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나라의 세 도적(三賊) / 심익운

나라에는 세 부류의 도적(盜賊)이 있다.  이는 곧 백성의 재앙이다. 나라에 세 부류의 도적이 횡행함은 나라가 잘못되어 있음을 알리는 표식이다. 임금된 이가 세 도적을 살펴서 제거하면 나라가 창성할 것이요, 세 도적이 제거되지 않고 그 무리의 영향력이 청산되지 않으면 나라가 필시 멸망할 것이다.  무엇을 일러 세 부류의 도적(盜賊)이라고 하는가? 

재능과 역량(才力)은 벼슬을 맡기에 부족하고, 명예는 향당(鄕黨, 태어나고 자란 지방이나 마을)에 일컬어지기에 부족한데도, 한갓 일가 무리(種族)의 강성함과 가문의 재력과 세력(世家巨室)의 중함을 등에 업고 위엄을 부리고 기세를 올리며, 백성들을 약탈하고 착취해도, 고을을 다스리는 현령이 감히 힐난하지 못하고, 고을이 속한 지방 전체를 다스리는 방백(관찰사)이 감히 꾸짖지 못하는 자를 이름하여 '향당(鄕黨)의 도적'이라 한다. 

문(文)은 세상을 경륜하기에 부족하고, 무(武)는 적을 위협하기에 부족하며, 재능은 일을 도모할만한 역량이 없으면서도, 부모 형제(父兄)를 잘 둔 덕분에  그 사이에서 호의호식하며 으시대다가, 나라의 관직에 임명되면 탐욕스럽고 포악하기가 그지 없어 예사로 백성들의 살갗을 벗기면서, 오직 임금의 좌우에 자리잡고 총애를 받아 부귀영달의 길로 나아가기를 도모하는 자를 이름하여 '주군(州郡)의 도적'이라 한다. 

겉치레를 화려하게 꾸미고, 속은 텅텅 비었으되 입은 살아있어 온갖  술수로 경상(卿相)의 자리를 취하고, 오직 임금의 뜻에만 순종함으로써 지위를 다지고 사리 사욕을 채우기만 할 뿐, 나라일은 돌보지 않는자를 이름하여 '조정(朝廷)의 도적'이라 한다. 

무릇 이 세 도적은 한결같이 이(利, 이익, 이득, 즉 사리사욕)에서 나오니,  이(利)란 곧 재앙의 시초다. 임금이 되어 세 도적이 탐하는 바 이(利)를 막지 못함은, 임금의 마음이 밝지 못하기 때문이다. 임금의 마음이 밝지 못하면, 사람을 알아보지 못한다.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면 조정(朝廷)의 도적이 등용되기 마련이다. 조정(朝廷)의 도적이 등용되면  주군(州郡)의 도적이 많아지게 된다.  주군(州郡)의 도적이 많아지면 향당(鄕黨)의 도적이 두려워하는 바가 없게 된다. 나라에 세 부류의 도적이 위에서 서로 횡행하면 백성들은 아래에서 곤궁에 빠지게 된다. 백성이 곤궁하면서 나라가 망하지 않는 경우가 없다.  

그러므로 임금의 통치술은 사람을 알아보는 데에 있다. 사람을 알아보는 것은 마음을 밝게 하는 것에 달려 있다. 마음이 밝지 못한 것은 이(利)가 마음을 가려서이다. 임금이 된 자가 나라에 만연한 이 세 도적을 제거하고자 하면서, 우선하여 자신의 마음부터 바르게 하지 못한다면, 과연 무엇을 가지고서 이들을 제거하고 또 이들이 퍼질러 놓은 뿌리깊은 적폐를 청산할 수 있겠는가?

-심익운(沈翼雲 1734∼1783), '세 부류의 도적(三賊)', 백일집(百一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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