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차제(讀書次第 ):독서는 의지가 중요하고, 재능은 다음이다

옛날 구양영숙(歐陽永叔 구양수(歐陽脩))이 계자법(計字法)을 만들고 정단례(程端禮)가 분년법(分年法)을 만들었는데 후학들이 그 말을 따랐다는 말을 듣지 못했으니, 다만 차례만 정하여 선후의 순서를 잃지 않게 하느니만 못하다. 그 성취가 이르고 늦거나 높고 낮음은 사람의 의지와 재주에 달린 것이다.


오호라! 주자(朱子)는 나의 스승이다. 독서에 대하여 “몸을 바르게 하고 서책을 마주하여 상세히 글자를 보고 자세하고 분명하게 읽어야 한다. 모름지기 글자마다 또박또박 크게 읽고 한 글자라도 틀리거나, 소홀히 여기거나, 크게 보거나, 거꾸로 보아선 안 되고 억지로 암기해서도 안 된다. 오직 많이 읽어 자연히 입에 붙어서 오래되어도 잊지 않아야 한다.”라고 하면서, 고인들이 말한 “천 번을 읽으면 그 뜻이 저절로 드러난다.〔讀書千遍 其義自見〕”라는 구절을 인용하였다.


또 말하기를 “독서에는 삼도(三到, 세가지 방법)*가 있으니, 심도(心到), 안도(眼到), 구도(口到)이다.”라고 하였다. 또 말하기를 “마치 성현을 마주한 듯 단정히 정좌하면 마음이 안정되어 의리를 쉽게 궁구할 수 있다. 많이 읽기만을 탐내어 힘쓰거나 대충대충 넘어가고 건너뛰어서는 안 되며, 읽기를 마치자마자 곧 이미 통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의문처가 있으면 곧 다시 사색하고, 사색하여 통하지 않으면 작은 책자를 마련하여 날마다 베껴 기록하여 틈틈이 곱씹어 읽고 자문(資問)한다. 까닭 없이 출입하지 말아야 하고, 소설(少說)과 한화(閑話)는 허송세월할 염려가 있고, 잡서(雜書)는 정력을 분산시킬 염려가 있으니 보지 말아야 한다.”라고 하였다. 또 말하기를 “독서할 때는 마음을 비우고 눈은 높게 지니며 배포를 크게 가져야 한다.”고 하였다.


가령 주자가 독서할 줄 몰랐다면 그만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것이 어찌 독서의 삼척(三尺) 준칙이 아니겠는가.


혹자가 말하기를 “세간에는 허다한 책이 있는데, 어떻게 다 읽을 수 있겠소? 또 사람이 질병과 사고가 없을 수 없고, 집안일에 매이거나 하면 뜻을 온전히 하여 독서하려해도 안 되는 경우가 있으니, 다른 사람들처럼 요행이 과거에 급제하여 문호를 지키고 집안을 이끌어 가는 것만 못하오.”라고 하였다. 이는 참으로 자포자기하고 나태한 사람이므로 요순의 도에 함께 들어갈 수 없다. 


판축(版築)*하며 독서한 것은 오래전의 일이라 쳐도, 고인들 중에 아침에 밭 갈고 밤에 독서한 사람, 경전을 끼고 김을 맨 사람, 땔나무를 지고 다니며 암송한 사람, 질병 속에서 독서한 사람, 옥중에서 글을 배운 사람도 있었으니, 어찌 오래도록 사고(事故 어떠한 일의 원인이나 이유, 여기선 갖은 핑계를 의미)에 얽매여 읽고 싶어도 읽지 못한 사람이 있었단 말인가. 다만 의지가 없는 것이 근심일 뿐이다.


그러므로 나는 “의지가 중요하고, 재능은 다음이다.”라고 말한다.


[역자주]

1.독서의 순서(讀書次第 독서차의) : 문집 편차 순서로 보아 1804년~1810년 사이에 지어진 글로 추정된다. 아이를 가르칠 때, 아동의 성장 발달에 따라 읽혀야 할 책의 목록과 성격, 공부를 시키는 요령을 자세히 서술하였다.

2.독서 삼도(三到) : 《주자독서법》 권1 〈강령(綱領)〉에 보인다. “내가 일찍 독서에 삼도(三到)가 있다고 하였는데, 심도(心到), 안도(眼到), 구도(口到)가 그것이다. 마음이 독서에 있지 않으면 눈으로 보는 것이 자세치 않고, 마음과 눈이 전일하지 않아서 단지 허투루 소리 내 읽으면, 기억할 수도 없고 기억도 오래가지 않는다. 삼도 중에서 심도가 가장 중요하니, 마음이 이르렀으면 눈과 입이 어찌 이르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余嘗謂讀書有三到 心到眼到口到 心不在此 則眼看不子細 心眼旣不專一 却只漫浪誦讀 決不能記 記亦不能久也 三到之中 心到最急 心旣到矣 眼口豈有不到者乎〕”라고 하였다.

3. 판축(版築)하며 독서한 것 : 은나라 부열(傅說)이 등용되기 전에 부암(傅巖)에서 판축(版築)하는 일을 하며 독서하였다는 고사를 가리킨다.(옮긴이 주: 


[옮긴이 주] 판축(版築)은 옛 건축공법에서 판자와 판자 사이에 흙을 넣고 공이로 다지는 것을 말한다. 부열(傅說)은 고대 중국 은나라의 재상으로 전설적인 현자다. 원래 신분은 노예로 건축공사장 일꾼이었다. 부열은 은나라 중흥의 대업을 고민하던 은고종 무정에 의해 발탁되었다. 고종은 꿈에 성인(聖人)에 관한 계시를 받고 애타게 성인을 찾던 중, 공사장 인부인 그를 발견하고 파격적으로 등용하여 은나라의 재상으로 삼았다. 고종의 예지대로 부열은 은나라 중흥의 대업을 이루었다. 여러 중국역사서에서 최초로 성인(聖人)으로 기록된 인물이 바로 부열이다.


-윤기(尹愭 1741~1826), '☞독서의 순서〔讀書次第〕부분',『무명자집(無名子集)/무명자집 문고 제10책/ 책(冊)』-


▲원글출처: 한국고전번역원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 김채식 (역)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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