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사지법(作史之法):역사서를 짓는 방식
역사를 쓰는 법은 그 요점이 그 사실을 기록하는 데 있을 뿐이다. 사실을 기록하면 사람의 선악(善惡), 사실의 시비(是非), 세상의 치란(治亂)을 상고하여 알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흑백(黑白)이 뒤바뀌고 주자(朱紫)가 뒤섞여 후세 사람들이 무엇을 근거로 당시의 진면목을 증명할 수 있겠는가.
공자께서 《춘추(春秋)》를 지으셨으니, 그 문장은 역사이고, 그 의의는 포폄(褒貶, 옳고 그름이나 착하고 악함을 판단하여 결정함)의 뜻을 붙여 천자의 일을 사실의 기록 속에 행하였다. 그러나 사실을 기록한 노나라 역사서가 없었다면 어찌 이와 같이 할 수 있었겠는가. 그렇다면 노나라 역사서의 사실을 따라 필삭(筆削)을 가한 데 불과한 것이지, 사실을 기록한 이외에 따로 자신의 뜻대로 헤아려 법칙을 삼은 것이 아니다.
후세에 조정에서 붓을 잡는 자들이 비록 성인께서 은미함을 드러내고 완곡하고 분명하게 서술한 방법을 배우지 못했더라도 노나라 역사의 사실 기록 정신은 본받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사마천(司馬遷)은 훌륭한 사관의 재목으로 칭송되었으나, 반표(班彪)는 사마천이 “도를 손상시킨 큰 폐단이 있었다.”라고 논하였고, 반고(班固)는 사마천이 “성인의 뜻을 왜곡하였다.”라고 기롱하였다. 그러나 반고 또한 돈을 받았다는 오명을 면치 못하였고, 또 죽음으로 지킨 절개를 배척하고 정직한 사람을 부정하였다는 비난도 있다. 비록 “훌륭한 사관의 자질로는 사마천과 동호(董狐)에 비견되고, 아름다운 문장으로는 사마장경(司馬長卿 사마상여(司馬相如))과 양자운(揚子雲 양웅(揚雄))과 같다.”라고 하지만, 문중자(文中子)는 “역사의 잘못은 사마천과 반고로부터 시작되었다.”라고 하였으니, 이 아래로는 논평할 가치가 있겠는가.
양웅(楊雄)이 《법언(法言)》을 짓자 촉(蜀) 땅의 부자가 천만금을 가지고 와서 책에 실어달라고 하였으나, 양웅이 허락하지 않았다. 진수(陳壽)가 《삼국지(三國志)》를 지을 적에 정의(丁儀)의 아들에게 말하기를 “천 곡(斛)의 쌀을 가지고 오면 부친을 위해 아름다운 전(傳)을 써주겠다.”라고 하였으나 정의가 허락하지 않자 전을 짓지 않았다. 손성(孫盛)이 《진양추(晉陽秋)》를 지어 직필(直筆)로 기록하니, 환온(桓溫)이 손성의 아들에게 “방두(枋頭)에서는 참으로 실패하였으나, 어찌 자네 부친의 말 그대로이겠는가. 만약 이 역사서가 세상에 퍼진다면 그대의 문호를 막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손성의 여러 아들이 울부짖으며 백방으로 요청하였으나 손성이 크게 노하여 듣지 않자, 아들들이 몰래 고쳤다.
위수(魏收)가 《위서(魏書)》를 편수할 적에 치켜세울 때는 하늘까지 올려주고, 억누를 때는 땅속으로 내렸다. 위수가 처음에 양휴(陽休)의 도움을 받았으므로 “은덕에 보답할 것이 없어 경을 위해 좋은 전(傳)을 지어주겠다.”라고 하였고, 후에 이주영(爾朱榮)의 아들로부터 돈을 받고서 악행은 빼고 선행만 더하였으니, 사람들이 ‘더러운 역사서〔穢史〕’라고 호칭하였다. 오긍(吳兢)이 《무후기(武后紀)》를 지으면서 송경(宋璟)이 장열(張說)을 설득하여 위원충(魏元忠)의 증인이 되게 한 사적을 쓰자 장열이 속으로 몇 글자를 고치고자 원하였는데, 오긍이 허락하지 않으면서 “만약 공의 요청을 들어준다면 이 역사서는 직필이 되지 못할 것이오.”라고 하였다.
한퇴지(韓退之)가 《순종실록(順宗實錄)》을 지으니, 평론하는 자들이 시끄럽게 떠들어 바꾸고 고쳐서 온전한 편이 없었다. 이고(李翺)가 상주(上奏)하여 “지금 선악(善惡)을 행장(行狀)과 시의(謚議)를 가지고 판단하면 과장과 찬미가 많으므로 사업과 공적을 사실대로 수록하기를 청합니다.”라고 하였다. 가위(賈緯)가 사관(史館)의 수찬(修撰)이 되어 역사를 쓰면서 사랑하고 미워하기를 마음 가는 대로 하니, 논의가 크게 일어 그를 ‘쇠 주둥이〔賈鐵觜〕’라고 지목하였다.
원추(袁樞)가 열전(列傳)을 편수하자 장돈(章惇)이 같은 마을 사람으로 자신에 대한 일을 잘 써주기를 요구하니, 원추는 “차라리 고향 사람을 저버릴지언정 천하와 후세의 공론을 저버릴 수 없다.”라고 하였다. 소성(紹聖) 연간의 사관(史官)이 되어 오로지 왕안석(王安石)의 일록(日錄)을 근거로 삼아 시비(是非)를 변란시켰다. 진회(秦檜)는 야사(野史)를 금지하였다.
이로써 본다면 이른바 역사서란 모두 돈을 받고 쌀을 구하거나 위세와 인정에 휘둘릴 뿐이다. 간혹 허락하지 않았던 자가 있더라도 몇이나 되겠으며, 몰래 고쳐 준 자와 바꿔 쓴 자가 또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으니, 그 선악과 시비와 치란에 대해 어떻게 사실을 알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말하겠다. 역사를 읽는 자들이 진실로 고사(故事)를 갖추고 박람(博覽, 책을 다양하고 폭넓게 많이 읽음, 사물을 널리 보고 들음)의 바탕을 삼는다면 괜찮겠지만, 모두 사실로 여긴다면 안 된다.
먼저 내가 몸으로 직접 겪은 일로 말해 보겠다. 내가 일찍이 정조(正祖)조에 《실록》을 등수(謄修)하는 일에 참여할 때 기주(記注)의 본초(本草) 및 여러 재상이 고친 것을 보았더니, 세도가에 대해서는 오로지 포장을 일삼아 찬양하지 않은 경우가 없어 비록 긴요치 않은 말도 모두 썼으며, 외롭고 한미한 자에 대해서는 온통 누락시키기도 하고 소략하게 쓰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사실이 뒤바뀌고 보태고 빼어 실제 사적을 잃었음을 미루어 알 수 있다.
내가 과거에 급제하여 입시(入侍)할 때에 은혜로운 하교가 간절하여 거의 세상에 없던 경우였는데도 모두 생략해 버렸다. 다른 사람의 경우는 이와 비슷하지도 않았는데 성대하게 칭송하였으니, 하나를 가지고 다른 것들을 모두 알 수 있다.
또 정조조에 《태학은배시집(太學銀杯詩集)》을 간행토록 명하여 등극 이후에 응제(應製)에서 우수한 등급을 받아 급제한 자들을 모두 연대별로 기록하여 각자에게 하사하도록 하였다. 명을 받은 신하가 내각에 소장된 《어제윤발(御製綸綍)》, 《일성록(日省錄)》, 《임헌공령(臨軒功令)》, 《임헌제총(臨軒題叢)》, 《육영성휘(育英姓彙)》, 《어고은사절목(御考恩賜節目)》, 《태학응제어고안(太學應製御考案)》 등 여러 책을 내어다가 상호 참고하여 편집하기를 청하자 임금께서 허락하였다. 뒤에 그 책을 자세히 고찰해 보니 크게 사실과 다른 점이 있었다.
자기와 친한 사람에 대해서는 큰 글씨로 반복해 기록하여 번다 하더라도 줄이지 않았고, 수석이 아니더라도 모두 끄집어내어 특별히 강조하였으며, 그들이 말하는 사람들 사이에 회자된다는 시구조차도 별로 특별한 점이 없는데도 칭찬해 마지않았다. 그리고 모르는 사람에 대해서는 생략하거나 빼 버렸고, 심지어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에 진출한 사실에 대해서도 편파적으로 기록하거나 독단적으로 삭제하여 사실과 다름이 있었다.
시험 삼아 신해년(1791) 한 해 동안의 일만으로 말해 보겠다. 내가 응제(應製) 시험에서 여러 차례 수석을 차지하여 그때마다 포상을 받았고, 그로 인해 상제(上第)에 발탁되었으나 하나도 수록하지 않았으며, 또한 책을 나눠주지도 않았다.
수십 년 사이의 해마다 보는 대소과 방목(榜目, 조선 시대에 문과 급제자를 연대, 시험의 종류, 성적의 순서로 적은 명부)은 이미 명백한 자취가 있어서 오래되어 증거가 없다고 둘러댈 수 없고, 또 잃어버리고 잊어버렸다고 핑계할 수도 없으니, 비록 더하고 줄이거나 싣고 빼고 싶어도 그 사이에 사사로운 뜻을 개입시켜선 안 될 듯한데, 어그러지고 잘못됨이 이와 같았다.
이 사람들은 이 책에서 따로 필삭(筆削)과 여탈(與奪)의 권세를 행하고자 한 것이어서 일반적인 생각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것인가. 이런 책도 이와 같은데, 하물며 역사를 기록하는 붓끝에 사사로운 생각을 품을 수 있겠는가?.
-윤기(尹愭 1741~1826), '작사지법〔作史之法〕' 『무명자집(無名子集)』 제12책/정상한화(井上閒話) 51조목-
▲원글출처: 한국고전번역원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 김채식 이상아(역)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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