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몸을 홀로 잘 지킬 뿐

어떤 객이 나를 찾아와 물었다. “오늘날 인심과 세도는 여지없이 무너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백성이 바로 삼대(三代)의 백성인데 어찌하여 이렇게 되었단 말입니까?”


“교화가 밝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이 항성(恒性)을 따르지 않고, 사단과 칠정이 다 무너져 오직 사욕만을 따르다가 점점 캄캄한 방이 되고 만 것이니 괴이할 것이 없소이다.”


“공자께서 다시 일어나신다면 만회할 방도가 있겠습니까?”

“공자께서는 지위를 얻지 못하셨으니, 어찌 만회할 수 있겠소.”

“지위를 얻으면 어떻겠습니까?”


“손바닥 뒤집듯 쉬웠을 것이오. 마음에 편당(偏黨)이 없으면 천하 사람들의 마음이 모두 편당이 없을 것이고, 마음에 기교(機巧, 이것저것 재주와 지혜를 짜냄)가 없으면 천하의 마음도 모두 기교가 없을 것이오. 대공지정(大公至正, 지극히 공평하고 올바름)하기가 마치 천지와 일월처럼 사심이 없고, 호오(好惡, 좋아함과 싫어함)와 상벌(賞罰)이 마치 거울과 저울처럼 어그러짐이 없다면, 저 이른바 측은(惻隱)ㆍ수오(羞惡)ㆍ사양(辭讓)ㆍ시비(是非)는 사람마다 본래 가지고 있는 것이니, 지난날의 사욕에 빠졌던 마음이 다시 온전해지고 지난날의 어두워졌던 마음이 다시 밝아져서 즐겁고 화락해져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날마다 선으로 옮겨갈 것이오.”


“그렇다면 이처럼만 하면 되겠습니까?”

“성인께서 '나도 어찌할 수 없다.(吾亦末如之何也已矣)'*고 하셨으니, 아무리 성인이라도 어찌할 수 있겠소. 천하를 두루 구제할 수 없다면 제 몸을 홀로 잘 지킬 뿐이오(不能兼濟天下 則獨善其身而已矣).


-윤기(尹愭 1741~1826), '한거필담(閒居筆談)'중에서 부분,『무명자집(無名子集)/무명자집 문고 제11책/ 한거필담(閒居筆談)'』-


▲원글출처: 한국고전번역원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 김재식 (역) ┃ 2013


※[옮긴이 주]

1. 나도 어찌할 수 없다(吾亦末如之何也已矣): 《논어》 위령공(衞靈公)편이 그 출전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어찌할까 어찌할까하며 심사숙고하지 않는 자는 나도 어찌할 수가 없다(子曰 不曰如之何如之何者  吾末如之何也已矣)”. 논어 주소에,  '나도 어찌할 수 없다' 의 맥락적인 의미를 설명하기를, "○正義曰:이 장(章)은 사람들에게 화난(禍難, 재앙과 환난)을 예방(豫防)하도록 경계한 것이다. 如(여)는 柰(어찌 나)이다. ‘不曰如之何’는 ‘不曰柰是何’와 같은 말이다. 末(끝 말)은 無(없을 무)이다. 만약 ‘이 일을 어찌할까.’라고 말하는 경우는 화난(禍難)이 이미 이루어져서 구제할 수 없게 된 것이므로, '나도 어찌할 수 없다'고 하신 것이다." 라고 풀이하고 있다.  참고로 이외에도 성인 공자가 동일한 표현으로 '나도 어찌할 수 없다'고 말한 경우는 《논어》 자한(子罕)편에 찾아진다. "기뻐하기만 하고 그 말의 저의를 찾지 않으며, 따르기만 하고 잘못을 고치지 않는다면, 그런 사람은 나도 어찌할 수 없다(吾末如之何也已矣)"라고 하였다. 


"추상적인 선(善)의 실현을 위해 힘쓰지 말고, 구체적인 악(惡)을 제거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 모든 악의 제거는 직접적인 수단에 의해 행해져야 한다."-칼 포퍼(Karl. R. Popper 1902~1994), '열린 사회와 그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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