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선과 악, 크고 작은 것의 행불행
마포는 근처에 강이 있어 뱀과 벌레가 많다. 내가 밖에 나갔다가 집에 들어오니, 종(집에서 부리는 일군, 하인)이 큰 뱀 두 마리를 잡았다가 곧 놓아 주며, 작은 뱀 두 마리는 잡아서 죽이는 것을 보았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종은, "큰 뱀은 영(靈)이 있어서 죽일 수 없습니다. 죽이면 사람에게 앙갚음을 하지요. 하지만 작은 뱀은 죽이더라도 사람에게 앙갚음을 못합니다."라고 대답했다.
뱀은 사악한 짐승이다. 큰 뱀은 사악함도 큰 반면, 작은 뱀은 사악함이 작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큰 것은 사악함이 큰데도 죽임을 면하고 작은 것은 도리어 사악함이 작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했구나! 이러한 일이 어찌 짐승에게만 해당되겠는가?
사람도 마찬가지다. 크게 사악한 자는 그 악이 크기 때문에 힘을 가지게 되고 이에 따라 사악함이 작은 자가 도리어 죽임을 당한다. 반대로 선행의 경우는 반대여서 크게 선한 자는 소문이 나지 않고 작게 선한 자는 소문이 난다. 그러므로 크게 충성스러운 자는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작게 충성스러운 자가 보상을 받으며, 큰 현자는 쓰이지 못하고 작은 현자는 쓰이게 된다. 이것이 선과 악, 크고 작은 것의 행불행이 아니겠는가?
말이 나온 김에 몇 마디 덧붙인다. 살인을 많이 한 도척(盜跖)은 멸하지 않고, 담을 넘은 좀도둑은 몸이 찢겨진다. 살인자는 버려두고 베 두 필 훔친 자는 죽인다. 큰 아전이 소리 질러 겁을 주어 협박하면 미천한 백성들은 땅바닥에 나뒹군다.
또 덧붙여 말한다. 공자(孔子)와 묵자(墨子)는 조정에 올라가지 못하고 보잘것없는 유생은 성공하며, 예장나무(녹나무, 장목)는 버려두고 익나무가 대들보가 된다. 이제 백성들 가운데 어떤 자를 포상하고 어떤 자를 징계할 것인가?(안대회 역)
-심익운(沈翼雲, 1734∼1783), '대소설(大小說)', 백일집(百一集)-
▲번역글 출처: 『조선의 명문장가들』(안대회 지음 | 휴머니스트 |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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