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여도지죄(餘桃之罪 ): 먹다 남은 복숭아를 먹인 죄

위나라 왕의 측근 중에서 특별히 왕의 총애를 받는 미자하(彌子瑕)라는 잘생긴 소년이 있었다. 어느 날, 어떤 사람이 미자하의 어머니가 병이 나서 위독하다고 미자하에게 알려 주었다. 어머니 걱정에 초조해진 미자하는 왕의 수레를 타고 급히 나갔다. 왕의 명이라 속인 것이다. 그런데 위나라의 법에 왕의 수레를 몰래 탄 자는 월형(刖刑)에 처하도록 되어 있었다. 월형은 톱으로 한쪽 혹은 양쪽 다리의 종아리 아래 부분을 잘라 걷지 못하게 하는 끔찍한 형벌이다. 


이 사실을 곧바로 알게 된 왕은 오히려 미자하가 착하고 어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미자하는 진정 효자로구나. 어머니를 위하느라 월형의 죄를 범하는 것도 잊었으니 말이다.”  어느 한 날은 왕을 수행하며 함께 과수원을 산책했다. 잘익은 복숭아를 따서 먹어 보던 미자하는, 복숭아가 그렇게 달고 맛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제가 먹던 복숭아를 서슴치 않고 왕에게도 권했다. 그러자 왕은 기뻐하며 말했다. “네가 나를 사랑하여 맛있는 것도, 혼자 다 먹지 않고 나에게 먹게 하는구나.”


미자하가 나이가 들자, 잘생긴 용모도 시들어 버렸다. 그에 따라 왕의 총애도 함께 식어갔다. 왕과 멀어지자 사소한 일에도 질책을 받게 되었다. 그러다가 결국 죄를 물어 처벌을 받게 되었다. 왕은 말했다. “미자하는 원래부터 그런 놈이다. 일찍이 내가 타는 수레를 내 명령이라고 속여 탄 일도 있었다. 뿐만아니라 자기가 먹다 남긴 복숭아를 내게 먹인 일도 있었다.”


미자하의 행동은 처음이나 나중이나 달리 변한 것이 없다. 그런데 전에는 착하다고 칭찬받고 인정받던 일이 나중에는 죄로 판단되고 결국 처벌을 받게된 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사랑하고 미워하고 신뢰하는 마음이 변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총애를 받고 있는 동안에는 언행 모두가 마음에 들기때문에 용납된다. 그래서 더 가까워지고 더욱 친밀하게 된다.


하지만 군주에게 일단 미움을 받게 되면 지혜로운 옳은 말일지라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때문에 죄를 받으며 소원함만 더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군주에게 간언을 하고 담론을 하는 사람은 조심해야 한다. 군주가 미워하고 싫어하고 좋아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헤아리고 잘 살핀 뒤에야 비로소 말을 해야 한다


용(龍)이란 동물은 유순하다. 길들이면 사람이 탈 수도 있을 만큼 순하다. 그러나 턱밑에 지름 한자 정도 되는 역린이 있다. 만약 사람이 그것을 건드리면 용은 반드시 그 사람을 죽인다. 군주에게도 또한 역린이 있다. 만일 말로써 군주를 설득하려는 사람이 군주의 역린을 건드리지 않을 수 있다면, 그야말로 훌륭한 설득이라 할 수 있겠다.(참조: 한자 원문을 기준으로 인터넷 여기 저기 떠있는 역자와 출처가 표기되어 있지 않은 여러 엇비슷한 번역글들을 비교하여, 거의 표절해서 맥락에 맞게 나름 이해하는 글로 다시 풀어 옮겼다,)


-한비자(韓非子) 제12편, 세난(說難)-


※사족: 여도지죄의 고사에서 한비자의 역린에 대한 설명은, 타인을 설득하기 위한 목적지향적인 사회적 처세술로  곧잘 인용되는 한비자의 통찰이다. 그런데 고사의 내용은 한비자의 설명과 함께 복잡 미묘한 인간관계를 재삼 생각케 만든다. 왕이나 군주라는 단어 대신에 보편적인 '인간(사람)'으로 바꿔 놓고, 이해해도 별 무리가 없는 까닭이다. 살아오며 '진심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 ' 정말 좋아합니다'. 기타등등 달달하고 좋은 말들을 흔하게 들어왔다.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 그러한 칭찬과 고백들이, 적대적이거나 모멸어린 감정의 부메랑으로, 변질되어 되돌아오는 것 또한 흔하게 알아차린다. 같은 해일지라도 아침 해 다르고 저녁 해 다른 것은 그것을 대하는 사람의 마음때문이다. 그것도 상황, 환경, 장소, 시간, 기대, 정서 등에 따라 수시로 다르다. 애정이든 사랑이든 우정이든 신뢰든 그것이 변한다는 것은, 애당초 그것들이 아닌 무언가 다른 것들이 그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라 나름 헤아려 본다. '진정한' 이라는 수식어는 그 본질만큼은 변하지 않는 것에 붙여진다고 생각한다. 진실되고 진정한 인간관계, 성숙된 사람살이라는 것이 참 어렵고도 미묘하다 하겠다. 여담으로 요즘 인터넷에서 인생을 그리 다양하게 혹은 오래 살아보지도 않은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마치 세상을 달관하고 인생을 초월한 듯한 좋은 말들을, 그것도 아주 멋잇게 하이큐류의 짧은 몇 마디로, 읊조리는 사람들을 종종 발견한다.  진심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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