 자라면 스스로 얻음이 있고 스스로 잃지 않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욕망이 없으니 편안하고, 부끄러움이 없으니 태연할 수 있다. 이것이 졸(拙)한 사람은 부끄러움을 아는 데 시작하여 부끄러움이 없게 된다. 그것으로써 넉넉히 스스로 호연(浩然)하게 존재하여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졸한 것을 기른다는 것은 덕(德)을 기르는 것이다.(이하생략)



-권근(權近 1352∼1409), '졸재기'(拙齋記)' 부분, 『양촌집/양촌선생문집 제11권 / 기류(記類)』, 동문선 제 78권/ 기(記)



▲원글출처:ⓒ 한국고전번역원 | 김주희 (역) | 1978


"교(巧)와 졸(拙)을 쓰는 것으로 말하면, 선천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사람의 후천적인 행위 여하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교졸(巧拙)이라고 흔히 병칭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강유(剛柔)나 강약(强弱)과 같은 상대적인 개념을 지닌 명칭은 아니다. 교(巧)라는 것은 보기 좋게 합리화하여 꾸미면서 장난을 치려고 하는 데에서 일어나는 것이니, 필경에는 사람의 거짓된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졸(拙)이라는 것은 뭔가 모자란 상태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보일지는 몰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늘의 작용(天機)에서 전혀 이탈되지 않는 순진(純眞)한 행동이라고 할 것이다. "-최립(崔岦 1539~1612, '用拙齋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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