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구벌레(섭구충)
박미중(朴美仲 미중은 연암 박지원(朴趾源)의 자)이 나와 한 마을에 살면서 아침저녁으로 글을 이야기할 때 아취가 혹 서로 비슷하였다. 문(文)은 해학을 써서 적이 자기 마음을 나타내곤 하였다.
일찍이 나에게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를 보여줄 것을 요구하여 서신이 세 차례나 왔으므로 내가 승낙했다가, 다음 날 서신을 보내 찾아오며 이르기를, “귀와 눈은 바늘구멍 같고 입은 지렁이 구멍 같으며 마음은 개자(芥子, 겨자씨와 갓씨)만하니, 대방가(大方家, 문장이나 지식 과 학술이 두루 뛰어난 사람)의 웃음을 자아내기에 알맞을 뿐이다.” 하였더니, 미중이 나의 서신 사이에 주(註)를 달기를, “이 벌레의 이름이 무엇인지 박물자(博物者 모든 사물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이)는 해명하라.”하였다.
내가 또 서신을 보내기를, “한산주(漢山州) 조계종(曹溪宗) 본탑(本塔) 동쪽에 옛날 어느 이씨(李氏)가 벌레 한 마리를 길렀는데, 벌레 이름은 섭구(囁懼)로 성품이 양보를 잘하고 숨기를 좋아한다.”하였다.
그러자 미중이 희롱삼아 산해경보(山海經補)를 지으면서 나(이덕무)라는 사람이 바로 섭구 벌레라 풀이하였으므로, 내가 다시 희롱삼아 곽경순주(郭景純注, 산해경의 주석)를 모방하여 나의 책이 섭구 벌레라고 변론하였다.
섭구(囁懼)란 무슨 말인가? 귀ㆍ눈ㆍ입ㆍ마음을 말한 것이다. 또 섭(囁)은 말을 함부로 않는다는 뜻이며, 구(懼)는 두려운 것으로 조심조심 지칙(持勅, 삼가는 마음을 가짐)한다는 뜻인데, 《이목구심서》의 내용이 대체로 그런 것들이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눈이 둘, 입이 하나, 마음이 하나인 것은 그렇겠지만, 귀는 왜 셋인가?”(섭구 囁=口+耳+耳+耳, 懼=心+目+目+隹(새 추)) 하기에, 그것은 귀로 듣는 것이 눈으로 보고 입으로 말하고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많고자 하여 그런 것이라고 하였다.
백제(百濟)의 서북(西北)으로 3백 리 거리에 탑이 있고 탑 동쪽에 벌레가 있는데 이름이 ‘섭구’이다. 귀와 눈은 바늘구멍 같고 입은 지렁이의 구멍 같으며, 그 성품이 매우 슬기로우나 양보하기를 좋아하고 몸을 잘 감추며, 두 팔, 두 다리, 다섯 손가락을 모아 하늘을 가리킨다.
그의 마음은 개자(겨자씨) 크기만한데 먹물을 잘 먹으며, 토끼를 보면 그 털을 핥고 언제나 자신이 자기 이름을 부르는데, 일명이 영처(嬰處)라고 어떤 이는 말한다. 나타나면 천하가 문명(文明)해지고 그것을 먹이면 미련하고 어질지 못한 병을 고칠 수 있으며, 마음과 눈을 밝혀주고 사람의 슬기와 지식을 더하여준다. 미중(연암 박지원)이 희롱삼아 지은 것이다.《산해경보(山海經補) 》
《부(附) 곽 경순(郭景純)의 주(注)를 모방한 것-이덕무》
살펴보면, 섭구 벌레는 생김새가 모나고 침착하며 색은 하얀데 무수한 검은 반점이 있다. 길이는 주척(周尺)으로 한 자가 채 못 되고 그 몸피는 반자쯤 되는데 맥망(脈望 좀(蠹魚)이 ‘신선(神仙)’ 글자를 세 번 먹으면 이 벌레가 된다고 한다)을 잘 기르며, 건협(巾篋, 책을 넣어두는 상자) 속에다 몸을 숨기고 있다.
옛날 성품이 온장(蘊藏, 오랫동안 닦아온 수양과 학식을 마음속에 깊이 쌓아둠)하고 퇴양(退讓, 남에게 양보하고 뒤로 물러남)한 어떤 이씨가 그 벌레의 몸을 감추는 것이 자기와 같음을 사랑한 나머지 가만히 길러 번식을 시켰으므로,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은 서로 관섭(關涉, 서로 관련이 있음)이 되고 있었다.
지금 보경(補經, 박지원이 이덕무를 희롱하며 해학으로 쓴 글, 산해경보)에서 말한, “두 팔과 두 다리에 손가락이 다섯이며, 먹물을 먹고 토끼를 핥는다. 자호(自號)가 영처(嬰處)이다.” 하는 주장은 다 틀린 것이다.
《산해경(山海經)》을 어떤 이는 백익(伯益 순(舜) 임금의 신하)이 지은 것이라 하지만, 황당하고 근거가 없어 이미 육경(六經) 축에 끼이지 못하니, 아마 지금 그것을 보(補)한 사람도 황당무계(荒唐無稽)한 사람일 것이다.
섭구 벌레에 대해 내 일찍이 오유선생(烏有先生, 허구의 인물을 통칭하는 말)에게 들었는데, 오유선생은 무하유향(無何有鄕, 세상 어디에도 없는 곳, 즉 상상속 허구의 세상, 이상향) 사람에게 듣고, 무하유향 사람은 태허(太虛, 문자적 의미로 세상이 존재하기 전 텅빈 상태 즉, 확인할 수 없는 상상속의 인물)에게 들었다 한다.
-이덕무(李德懋, 1741~1793), ‘산해경보(山海經補) 동황(東荒)’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제62권/산해경보(山海經補) 』-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양홍렬 (역) ┃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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