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오직 선한 것을 보배로 삼는다

(상략) 내가 생각하건대, 정금(精金, 순금)ㆍ양옥(良玉, 없이 완벽한 옥)은 천하에 지극한 보배이나 모두 몸 밖의 물건으로서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으니, 없다고 해서 손해될 것 없으나 있으면 해를 가져 오기에 적합하니, 이 어찌 귀중한 것이 되겠는가.


옛 성인들은 임금의 자리를 큰 보배로 삼아 인(仁)으로써 지켰으니, 복희(伏羲)ㆍ신농(神農)ㆍ요(堯)ㆍ순(舜)ㆍ우(禹)ㆍ탕(湯)ㆍ문왕(文王)ㆍ무왕(武王)이 다 그 법이 같았고, 우리 부자(夫子 공자) 같은 이는 그런 덕은 있으나 그 자리를 얻지 못하였고, 보배를 품었으나 시행하지 못하게 되매, 글로 써서 백왕(百王)에게 모범을 보이되 “보배로 여기는 것은 오직 어진(賢)이다.(所寶惟賢) 하였고, 증자(曾子)는 도를 전하여《대학장구(大學章句)》에 밝히되 “오직 착한 것(善)을 보배로 삼는다.” 하였으니, 이에 의한다면 성현들의 이른바 보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인(仁)이란 것은 마음의 전덕(全德, 온전한 덕성)이고, 현(賢 어짊)ㆍ선(善)이라 하는 것은 모두 마음의 나타난 것(마음으로부터 우러나와 드러난 것)이니, 사람마다 모두 이 마음이 있어 하늘에서 받아 몸에 간직하고 있음이, 마치 옥이 돌 속에 있고, 금이 광석 속에 있는 것과 같다. 


한 몸의 주체가 되고, 만리(萬理, 세상의 모든 이치와 도리)의 근원을 갖추어 형철(螢澈,지혜나 사고력 따위가 밝고 투철함)하고 광명하므로, 감촉(感觸)에 따라 반응됨이 당초에는 우매한 사람이나 지혜로운 사람의 차이가 없는 것인데, 중인(衆人, 보통 사람들)은 스스로 혼매하여 잃어버리나, 성인은 타고난 대로 온전하게 지니므로, 옥과 같이 정결하고 금같이 순수하여 혼연히 대성(大成)하였으니, 그 보배로 여길 것이 물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시경(詩經)》에 문왕(文王)을 칭송하기를 “금옥의 바탕이다. (金玉其相)”하고, 맹자가 부자(夫子)를 찬미하기를 “금으로 시작하고 옥으로 그친다. (金聲玉振)”하였으니, 이는 모두 형용을 잘한 것들이다.


부도(浮圖, 불가의 승려)들도 부처를 칭송하되 또한 옥호 금색(玉毫金色,옥호는 부처의 미간(眉間)에 있는 흰 털. 금색은 그 흰 털에서 나오는 광채)이라 하는데, 비록 그 도를 알지는 못하나 역시 마음으로써 근본을 삼아 청정(淸淨)한 보주(寶珠)에 비하는 것이니, 요컨대 또한 마음에 벗어나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아, 천(天)ㆍ지(地)ㆍ인(人)이 삼재(三才)인데, 삼재의 도가 마음에 갖추어 있고, 불(佛)ㆍ법(法)ㆍ승(僧)이 삼보(三寶)인데, 삼보의 묘리(妙理)가 마음에 근본하였으니 마음의 덕이 그 훌륭하지 아니한가. 


금이 지극히 강하나 불리면 녹고, 옥이 지극히 단단하나 갈면 갈리지만 오직 마음이란 불린다 해서 녹지도 않고 간다고 해서 갈리지도 않으니, 지극히 크고 지극히 강하여 천지에 가득 차 빈 데가 없는 것이다. 


상인(上人, 승려의 높임말,  보암스님을 말함,  보암스님의 액자에 이 글을 써주었음)이 이를 보배로 하여 잃지 않고 지키며, 이를 보존하여 모자람이 없이 채운다면, 금강불괴(金剛不壞,매우 단단하여 결코 파괴되지 않음)를 스스로 얻게 될 것이고, 옥호광(玉毫光, 부처의 미간 사이에 난 털이 빛을 내는 것)이 장차 그로부터 나타나게 될 것이니, 그 보배로움이 이보다 큰 것이 없을 것이다.(이하생략)


-권근(權近 1352∼1409), '보암기(寶巖記)'중에서 부분, 양촌선생문집 제11권 / 기류(記類)- 


▲원글출처:ⓒ 한국고전번역원 | 김주희 (역) | 1978


"달은 천번을 이지러져도 그 본바탕은 변함이 없고, 버드나무 가지는 백번 꺾여도 새 가지가 돋아난다.(到千虧餘本質 柳經百別又新枝, 월도천휴여본질 유경백별우신지)" -김구 선생(1876∼1949)께서 쓴 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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