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엄과 권위(威儀)는 밖으로 드러난 그림자일 뿐

문(問): '덕성을 내면에 함양하면 이것이 밖으로 드러나 위의(威儀)가 된다. 그러므로 위의는 그 사람의 어짊과 어리석음, 길함과 흉함의 부절(符, 증표)이다.'


답(): 위의(威儀)는 그것을 통해 사람을 관찰할 수 있지만, 사람을 관찰할 때에 위의만 가지고 해서는 안 됩니다.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위의(威儀): 태도에 무게가 있고 드러난 행동거지가 예법과 격식을 갖추어 외경할 만한 몸가짐)


말을 잘하는 것으로 사람을 취한다면 재아(宰我)*와 같은 사람을 등용하는 실수가 있을 수 있고, 겉모습을 가지고 사람을 취한다면 자우(子羽)와 같은 인물을 몰라보는 실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언변과 외모를 보고 판단해도 실수를 하는 법인데, 더군다나 위의에 대해서야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이 때문에 군자가 스스로 수양해야 하는 것은 반드시 먼저 근본에 힘쓰는 것이니, 근본이 확립되었다면 위의는 밖으로 드러나는 그림자일 뿐입니다.


아, 주공이 큰 아름다움을 공손히 사양하시어 덕음(德音)에 결점이 없으니*, 이 때문에 위의에 붉은 신발이 편안한 기상(태도와 행동거지가 떳떳하고 당당함을 의미)이 있었습니다. 하늘이 내신 공자와 같은 큰 성인은 도와 덕이 온전히 갖추어졌으니, 이 때문에 위의에 옷의 앞뒤자락이 가지런하고(衣襜) 빨리 나가실 때 날개를 편 듯한(趨翼) 의용(儀容)이 있었습니다.(태도와 행동거지가 흐트러지거나 치우침이 없다는 의미) 


이는 성대한 덕이 지극하여 일상의 모든 동작과 읍양진퇴(揖讓進退)가 절로 예법에 맞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화평하고 유순함이 마음속에 쌓여 아름다움이 밖으로 드러나고, 독실하고 찬란하여 얼굴과 등에 덕스러운 기운이 흘러 넘쳐, 성대히 절로 가릴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후인들이 〈구역(九罭)〉과 〈낭발(狼跋)〉의 몇 구절 시 속에서 주공의 모습을 비슷하게나마 상상하여 곤의(衮衣, 임금이 입는 옷)와 수상(繡裳, 수를 놓응 치마)을 입은 모습을 직접 뵙는 듯하고, 한 부의 그림책 같은 향당(鄕黨)에서 성인의 모습을 완연히 눈으로 볼 수 있는 까닭입니다.(鄕黨一畫, 즉 보통사람들이 하나의 그림책을 보는 듯이 성인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다는 의미)


그렇지만 위의란 덕성이 밖으로 발현된 것이니, 근본에 견주어 보면 또한 지엽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지금 만약 위의만을 가지고 사람을 살핀다면 세상에는 실상이 없으면서 위의에만 익숙한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의 용모를 단정하고 근엄하게 하고 자신의 의관을 정돈하고 엄숙하게 하여, 행동거지와 진퇴(進退)의 범절 및 오르내리고 절하는 의절(儀節)이 모두 슬그머니 꾸미지 않은 것이 없어, 바라보면 엄숙한 듯하지만 평소에 그 실상을 살펴보면 우맹(優孟)*이 숙오(叔敖)의 거동을 흉내낸 것보다 훨씬 형편없는 정도가 아닙니다. 이와 같은 자를 어찌 위의만 가지고 취해서야 되겠습니까.


한나라 성제(成帝)는 존엄하기가 신과 같아 역사서에서 엄숙한 천자의 위용이 있음을 칭송하였으니, 위의가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덕을 말해 보자면 술과 여색에 빠진 데 불과할 뿐입니다. 왕이보(王夷甫)는 풍채가 수려하여 사람들이 옥으로 된 나무숲에 비겼으니, 위의가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행실을 말해 보자면 청담(淸談)으로 풍속을 어지럽힌 데 불과할 따름입니다. 


그 외에도 호랑이를 무릎 꿇게 했던 진 평공(晉平公)*이나 선우(單于)를 물러서게 했던 왕상(王商)* 등과 같이 위의로 이름난 이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가식적인 위의는 다만 실정을 왜곡하고 허위를 꾸미며 세상을 속이고 명예를 훔치는 도구가 될 뿐이니, 위의를 일삼지 않는 사람이 그나마 진솔하고 소탈한 뜻이 있는 것만 도리어 못합니다. 한탄스럽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옛사람이 “군왕에게는 군왕의 위의가, 신하에게는 신하의 위의가 있다.(君有君之威儀 臣有臣之威儀)” 하였습니다. 군왕의 위의란 곤의(袞衣)와 면류관을 차려 입고 근엄하게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신하의 위의란 관복에 큰 띠를 두르고 홀을 꽂고서, 읍하고 사양하며 나아가고 물러나는(揖讓進退) 조정의 예모나 잘 갖추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위의는 반드시 근본이 있습니다. 지위에 있을 때엔 두렵고 편안히 쉴 때에는 친근하며, 용모는 성대하고 음성은 부드러우며, 동작에는 문채가 있고 말에는 법이 있습니다. 이처럼 밖으로 드러나는 양상이 한 가지 모습이 아닙니다.


비유하자면 아름다운 옥이 보배가 되는 까닭이 그 바탕은 온윤(溫潤, 따뜻하고 인정미가 있음)하고 치밀(縝密)하며, 빛깔은 결백하고 투명하며, 소리는 영롱하고 청량하기 때문인 것과 같습니다. 현란하고 기괴하기만 한 신합(蜃蛤, 대합조개에서 나오는 진주의 일종)이나 민석(珉石, 옥과 비슷한 돌) 따위와 견주어보면 또한 거리가 멉니다. 그러하고 보면 사람을 살펴보는 이는 한갓 위의만으로 해서도 안 되지만, 또한 위의로써 관찰하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저 한 걸음을 이해를 초래하는 장본으로 여기고, 한 꾸러미의 예물을 화복의 꼬투리로 여기는 것은 근본이 보존된 바가 어떠한지를 살펴 알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인께서 군자의 용의(容儀)를 문채내고 군자의 덕을 채우는 것을 반드시 귀하게 여기는 까닭이니, 진 서산(眞西山)이 이른바 “외면을 통해 내면을 살펴본다.(因其外以覘其中)”는 것입니다.


그러나 위의가 사람을 관찰하는 창이기는 합니다만, 어떤 사람이 종일토록 백배(百拜)의 위의를 잃지 않을 수는 있어도 아무도 없는 캄캄한 방 가운데에서 공경스런 태도를 유지하기는 어려우며, 종신토록 한 치의 법도도 어기지 않을 수 있지만 잠깐 사이에 위의를 잃지 않기는 어렵습니다. 이것은 억지로 꾸미는 것과는 다르지만 “안팎이 동일하다.(表裏洞徹)”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위의 하나를 가지고 그림자를 통해 본래의 형체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면 너무 오활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 하더라도, 적막한 천 년 세월을 넘어 주공과 공자의 도를 계승하여 안으로 군자의 도덕을 온축하고 밖으로 군자의 위의를 드러내어 체용(體用)이 한 근원이요, 현미(顯微, 자세하게 샅샅이 살핌)에 차이가 없으며, 순수하고 정결하여 조금의 흠결도 없어, 후세 사람들의 의표(儀表)가 될 수 있었던 분은 오직 소상(塑像)처럼 근엄한 명도 선생(明道先生, 정호), 봄기운처럼 따사롭고 산처럼 우뚝한(揚休山立) 이천 선생(伊川先生, 정이), 반듯하게 법도에 맞는 자양(紫陽, 주희) 주 선생일 뿐입니다. 


위의를 지키기가 이토록 어려우니, 성현의 위의를 일반 사람들에게 모두 요구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학자가 하나의 큰 강령에 먼저 힘쓰고 3천 가지 곡례(曲禮)의 절목까지 완벽히 지키는 것 역시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 또 어찌 일률적으로 논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매양 세상 사람들이 위의는 밖으로 드러난 그림자일 뿐임을 모르고 말과 겉모습에서 잘못 판단하여, 천하의 사람들이 온통 이러한 것을 한탄하였습니다. 그래서 한번 참으로 위의가 있는 당대 군자와 이 의리를 강론해 보고 싶었습니다. 지금 집사께서 엄연히 과장에 임하여 가장 먼저 이것을 질문하시니, 저는 용모를 단정히 하고 우러러 대답해 올립니다.


※[역자 주] 

1. 재아와 자우 : 공자가 “용모로 사람을 취한다면 자우에게서 실수를 하고, 언변으로 사람을 취한다면 재여에게서 실수를 하였을 것이다.〔以容取人 則失之子羽 以辭取人 則失之宰予〕”라고 한 말을 인용한 표현이다. 《家語 第19 子路初見》 재아는 공자의 제자인 재여(宰予)이다. 언변에 뛰어났으나 실천이 부족하고 덕이 부족한 인물이다. 자우(子羽)는 춘추 시대 노나라 현자 담대멸명(澹臺滅明)의 자이다. 담대멸명은 어질고 군자다운 사람인데, 얼굴이 매우 못났다고 한다.

2. 덕음에 결점이 없다 : 이는 의리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목소리에 어색함이 없이 편안하고 화평하여 덕이 서려 있다는 의미이다. 《시경》 〈낭발(狼跋)〉에 “공이 큰 아름다움을 공손히 사양하시니, 덕스러운 음성에 하자가 없도다.(公孫碩膚 德音不瑕)” 하였다. 공은 주공이다. 주공이 왕위를 찬탈하려 한다는 유언비어를 관숙(管叔)과 채숙(蔡叔)이 퍼트렸으나, 주공은 떳떳이 성덕(聖德)을 잃지 않아 공경과 법도를 다하였으므로 당시 대부들이 이와 같이 찬미하였다.

3.우맹(優孟) : 우맹은 춘추 시대 이름난 광대이다. 초나라의 명재상 원오(蔿敖)가 죽고 그의 아들은 매우 곤궁하게 되었으며, 초나라 장왕(莊王)은 정사를 자문할 데가 없어 실의에 빠졌다. 이때 우맹이 원오의 생시 복장으로 분장하고 거동을 흉내 내어 장왕을 찾아가 노래로써 감동시켰다. 《史記 卷126 滑稽列傳》 여기서는 덕 없이 위의만 차리는 사람은 실질 없이 모습만 흉내 낸 광대보다 더 해괴하다는 뜻으로 쓰였다.

4. 진 평공(晉平公), 왕상(王商)춘추 시대 진나라 평공이 사냥을 갔다가 새끼를 가진 호랑이를 만났다. 본래 새끼를 가진 호랑이는 가장 사나운 법인데, 이 호랑이는 진 평공을 보고 꿇어 엎드린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說苑》. 왕상은 성제 때의 승상이다. 흉노의 선우가 입조(入朝)하러 오자 황제가 미앙궁(未央宮)의 백호전(白虎殿)에서 인견하였다. 당시 승상을 지내던 왕상이 미앙궁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선우가 앞으로 나아가 배알하였는데, 이때 왕상의 훤칠한 용모에 선우가 위축되어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고 한다. 《漢書 卷82 王商傳》


-윤기(尹愭 1741~1826), '위의(威儀)',『무명자집(無名子集)/무명자집 문고 제8책/ 책(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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