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비재기(知非齋記 ):자신의 잘못을 진실로 안다는 것

운장(雲章 장간(張幹)의 자)은 운장 자신의 잘못을 아는가? 잘못을 하기는 쉽지만 잘못을 알기는 어려우며, 잘못을 알기는 쉽지만 잘못을 진실로 알기는 어려우며, 잘못을 진실로 알기는 쉽지만 잘못을 제거하기는 어려우며, 잘못을 제거하기는 쉽지만 잘못을 진실로 제거하기는 어렵다. 


천하 사람들이 많이 사람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여 심하면 혹 이적 금수(夷狄禽獸)에 이르는 것은 모두 잘못을 알지 못함에서 비롯되니 잘못을 아는 것이 크나큰 기괄(機括 기는 활, 괄은 화살촉인데 중요한 기관임을 말한다)임을 비로소 알겠다.


운장은 과연 홀로 운장의 잘못을 알고 있는가? 사람마다 그 누구인들 ‘나는 나의 잘못을 알고 있다’ 말하지 않으랴마는 나는 아직도 자신의 잘못을 진실로 아는 사람을 보지 못하였으니, 어찌하여 그렇게도 구태의연하게 더럽고 용렬한 것일까?


조금 지혜가 있는 사람이면 자못 그 잘못을 알고 제거하는 사이에 출입하지만 진실로 알고 진실로 제거함에 대해서는 아직도 거리가 멀다. 그리고 혹 더없이 어리석고 망령됨이 마치 캄캄한 밤이나 무지한 토목과 같아서 전연 잘못을 알지 못하여 비록 부모가 교훈하고 임금이 효유(曉喩, 잘알아듣도록 타이름)하여도 격동하여 분노하는 자가 있으니, 이런 자는 주벌(誅罰)하여야 할 사람이다.


만일 능히 잘못을 진실로 안다면 잘못을 진실로 제거하는 것도 수반하게 마련인데, 능히 잘못을 진실로 안 것으로 명성이 나타난 사람이 옛적에도 어찌하여 그다지도 없었을까? 


오직 거원(蘧瑗 원은 춘추 시대 위(衛)의 대부 거백옥(蘧伯玉)의 이름)**만이 이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 오직 거원만은 그의 잘못을 진실로 알았으며 다시 잘못을 진실로 제거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50이 되기 전에 전연 알지 못하였던 것이 아니고 생각하건대 다만 출입하였던 것이며 49세가 된 뒤에는 석연(釋然, 의문이 풀려 후련해짐)해지고 활연(豁然, 의문이 없고 막힘이 없이 밝음)해졌으니 보통사람보다 크게 뛰어나지 아니하고서야 어찌 여기에 이를 수 있겠는가? 지금 운장이 이에 감히 ‘지비(知非, 잘못을 앎)’로써 그 재(齋,서재)에 걸기를 대단히 용이하게 하니 그렇게 하는 것도 또한 크게 남에게서 뛰어난 것이 아닐까? 


그러나 운장은 부질없이 말로만 ‘나는 나의 잘못을 안다’ 하는 것이 아니라 빈천에 처하여 술지게미나 겨를 먹으면서도 부귀영달로써 몸을 이루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오직 잘못을 알기를 바랐으며, 나도 또한 빈천한 것으로 운장을 근심하지 않고, 다만 잘못을 진실로 아는 것으로부터 잘못을 진실로 제거하는 데 이르는 것으로 운장을 면려하여 기뻐하며 또 때로는 근심하기도 하니, 운장은 삼가 나의 글에 부끄러운 바가 되지 말라! 


한 말로 총합하여 경계하기를 ‘극기복례(克己復禮)*다’ 하였다. 갑신년(1764, 영조 40) 청명(淸明)에 삼가 찬(撰)한다.


*[역자 주]극기복례(克己復禮) : 사욕(私欲)을 제거하며 천리(天理)인 예(禮)를 회복하는 것. 《論語》 顔淵에 안연(顔淵)이 공자에게 인(仁)에 대해 묻자, 공자가 “사욕을 없애고 예를 회복한 것이 인이다. 하루를 극기복례하면 천하가 인에 돌아가니, 인을 하는 것이 자기에게 달려 있고 남에게 달려 있지 않다.” 하였다.

 

-이덕무(李德懋, 1741~1793), ‘지비재기(知非齋記)’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제3권/영처문고 1(嬰處文稿一) /기(記)』-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이종술 (역)┃ 1978


**[옮긴이 주]: 거원(蘧瑗)의 일 : 거원은 춘추 시대 위(衛)나라의 현대부(賢大夫) 거백옥(蘧伯玉)을 말한다. 거백옥이 나이 육십이 되었을 때 그동안의 잘못을 깨닫고 이를 고쳤다는 고사를 인용한 내용이다. 《장자》 〈칙양(則陽)에 , “거백옥은 나이 육십이 되는 동안 육십 번이나 잘못된 점을 고쳤다.〔蘧伯玉行年六十而六十化〕”라는 말이 그 출전이다.  《회남자(淮南子)》 〈원도훈(原道訓)〉에는 “나이 오십에 사십구 년 동안의 잘못을 깨달았다.〔年五十而知四十九年非〕”라고 하였다. 여기서 유래하여 인생 나이 50세를 가리켜 '백옥지비(伯玉知非)' 라고 한다. 거백옥의 고사가 마땅히 본받아야 할 각별한 것으로 전해져 오는 까닭은 인생나이가 30만 넘어가도 한번 몸과 마음에 배여 고착된 것은 좀처럼 그 잘못이 드러나도 고친다는 것은 단지 희망사항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것을 굳이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경험적으로 알기때문이다.

TAGS.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