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과 속이 다른 것에 대하여
몸가짐과 일처리는 세인(世人)들의 말만 보면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려야 할지 알 수 있다. 사람들 중에 우졸(愚拙)함을 지키는 이가 드문데, 모두들 제 스스로는 ☞우직(愚直)하다고 여기면서 혹 교묘하다는 지목을 받을까 두려워한다. (옮긴이 주: 원문은 人鮮能守拙。而皆自以爲拙。惟恐或歸於巧, 의역하면, "사람들 중에 꾸밈이 없는 수수한 소박함을 오롯이 지키는 이가 드물다. 모두들 제 스스로는 꾸밈없고 단순 소박하다고 여기면서도, 행여 남들로부터 알쏭달쏭한 사람, 약삭빠른 교활한 사람이라 평가받을까 두려워 한다.")
참으로 검소한 이가 드문데, 모두들 제 스스로는 검소하다고 여기면서 혹 사치스럽다는 지목을 받을까 두려워한다. 참으로 청렴한 이가 드문데, 모두들 제 스스로는 청렴하다고 여기면서 혹 탐욕스럽다는 지목을 받을까 두려워한다. 참으로 곧은 이가 드문데, 모두들 제 스스로는 곧다고 여기면서 혹 속이는 사람이라는 지목을 받을까 두려워한다.
각박한 자는 스스로 충후(忠厚)하다 여기고, 속이는 자는 스스로 신실(信實)하다고 여긴다. 사나운 자는 스스로 인자(仁慈)하다 여기고, 교만한 자는 스스로 공손(恭遜)하다고 여긴다. 입을 단속하지 않는 자는 스스로 과묵하다 여기고, 들락거리기를 좋아하는 자는 스스로 두문불출한다고 여긴다.
그렇다면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 모두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겉과 속이 판연히 다른 행태를 면하지 못해 남들이 자기를 볼 때 마치 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것과 같으니, 이 때문에 또 미워하고 싫어한다.
심하도다. 사욕이 본성을 해치고 가식이 마음을 함몰시키는 것이. 여자의 경우는 이보다 심하다. 게으르면서도 남이 게으르다고 하는 것을 싫어하고, 질투하면서도 남이 질투한다고 하는 것을 싫어한다.
때로는 심사가 꼬이기도 하고 모질기도 하고 사납기도 하며, 또 때로는 지나치게 꺼리고 피하기도 하고, 귀신을 좋아하기도 하고 사랑에 눈멀기도 한다. 그러고도 모두 제 스스로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이것은 나무랄 가치도 못되거니와 (사내)대장부로서도 온통 이 모양이니 한탄스럽다. 마음으로는 잘못인 줄 알면서 몸으로는 행하고, 남이 알까 항상 두려워하는 도둑놈처럼 또 그것을 숨긴다. 이렇게 하기보다는 차라리 겉과 속이 똑같아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는 것이 낫지 않을까.
-윤기(尹愭 1741~1826), ' 잡기 셋(雜記三)'중에서,『무명자집(無名子集)/무명자집 문고 제6책/문(文)』-
▲원글출처: 한국고전번역원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 이규필 (역)┃ 2013
※참조: 잘 사용하지 않는 한자어는, 이해를 돕기위해 네이버 사전에 링크를 걸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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