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글을 짓는 방법 3가지 / 심익운
글(文)을 짓는 방법은 대략 세 가지가 있다. 도(道)와 법(法)과 신(神)이다. 도(道)는 본체며, 신(神)은 작용이고, 법(法)은 그 틀(器)이다. 이것을 사람의 몸에 비유하자면, 도(道)는 그 사람됨의 근본이다. 법(法)은 눈·코·입·귀·몸 등등처럼 바꿀수 없는 것이며, 신(神, 정신)은 그 지각운동의 영민함(정신활동, 즉 생각하고 느끼고 반응하는 일체의 정신활동)이다. 그러므로 도(道)로써 그 학문의 근본을 세우고, 법(法)으로써 그 바탕을 바르게 하며, 신(神)으로써 깨달음을 오묘하게 하는 것이다.
도(道)는 항상 주(主, 주인, 근본)가 되고, 법(法)과 신(神)은 서로 번갈아 그 뒤를 따르기에, 그로부터 기(奇, 독특함, 즉 독창성 혹은 창의성을 뜻함)와 정(正, 누구가 다 아는 원칙으로서의 바름, 온전함)이 나눠진다. 정(正)을 우선하는 측면에서 말하자면, 도(道)가 있은 이후에 법(法)이 있게 되고, 법(法)이 있은 이후에 신(神)이 있게 된다. 이것은 사람의 경우에 비유하자면, 사람이 되는 이치가 있는 이후에 몸이 생겨나고, 몸이 생겨난 이후에 영민함(일체의 정신활동)이 발하게 되는 것과 같다.
기(奇)의 측면에서 말하자면 도(道)가 처음이고 신(神)이 그 다음이다. 이는 신(神)이 깃드는 곳이 법(法)이라는 사실은, 곧 영민함(일체의 정신활동)이 몸에 거하는 것과 같다. 만약 사람인데도 영민함이 없다면, 그 몸은 그저 쓸모없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법(法)은 신(神)이 깃드는 곳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우선순위를 차례대로 하면, 도(道), 법(法), 신(神)의 순서가 된다. 그 오묘한 이치를 말하기를 "도(道)는 본체이고, 신은 작용이며, 법(法)은 그 틀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손자병법에 "싸움은 정면에서 적과 맞서며(正), 다른 한편으로는 적이 예측하지 못한 변칙적인 계책(奇)으로써 이긴다(凡戰者 以正合 以奇勝)"라고 하였으니, 기(奇)와 정(正)을 알면 더불어 글(文)에 대해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배움으로 근본을 세우는 것은 도(道)에 달려 있고, 바탕을 바르게 하는 것은 법(法)에 달려 있으며, 깨달음을 오묘하게 하는 것은 신(神)에 달려 있다.
그런데 법(法)을 구비하였지만, 신(神)이 충분하지 않으면 죽은 시체처럼 되는 문제가 생긴다. 신(神)을 한결같이 온전히 갖추고 있지만, 법(法)이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귀신처럼 되는 문제가 생긴다. 신(神)이 전일하고 법(法)이 구비되어 있지만, 도(道)로부터 말미암지 않으면 여우처럼 되고 마는 문제가 생긴다.
왜 그런가? 사람이 몸이 있으나 영민함(일체의 정신활동)이 없다면, 곧 죽은 시체가 아니겠는가? 영민함이 있으면서 몸이 없다면, 곧 이가 귀신이 아니겠는가? 또 이미 몸이 있고 또한 영민함이 있는데도 사람이 아니라고 한다면, 이는 곧 여우가 사람의 탈을 빌린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도(道)와 법(法)과 신(神), 이 세 가지를 온전히 하고, 기(奇)와 정(正)의 구별을 바르게 알게 된다면, 능히 글(文)을 지을 수 있을 것이다.
-심익운(沈翼雲, 1734∼1783), '설문일원(說文一原)', 백일집(百一集) 文-
※[옮긴이 주]
1. 기(奇)와 정(正):
손자병법이 그 출전이다. 손자병법에,
"대규모의 군대를 통솔중 적의 기습공격을 감수하더라도 패배하지 않는것은 기이한 변칙(奇)과 정석의 원칙(正)을 조화롭게 운용함에 의해 가능하다....전쟁을 하는자는
적을 정면으로 맞서는 원칙(正)으로 대적하고, 기술적인 변칙(奇)으로 승리한다. 그러므로
변칙을 잘 운용하는 자는 천지처럼 작전이 궁색해지지 않으며, 강물처럼 고갈되지 않는다."하였다. 노자 57장에는,
"정(正)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기(奇)로 군대(兵)을 운용하며, 무사함(無事)로써 천하를 취한다."고 하였다. 문장(글)에서의 정(正)은 누구나 다 아는 바 원칙을 뜻한다. 원칙이라는 점에서 정(正)은 기본기에 해당된다. 기본기는 배움과 부단한 학습을 통해 갖춰진다. 반면에 기(奇)는 단순히 배움과 학습을 통해 갖추어지는 그 무엇이 아닌듯 하다. 기(奇)는 변칙이라는 점에서, 남들과 분명하게 구별되는 것으로, 글쓰는 사람만의 독창적인 사유 혹은 영감에 해당된다 하겠다. 즉 정(正)을 기본기로 하여 우러나오는 지혜와 통찰 그리고 자기만의 사유의 결과로 남다르게 표현된 것을 통털어 기(奇)라 할 수 있겠다. 윗글에 의하면 글짓는 방법은, "도(道)는 본체며, 신(神)은 작용이고, 법(法)은 그 틀이다. 따라서 도(道)와 법(法)과 신(神) 모두를 온전히 하고, 기(奇)와 정(正)의 구별을 바르게 아는 것"으로 요약된다. 도(道)를 근본으로 하되 신(神)과 법(法)의 유무에 따라 그 정(正)을 알 수 있고, 그 운용의 여부에 따라 그 기(奇)를 알 수 있다. 심익운 선생은, 아예 죽은 글, 실체가 불분명한 허황된 글 그리고 기교를 부려 현혹하고 기만하는 글의 특징을 시체와 귀신과 여우의 비유를 들어 잘 설명하고 있다. 기(奇)와 정(正)은 상대적인 개념으로 상호보완의 관계로, 그 바탕은 도(道)법(法)신(神)이다. 유한준(兪漢雋,1732~1811)선생은, 문장에서 "비록 정(正)을 주인으로 하고, 기(奇)을 객으로 하더라도 기(奇)가 없는 정(正)은 없다."(저암집/文訣)고 통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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