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소로우면서 경계가 될 만한 일
명예를 탐하고 자신을 자랑하는 것은 사람의 상정(常情, 보편적으로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인정)에 면할 수 없는 것이나, 또한 가소로우면서 경계가 될 만한 일이 있다.
문장에는 본래 고하(高下)와 우열(優劣)이 있어서 알 만한 자가 알아보는 것이니, 과장한다 하여 더 좋아지지 않고 겸손하다 하여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지금 세상은 그렇지 않아 칭찬을 아끼지 않으면 종이 값이 갑자기 높아지고, 깊이 상자 속에 넣어 두면 변변찮은 사람으로 불리게 된다.
그리하여 문장으로 세상에 이름을 날리고자 하는 자는 집에 있을 때 나그네가 찾아오면 반드시 꺼내어 큰 소리로 읽으며 득의양양하고, 이르는 곳마다 사람을 만나면 반드시 읊조려 여러 편을 외워 마지않으니, 듣다 보면 진준(陳遵)이 좌중을 진동시키고*, 전하다 보면 해조(海棗)에 씨가 생기며*, 심지어 남의 원고를 훔쳐 제 작품으로 삼고, 남의 명성에 의탁하여 제 값을 높이고자 하니, 참으로 수치스러운 일이다.
또 세상 사람들이 문장을 논하면서 제 눈으로 보지 않고 귀로만 들어 한 번도 그 문장을 본 적이 없으면서 아무개는 뛰어나고 아무개는 못하다 평하고, 또 마음으로 보지 않고 눈으로만 보아서 이미 명성을 얻은 자의 이름을 보면 하자가 있어도 뛰어나게 여겨 무릎을 쳐가며 칭찬하고, 아직 명성이 나지 않은 자의 이름을 보면 아름다운 곳도 추하게 여겨 대충 훑어보고 냉소를 짓는다.
명성을 좋아하는 자의 처지에서 말하자면 자기를 과장하여 명성을 얻는 방법밖에 없으나, 식자(識者, 학식, 식견, 상식이 있는 사람)의 견지에서 본다면 어찌 비웃음의 구실이 되지 않으랴.(중략)
이로써 오늘의 풍속이 오로지 겉치레만 일삼고 허명(虛名)만을 낚으려 함을 볼 수 있다...(중략) 한마디로 말하면 허세를 숭상하는 풍속과 사람에게 진실함이 없어서 그런 것이니, 한탄스러울 뿐이다.
※[역자 주]
1. 진준(陳遵)이 좌중을 진동시키고 : 원문은 ‘진좌가경(陳坐可驚)’인데, 명성이 높은 사람으로 오해하여 좌중이 놀라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한(漢)나라 때 진준은 자가 맹공(孟公)으로 명성이 매우 높았다. 그 당시 열후(列侯) 중에 또 다른 진맹공이 있었는데, 진맹공이 어느 집을 방문한다고 하면 그 집에 모인 손님들은 진짜 진준이 오는 줄로 알고 놀랐다가 다른 사람인 것을 알고 실망하였으므로 그 사람을 ‘진경좌(陳驚座)’라고 불렀다고 한다. 《漢書 卷92 陳遵傳》
2. 해조(海棗)에 씨가 생기며 : 근거가 없는 이야기를 실제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는 의미이다. 해조는 전설상의 바다대추나무인데, 꽃만 피고 열매가 열리지 않는다고 한다. 《古今事文類聚 後集 卷26 海棗不實》
-윤기(尹愭 1741~1826), '명예를 탐하고 제 자랑을 하다(貪名而誇己)'중에서,『무명자집(無名子集)/무명자집 문고 제11책/ 잡기 8조목(雜記 八)』-
▲원글출처: 한국고전번역원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 김채식 (역)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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