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인배(小人輩)의 모습(陽貨篇 양화편
공자가 말하였다. “얼굴빛은 위엄이 있으면서 마음이 유약한 것을 소인에게 비유하면 벽을 뚫고 담을 넘는 도적과 같을 것이다.”〔子曰 色厲而內荏 譬諸小人 其猶穿窬之盜也與〕
‘임(荏)’ 자에 대해 유약(柔弱, 부드럽고 연약함)이라고 글자풀이를 하였는데 요사스럽고 교활하다는 뜻이 있다. 글자 모양이 ‘초(艹)’ 자 아래 ‘임(任)’ 자를 붙인 것이다. 초(草)는 유약하다는 뜻이고, 임은 공임(孔任)의 뜻이다. 이는 말과 얼굴빛을 좋게 하며 아첨하고 아양을 떠니 한갓 유(柔)한 일이다.
《주역》에서 음유(陰柔, 겉으로는 유순하지만 속이 검은 것)를 소인으로 설정하였다. 대체로 소인이면서 강단(剛斷)이 없는 자는 매사를 남에게 구하고 스스로 지키지 못한다. 제아무리 사나운 고집으로 스스로 도취해 자랑하더라도 끝내는 굽히고 능글맞게 된다. 이런 속마음을 품으면서 겉으로는 엄격하고 정중하여 누구도 범할 수 없는 모습을 보이니, 어찌 좀도둑이 아니겠는가.
무덤가에 남은 음식을 구걸할 때 그 얼마나 유약한 마음이며, 집에 들어와서 처첩(妻妾)에게 교만을 떨 때 그 얼마나 얼굴에 위엄이 있었는가. 참으로 좀도둑일 뿐이다. “항상 남이 알까 두렵다.〔常畏人知〕”라는 네 글자는 소인의 모습을 잘 그려냈다.
공자가 말하였다. “향원(鄕愿)은 덕(德)의 적(賊)이다.”〔子曰 鄕愿 德之賊也〕
향(鄕)은 향(嚮, 향할 향)하다는 뜻이니, 매사에 오로지 남을 추종하여 제 자신을 지키지 못한다. 남을 따르는 것이 위주가 되어 스스로 지킬 수 없다면 매우 심하게 비속한 것이다. 비속한 사람들 모두 ‘원(愿, 삼갈 원, 즉 몸을 사린다는 으미)’이라고 칭한다면 사이비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이른바 “고장 사람들이 모두 좋아한다.”라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좋아한다고 만족하여 이를 덕(德)이라고 자처하니, 어찌 ‘덕을 해치는 일’이 아니겠는가. 온통 악행만을 일삼는 자는 제 잘못을 후회하고 고칠 수 있지만, 향원이 덕에 들어갈 리는 만무하다.
공자가 말하였다. “길에서 듣고 길에서 말하면 덕(德)을 버리는 것이다.”〔子曰 道聽而塗說 德之棄也〕
길을 ‘도(道)’라고 하고, 길을 다니는 것을 ‘도(塗)’라고 한다. 하지만 이 구절은 굳이 길 위에서 듣고 길을 가면서 말한다는 뜻이 아니다. 마음에 되새기지 않고 대충 건성으로 경솔하다는 뜻이다. ‘도(塗)’ 자는 더욱 경솔하고 천박해서 말 한마디를 듣자마자 의미를 이해하지 않고 의리를 따지지 않은 채 경솔히 아는 체하고 만족하여 스스로 기뻐한다는 뜻이다.
말이 귓구멍으로 들어오자마자 몸속으로 들여보내지 못하고 곧장 입으로 술술 내뱉어 버린다. 비록 마주 앉아 말을 듣더라도 마치 길가에서 듣는 경우와 같고, 마주 앉아 말하더라도 마치 길을 가면서 말하는 경우와 같다. 언제 마음속에 담아 두었다가 덕을 행하는 데 유익하게 한 적이 있겠는가.
날마다 스승과 친구의 말을 듣고 날마다 도의(道義)에 대해 말하더라도 예전 그대로 어리석은 선비이니, 어찌 덕을 버리는 일이 아니겠는가. 버린다는 말은 통절히 미워하고 가엾게 여기는 표현이다. 속언에 “바람결에 듣자마자 달려가서 말한다.”라는 것과 같으니, 덕에 무익할 뿐만 아니라 기상(氣象)이 해괴하고 좋지 않다.
공자가 말하였다. “비루한 사람과는 함께 임금을 섬길 수 있겠는가.”〔子曰 鄙夫 可與事君也與哉〕
비부(鄙夫,마음씀씀이가 더럽고 못된 사내)는 바로 소인(小人)인데, ‘비부’라는 표현은 그 뜻이 더욱 절실하다. 소인은 자질구레하고 수준이 낮다는 명칭으로, 일을 행하는 측면에서 말한 경우가 많다. 비부는 용렬하고 악하며 비속하고 졸렬하니 심정의 측면에서 말한 경우이기에 더욱 절실하다. 당연히 ‘임금을 섬길 수 없다.’라고 해야 하는데 ‘함께 임금을 섬길 수 있겠는가.’라고 말한 것은 얼굴에 침을 뱉고 결코 마주 보지 않겠다는 뜻을 심하게 말한 것이다.
“용렬하고 악하며 비속하고 졸렬하다.〔庸惡陋劣〕”라는 네 글자를 자세히 생각하면, 사람에게 역겨운 생각이 들도록 한다. 대낮에는 남들에게 교만을 떨며 호방함을 스스로 과시하지만 어두운 밤에는 애걸복걸 사정하니, 심하게 용렬한 경우이다. 말과 얼굴빛을 좋게 하며 공손함을 스스로 과시하지만 음흉하고 간교한 짓을 행하니 심하게 악한 경우이다.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집에 살면서 맑고 고상함을 스스로 과시하지만 끝내 비굴하게 아첨하니, 심하게 비루한 경우이다. 부귀에 빠져 나태하고 재능을 스스로 과시하지만 노비처럼 비굴한 행동을 하니, 심하게 졸렬한 경우이다. 이러한 부류는 함께 임금을 섬길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같은 고장에서도 살 수가 없다.
-위백규(魏伯珪, 1727~1798), ' 논어(論語)양화편(陽貨篇)'부분 발췌, 존재집(存齋集) 제8권/독서차의(讀書箚義) -
▲원글출처: 한국고전번역원 ⓒ 전주대학교 한국고전학연구소ㆍ한국고전문화연구원 ┃ 김건우 (역)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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