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비운다는 것에 대하여

이른바 ‘몸을 닦음이 그 마음을 바르게 하는 데 달려 있다.’는 말은, 마음에 성내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고, 두려워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며, 좋아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고, 근심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한다.


○마음이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으며,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먹어도 그 맛을 모른다.(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 ( 대학 7장 원문 일부생략)

의(意 뜻, 생각)는 안에서 발동하니, 선과 불선의 기미가 있을 뿐이다. 마음의 네 가지 병*은 일에서 형성되어 밖으로 드러난다. 순 임금ㆍ문왕ㆍ공자ㆍ맹자 같은 분들은 의가 성실하지 않음이 없으니, 화낼 만하여 화냈고, 두려워할 만하여 두려워했으며, 좋아할 만한 것을 좋아했고, 근심할 만한 것을 근심했다. 애당초 나에게 달린 일이 아니니 성인이라도 어찌 그런 마음이 없을 수 있었겠는가. 다만 마음이 여기에 몰두하게 되어 자신도 모르게 치우치면 마음이 바르지 않게 된다.(*옮긴이 주: 마음의 4가지 병:  그 원인이 되는 것들이 윗 글중에 나와 있다. 즉, 성냄(忿), 두려움(懼), 좋음(好), 근심(憂)이다.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감정을 능숙하게 제어하고 억누르며 감추는 사람이 아니라, 그 감정들에 치우쳐 무작정 얽매이지 않고 적절한 때에 적절한 방식으로 표출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뜻이 이미 성실하더라도 반드시 마음을 유지하는 데 더욱 노력을 기울여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런 뒤에야 몸을 닦을 수 있다. 그렇더라도 의(意)가 성실하지 않으면 사사로운 뜻이 이어져 덜렁거리고 심란해져, 마음을 바르게 하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다. 소주(小註)에, '의(意)가 성실하면 마음이 비어진다'는 설명이 이것이다.


그렇지만 의가 성실해지고 마음이 비는 것은 서로 다른 두 가지의 공부가 아니다. 의(意)가 성실하지 않으면 마음이 빌 수 없고 마음이 비지 않으면 의도 성실할 수가 없다. 의가 성실하다는 것은 사사로운 뜻이 없는 것이고 사사로운 뜻이 없으면 마음이 저절로 비게 된다. 마음이 비었다는 것은 치우치는 마음이 없게 되고, 치우치는 마음이 없으면 의가 쉽게 성실해진다. 둘은 서로 안팎이자 처음과 끝이 된다.


‘마음이 비게 된다.’라는 말은 불교에서 말하는 공허하고 적멸한 상태가 아니다. 한결같으며 곧다는 말이다. 한결같기 때문에 고요하고, 곧기 때문에 맑다. 어수선하게 만드는 잡물(雜物) 없이 그 자체로 비어 있고 밝다. 그러므로 사물이 오면 털끝만 한 것이라도 죄다 비추고 천리(天理)가 깨끗하게 원래의 모습대로 존재한다. 이것이 바로 마음이 비게 된다는 말이다. 


이 경지에 이르면 성(誠)이 이미 확립되고 의(意)가 절로 성실해진다. 안으로 반성해도 흠이 없으며 마음이 넓어지고 몸이 편안해지며, 호연지기(浩然之氣)가 천지에 꽉 찬다. 마음이 있지 않다는 말은 마음이 죄다 다른 데로 갔다는 말이 아니다. 


한번 화내든 좋아하든 하는 감정에 마음이 쏠리면 마음의 본체가 곧 가리워지니 그 마음의 용(用)이 어찌 치우치지 않겠는가. 전후좌우에서 만사에 수응할 수 없다. 그러므로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니, 어찌 의리를 재량하고 참작하여 자기 몸을 닦을 수 있겠는가.


‘한번이라도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도 살피지 않는다면〔一有之而不能察〕’이라고 할 때, 여기서 ‘일(一)’이라는 글자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내 마음이 저 사물과 만나 들러붙으면 그 때문에 마음에 아교처럼 굳어 버리니 이것이 가장 큰 마음의 병이다. 이상은 전(傳) 7장(章)이다.


-위백규(魏伯珪, 1727~1798), ' 대학(大學) [전(傳) 7장(章)]', 존재집(存齋集) 제5권/독서차의(讀書箚義)-


▲원글출처: ⓒ 전주대학교 한국고전학연구소ㆍ한국고전문화연구원 ┃ 김건우 (역) ┃ 2013


**옮긴이 주: 《대학》의 원작자에 대해서는 정설이 없다고 알려져 있다. 집필시기는 여불위가 집대성한 여씨춘추와 비슷한 시기로 보는 이도 있다(김용옥). 원래 《예기(禮記)》의 제42편이었던 것을 송(宋)의 사마광(司馬光)이 처음으로 따로 떼어서 《대학광의(大學廣義)》를 만들었는데, 이를 고본(古本) 대학(大學)이라 한다. 소위 대학의 원본이다. 현재 익히 알려진 <대학>은 주희가 "3강령<명명덕(明明德),신민(新民),지어지선(止於至善)>, 8조목(격물.치지.성의.정심.수신,제가,치국, 평천하)"으로 정리한 것으로 전체 1경(經), 8전(傳)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본 대학에는 3강령중에 신민(新民, 백성을 밝게하고 새롭게 함)이 아닌 친민(親民, 백성과 친하게 가까이함)으로 나와있다. 또 격물, 치지가 없다. 격물치지는 학문의 근본으로 주자가 삽입한 것이다. 주자가 친민을 신민으로 고친 이면에는 성리학을 지배계급의 주요이념으로써 유학을 교리화한  의도를 나름 추측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정리된 소견으로, 흔히 간과되기 쉬운 것이 바로  공자의 사상과 유교에 대한 오해 또는 착각이다. 유교는 유학의 큰 물줄기인 공자의 사상을 후세에 종교적 관점에서 교리화한 것이다. 그래서 학문적 중심사상으로써 공자의 유학과 맹자,순자가 재해석한 유교, 그리고 유학이 송.명대에 이르러 다시 재해석되어 정치적 지배계급의 이념과 체계로 교리화한 주자 중심의 유교가 비록 그 중심의 큰 틀은 같다할지라도 각기 다르다. 여튼 대학의 요체는 유학의 큰 흐름인 '수기치인'(修己治人)에 있다. 『논어』 「헌문」에, 군자가 마땅히 힘써야 할 세 가지는 '수기(修己)함으로써 공경하고, 수기함으로써 사람을 편안히 하고, 수기함으로써 백성을 편안하게 한다'라는 말이 나온다. 즉 수기치인이란, '자신의 몸과 마음을 먼저 제대로 세우고 닦은 연후에 남을 다스리든 세상을 다스리든 하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그중에 6,7,8장은 바른 인간이 되기 위한 과정으로써 수기(修己)가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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