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로운 개 (韓狗篇,)

막내 아우 서도에서 돌아와서는'한구문(韓狗文)' 한 편 글을 내게 보인다. 읽다간 두 번 세 번 감탄하노니 이런 일 세상엔 정말 드무네. 역사가는 기술을 중히 여기나 기려 찬송 하는 건 시인 몫이라, 두 가지 아름다움 갖춰야겠기, 내 마땅히 다시금 노래하려네. 

이 개는 평안도 강서 산으로 주인인 한(韓)씨는 너무 가난해, 기르는 짐승이란 이 개 뿐인데, 날래고 영특하기 짝이 없었지. 주인을 잘 따르고 도둑 지킴은 개의 본성이거니 말할 게 없네. 사람으로 치자면 충효의 선비, 지혜와 용기를 두루 갖춘 격. 가난한 살림이라 하인도 없어 개 시켜 물건 사러 보내곤 했지. 보자기를 그 귀에 걸어놓고서 글씨와 돈 거기다 매달아 주면, 시장 사람 달려오는 개를 보고는 한씨집 개인줄을 으레이 알아, 글을 보고 살 물건 건네주는데 그 값을 차마 감히 못속였다네. 그걸 이고 부지런히 돌아와서는 꼬리치며 기뻐서 좋아했었지. 

읍내 부자 주인을 속이려 들어 길위에서 못된 말을 퍼부을 적에, 그 형세 제멋대로 때리려 드니 개가 보고 성내며 내달아 와서, 그대로 달려들어 으르렁대니 호랑이가 돼지를 물어 뜯는듯. 주인이 그만 두라 명령을 하자 꼬리치며 그곁에 주저 않았지. 이후론 부자도 꼼짝 못하고 한씨 보길 관원 보듯 두려워했네. 한씨집 개 온 고을에 소문이 나서 원근에서 다투어 구경을 왔지. 

빚장이가 그 개를 갖고 싶어서 불쑥 와선 돈 갚으라 독촉을 한다. 돈 없어 갚으려도 갚지 못하자 개를 찾아 제손으로 끌고 가누나. 주인이 개를 안고 말을 하는데 개 앞에서 주루룩 눈물 흘리네. “어이 뜻했으리. 나와 너 사이 하루 아침 서로를 버리게 될줄. 가난한 집을 떠나 부자집 가니 좋은데로 옮기는 걸 축하하노라. 잘 가서 새 주인을 좋게 섬기며 배불리 먹으면서 잘 지내거라.” 

개와 헤어지고서 방에 들어와 개 생각에 눈물만 샘솟듯 흘러, 문 나서 개 가는 곳 살피어 보니 개는 이미 중도에서 되돌아 와서, 옷깃 물며 품 속으로 뛰어드는데 새 주인이 달려와 또 성을 내니, 손수 끌어 새 주인께 넘겨 주면서 귀에 대고 거듭거듭 당부하였지. 

나흘 닷새 동안이나 이처럼 하니 개가 가고 오는 것이 잦기도 했네. 새 주인이 와서는 다시 말하길  “이 놈의 개 길들일 수가 없으니 개는 도로 가져가고 돈을 내놓게. 다시는 미적대며 늦추지 말고.”  주인은 아무런 대답 못하고 개를 쓰다듬으며 달래 하는 말 “옛주인을 진실로 생각한다면 새주인도 의리가 또한 같으니, 네가 진정 옛주인을 생각한다면 성심으로 새주인을 섬겨야 하리. 어이해 명한 바를 이리 안듣고 오가는 번거로움 꺼리잖느냐?” 

주인의 타이름을 개가 듣더니 새주인 집으로 돌아를 갔지. 하루 해 어찌나 지루하던지 고개 들고 황혼되길 기다리다가, 몰래몰래 옛주인 집 돌아와서는 울타리 가 숨어서 고개 떨구고, 주인 볼 생각조차 감히 못하며 다만 그 집 문을 지키었었네. 두 집의 거리가 사십리인데 길 험해 가시밭도 적지 않건만, 날마다 잠시도 그만둠 없이 춥건 덥건 비바람이 몰아쳐 와도. 두 집이 나중에야 이를 알고서 서로들 얘기하며 감탄했지만, 마침내 그 개는 지쳐 죽으니 한씨집 마을에다 장사 지냈지. 길손들 손을 들어 가리키면서 ‘의구(義狗)’의 무덤이라 말하곤 했네. 

아아! 이 개의 의로움 마음, 성현에게 여쭈어 볼만 하도다. 악의는 조나라에 있으면서도 끝까지 연나라를 배반 않았지. 서서는 한나라만 마음에 두어 위나라 신하되기 부끄러 했네. 왕맹은 중원에 뜻을 두고도 굳이 애써 부진을 섬기었었지. 

그렇지만 이 개 일만 같지는 않네. 의열한 마음에다 충순한 정성. 이 나라 조선이 오백년 동안, 선비 길러 벼슬길을 중히 여겼네. 사직은 든든하기 태산 같았고 바다엔 전쟁 먼지 일지 않았지. 높은 벼슬 두터운 녹 받고 살면서 부귀에 하도 겨워 편안하여서, 즐거이 오랑캐에 빌붙어 살며 눈하나 깜짝 않고 나라 팔았지. 역적들 모두다 숨고 달아나 조정이 바야흐로 어지럽구나. 어디서 이러한 개를 얻어서 가져다 내 임금께 바치어 볼꼬? (원문생략, 손종섭 역) 

-이건창(李建昌, 1852~1898), '한구편(韓狗篇)', 명미당전집(明美堂集)卷四/  시(詩)-소유목초(少休收草)-

▲옮긴 글 출처: 정민교수의 한국한문학

**참조: 정민교수는 이 연시(聯詩)를 담은 자신의 산문글 제목을 '개만도 못한 지식인'이라고 붙였다. 

※[옮긴이 주] 

이건창(寧齋 李建昌)은 조선말기의 문신이다. 당호(堂號)는 명미당(明美堂)이며, 저서로는 《명미당집 (明美堂集)》과 《당의통략(黨議通略)》등이 있다. 저서 《당의통략(黨議通略)》을 통해 조선후기 사회 당쟁의 폐단을 지적하고 신랄하게 비판한 몇 안되는 조선의 참 지식인이요 선비다. 존재 위백규 선생나 무명자 윤기, 그리고 이옥처럼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탁월한 조선의 문장가다. 구한말시대 지식인들의 정신적 지주라 불리울 정도로 인간적이고 청렴 강직한 조선선비 정신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이다. 조선에는 재야를 포함하여 잘 알려지지 않은 참 선비들이 많다. 선생은 암행어사를 역임하기도 했는데, 알려진 그의 시와 문장, 그리고 삶의 행적을 통해서 헤아려 보면 비슷한 암행어사 전력을 가진 여타 알려진 인물들과는 분명히 구별이 된다. 그의 시들을 통해서 사람내음 물씬 풍기는 그의 인간성과 의로움을 엿볼 수 있는 까닭이다. 명미당집 전체 번역서는 찾기가 어렵고, 시를 포함한 몇몇 단편들의 일부가 인용문, 그리고 산문 번역 서적이 찾아진다. 고전번역원에는 선생의 명미당집이 원문만 공개되어 있어 많이 아쉽다. 다만, 당의통략은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에서 번역하여 전자책으로 출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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