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아는 것은 본디 나에게 달려 있을 뿐이다
청풍명월(淸風明月)은 사람들이 입만 열면 좋다고 하는데, 과연 모두 풍월을 진실로 아는 것일까. 황 태사(黃太史 황정견(黃庭堅))*는 주무숙(周茂叔 주돈이(周敦頤) 주희)에 대해 광풍제월(光風霽月)이라고 표현했는데, 거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곧장 풍월(風月)이라고 말하지 않고 굳이 양류오동(楊柳梧桐 버드나무와 오동나무)*이라 했으니, 분명 진실로 알고 마음에 터득한 것이 있었으리라. 버드나무와 오동나무는 나무 중에서 덕(德)의 모습이 있는 나무이다. 버드나무가 아니면 바람이 광풍(光風)이 될 수 없고, 오동나무가 아니면 달이 제월(霽月)이 될 수 없다.
광풍제월이 아니면 도(道)가 있는 사람의 가슴속 기상을 표현할 수 없다. 노직(魯直 황정견) 같은 사람이 아니면 광풍제월이라는 말을 통해서 무숙을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고, 노직 같은 사람이 아니면 양류오동이라는 말을 통해서 광풍제월이라는 말을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황노직은 과연 진실로 풍월을 알았던 사람이고, 주무숙은 진실로 광풍제월 같은 사람이다. 버드나무와 오동나무는 참으로 광풍제월의 나무이며, 풍월에서 무숙을 알아보았던 황 태사 역시 호걸지사(豪傑之士)이다.
“꼼꼼히 만든 옥잔에 누런 술이 담겨 있네.”라고 했으니, 시인이 문왕(文王)에게서 광풍을 보았던 것이고 “강한(江漢)의 물로 빨고, 가을볕에 말렸다.”라고 했으니, 증자(曾子)가 공자에게서 제월을 보았던 것이다. 문왕과 공자는 나의 스승인데 직접 배우지 못했으니 후학의 불행이다. 다행히도 빛나는 바람이 세월 흘러 버드나무에 돌아왔고, 맑게 갠 달이 오동나무에 길게 걸려 있다. 문왕과 공자는 늘 내 밝은 창 앞 책상(棐几明窓 비궤명창)*에 있으니, 보고 아는 것은 본디 나에게 달려 있을 뿐인데, 어찌 3천 년을 멀다고 하겠는가.
《시경》에서는 문왕을 화락한 군자*라고 불렀는데, 나는 이제 문왕이 참나무에 부는 빛나는 바람임을 알겠다. 정자(程子)가 공자를 명쾌한 분이라고 했는데, 나는 이제 공자가 행단(杏壇)의 맑게 갠 달임을 알겠다.
[*역자 주]
1. 황 태사(黃太史) : 중국 북송(北宋) 때 황정견(黃庭堅, 1045~1105)은 주돈이에 대하여 깊은 경의를 표하면서 “주무숙(周茂叔)은 인품이 매우 높고, 가슴속이 담백하여 광풍제월(光風霽月), 즉 맑게 갠 날에 부는 빛나는 바람과 비 갠 하늘에 뜬 달빛과 같다.”라고 했다. 《宋史 卷427 周敦頤列傳》
2, 양류오동(楊柳梧桐 : 《이정전서(二程全書)》 권36 〈습유(拾遺)〉에 정호(程顥)가 소옹(邵雍)의 시를 인용하면서 소옹을 진정한 풍류인이라고 한 대목에 나온다. 소옹의 시는 〈월도오동상음(月到梧桐上吟)〉으로, 그 시에 “오동나무 위에는 달이 이르고, 버드나무 가에는 바람이 불어오네. 서재가 깊숙하고 사람도 조용하니, 이 경치를 누구와 더불어 말을 할까.〔月到梧桐上 風來楊柳邊 院深人復靜 此景共誰言〕”라고 했다. 《擊壤集 卷12》
3. 비궤명창(棐几明窓): 서산(西山) 진덕수(眞德秀)의 〈심경찬(心經贊)〉에 “밝은 창 비자나무 책상에 맑은 대낮 향을 사르고서 책을 펴고 숙연한 자세로 나의 마음을 섬기노라.〔明窓棐几 淸晝鑪薰 開卷肅然 事我天君〕”라는 대목에서 나온 말이다. 비궤(棐几)는 비자나무로 만든 좋은 궤안(几案)인데, 흔히 서안(書案)을 지칭한다.
4. 화락한 군자 : 《시경》 〈대아(大雅) 한록(旱麓)〉에 “무성한 저 갈참나무와 떡갈나무, 백성들이 불 때는 것이로다. 화락한 군자여, 신령이 위로하는 사람이로다.〔瑟彼柞棫 民所燎矣 豈弟君子 神所勞矣〕”라고 하였다.(옮긴이 주: 화락和樂,'두루 화평하고 즐거움', 원문의 '豈弟'의 뜻을 풀어쓴 것)
5. 명쾌한 분: 《근사록》 권14에 “공자는 참으로 명쾌한 분이고, 안자는 참으로 화락하였으며, 맹자는 참으로 웅변이었다.〔孔子儘是明快人 顔子儘豈弟 孟子儘雄辨〕”라고 하였다. 행단은 공자가 곡부(曲阜)의 야외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던 장소이다.
-위백규(魏伯珪, 1727~1798), '사물(事物)'부분, 「존재집(存齋集) 제12권/ 잡저(雜著)/ 격물설(格物說)」 중에서 부분-
▲원글출처: 한국고전번역원 ⓒ 전주대학교 한국고전학연구소ㆍ한국고전문화연구원 ┃ 김건우(역)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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