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바탕이 물들어서는 안된다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색이다. 하늘과 땅, 사람과 만물, 자연의 색이 있고 복식(服飾)과 기용(器用)과 회화(繪畵)의 색이 있다. 그런데 숭상하는 색이 시대마다 다른 것은 무슨 까닭인가.
자색(紫色)*을 싫어하는 것은 붉은 색을 어지럽힐까 두려워해서이고, 황색(黃色)*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중색(中色)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누가 정색(正色)이 간색보다 우월하고, 중색(中色)이 오색 가운데 으뜸이라고 생각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일반적으로 사물은 바탕이 있고 난 뒤에 색이 있으니 바탕은 색의 근본입니다. 그리고 백색은 또 색 가운데 바탕이 되는 색입니다.저는 색 중의 바탕을 먼저 말한 뒤에 다른 색을 언급하고자 하니, 그래도 되겠습니까?
백색의 속성은 깨끗하게 태소(太素)의 바탕을 가지고서 천연적으로 한 점의 잡스러움이 없습니다. 모든 천하 만물은 본래의 색깔을 궁구해본다면 백색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물드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비로소 청색도 되고 적색도 되고 황색도 되고 흑색도 되며, 간색도 되고 잡색도 되어, 어떤 색으로든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백색이란 참으로 천만 색의 근본이니, 관자(管子)가 말한 바 ‘흰색은 오색의 바탕이다.’라는 것이 잠꼬대소리가 아닙니다. 이런 까닭에 《예기》에서 “백색은 채색을 받아들인다.〔白受采〕” 하였고, 공자는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이 마련된 뒤에 하는 것이다.〔繪事後素〕” 하였습니다.
다섯 가지 채색을 오색의 비단에 찬란히 베풀어 해와 달과 산(山)과 용(龍)의 그림을 그리며 보불(黼黻)과 문장의 아름다움을 만드니 색의 성대함은 이보다 더한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주례》 〈추관사구(秋官司寇)〉의 직금(職金)이 단청을 수장하는 일을 주관하는 것도 역시 이 때문입니다만, 그럼에도 반드시 흰 바탕을 만든 뒤에 하는 것은 백색이 채색을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백색의 바탕 없이 채색을 받아들인다면 아홉 문채와 여섯 채색의 휘황찬란함이 있다 한들 색을 입힐 수 없으니, 백색이 색의 근본이 되는 것은 분명합니다.
묵적(墨翟)*이 실을 마전하다가 흰 비단실을 노랗게 물들일 수도 있고 검게 물들일 수도 있다고 하여 울었던 일과 공손룡(公孫龍)*이 흰 돌을 가지고 셋이라고 할 수 도 있고 하나라고 할 수 도 있다고 변론하였던 일은 우리 유가에서는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까닭은 다른 색이 아니라 반드시 백색이기 때문이니, 여기에는 반드시 까닭이 있습니다. 아, 색도 반드시 근본으로 삼는 바가 있거늘 사람에 와서 유독 그렇지 않겠습니까.
바탕이란 비유하자면 백색이고 문채는 비유하자면 채색입니다. 경례(經禮) 3백과 곡례(曲禮) 3천이 찬연히 구비되어 있으니 문채를 낼 수 있는 제도가 지극합니다만, 바탕이 아니면 예의는 헛되이 행할 수 없습니다. 문학과 정사에 언어와 풍채가 함께 아름다우니 문채를 낸 모습이 극진합니다만, 바탕이 없으면 문채는 소용이 없습니다. 이런 까닭에 군자는 반드시 바탕에 먼저 힘쓰고 문채를 나중에 힘써야 하며, 실질을 먼저 일삼고 화려함을 나중에 취해야 합니다.
극자성(棘子成)*이 ‘바탕일 뿐이니, 문채를 내어 무엇하겠습니까.〔質而已矣 何以文爲〕’라고 한 말은 실로 작은 잘못을 바로잡으려다가 큰 잘못을 일으키는 폐단이 됩니다만, 또 어찌 서자(庶子)의 춘화(春華)*를 채택하고자 하여 가승(家丞)의 추실(秋實)을 잊어서야 되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공자께서 ‘자공(子貢)의 화려함*이 재여(宰予)의 질실함만 못하다’라는 말씀을 하신 까닭입니다.
문양을 아로새기고 채색을 수놓아 문채를 드러내어 놓고는 자취를 좇는 데에서 백론(白論 근거 없는 논의)을 맺고, 무늬를 번화하게 하고 꾸밈을 풍성하게 하여 화려함을 드날려 놓고는 남에게 과시하는 데에서 백망(白望 근거 없는 명성)을 퍼트린다면 이는 기름덩이에 그림을 그리고 얼음에 조각을 새긴다*는 옛사람의 비유와 같으니, 그렇다면 문채를 귀하게 여길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또 논해 보건대, 공자께서 ‘희다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물들여도 검어지지 않는구나.〔不曰白乎 涅而不緇〕’라고 하였습니다. 백색이 백색일 수 있는 까닭은 물들여도 검어지지 않기 때문이니, 그렇지 않으면 백색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군자가 바탕을 귀하게 여기는 이유는 외물에 의해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군자가 군자 된 까닭이니, 확고하여 뽑아버릴 수 없는 것이 이와 같습니다.
그렇지만 백색이 오색의 바탕이 된다는 것만 알아 오로지 백색만을 고수하여 마치 견백(堅白)의 설*로 명성을 얻은 혜시(惠施)처럼 하고, 검어지지 않고 백색을 띠던 양웅(揚雄)*처럼 한다면 이것은 내가 말한 ‘오색으로 상(象)을 본떠 선왕의 예악과 문물을 밝힌다.’라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바탕에 대해 어찌 문채를 낼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본말과 선후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아, 문채를 앞세우고 바탕을 뒤로 하는 것도 안 되거늘, 하물며 성선(性善)의 본색을 잃고서 가지가지 색색의 물욕에 오염되어 모래가 진흙 속에 뒤섞이고 흰색이 칠 속에 들어간 것처럼 된다면 또한 몹시 딱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어두운 방에 볕이 비쳐 들어올 때면 묵묵히 홀로 바탕을 실천하는 의리를 궁구하면서 백색이 채색에 대한 관계가 바탕이 문채에 대한 관계와 흡사한 면이 있다는 것에서 많은 감흥을 받았습니다.
지금 집사의 질문이 마침 색에 미쳤기 때문에 감히 정색(正色)으로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집사께서는 주색(朱色)ㆍ자색(紫色)ㆍ현색(玄色)ㆍ황색(黃色)에 대해 논하지 않은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옵소서.
[역자 주]
1. 자색(紫色) : 자색은 간색(間色)이고 주색(朱色)은 정색(正色)이다. 공자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흡사하면서 아닌 것〔似而非〕을 미워하노니, 가라지를 미워함은 벼 싹을 어지럽힐까 두려워해서요, 말재주가 있는 자를 미워함은 의(義)를 어지럽힐까 두려워해서요, 말 잘하는 입을 가진 자를 미워함은 신(信)을 어지럽힐까 두려워해서요, 정(鄭)나라 음악(音樂)을 미워함은 정악(正樂)을 어지럽힐까 두려워해서요, 자주색을 미워함은 붉은 색을 어지럽힐까 두려워해서요, 향원(鄕原)을 미워함은 덕(德)을 어지럽힐까 두려워해서이다.〔孔子曰 惡似而非者 惡莠恐其亂苗也 惡佞恐其亂義也 惡利口恐其亂信也 惡鄭聲恐其亂樂也 惡紫恐其亂朱也 惡鄕原恐其亂德也〕” 《孟子 盡心》
2. 황색(黃色): 방위로 보면 황색은 중앙의 자리에 해당하는 색이다. 참고로 청색은 동방, 적색은 남방, 백색은 서방, 흑색은 북방이다.
3. 태소(太素) : 태초의 원바탕을 말한다. 《열자(列子)》 〈천서(天瑞)〉에, “태소란 질의 시작〔質之始〕이다.” 한 데서 온 말이다.
4.묵적(墨翟): 묵자가 실을 물들이는 사람을 보고 슬퍼 탄식하기를, “푸른색을 물들이면 푸르게 되고, 누런색을 물들이면 누렇게 되며, 오색을 물들이면 오색이 되니, 물들이는 색을 삼가지 않을 수 없다.”라고 하였다. 《墨子 所染》
5. 공손룡(公孫龍): 전국 시대 조(趙)나라의 논변가 공손룡이 ‘견백동이(堅白同異)’라는 궤변을 제출하였다. 단단하고 흰 돌이 있을 경우, 단단함〔堅〕과 흰색〔白〕과 돌〔石〕 세 가지를 동시에 충족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공손룡이 그것은 불가능하고 두 가지를 충족시키는 것은 가능하다고 하였다. 눈으로 보면 색이 ‘흰 돌’이라는 것만 알 수 있고, 손으로 만져보면 ‘단단한 돌’이라는 것만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결국 단단한 돌과 흰 돌은 서로 다른 것이요 절대로 같은 것이 될 수 없다고 하였다. 요컨대 사실상 같은 것을 다른 것으로 만들고, 다른 것을 같은 것으로 만드는 괴상한 논리를 말한다. 《公孫龍子 堅白論》
6. 극자성(棘子成) : 극자성은 춘추 시대 위(衛)나라의 대부이다. 그가 말하기를 “군자는 진실하면 그만이지, 어찌 문채를 낼 필요가 있겠는가.〔君子質而已矣 何以文爲〕” 하여 바탕을 강조하였다. 이 말이 훌륭하기는 하지만 지나친 면이 있어 문채를 무시하는 것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 그래서 당시에 자공(子貢)이 “애석하도다. 선생의 말씀이 군자답기는 하나, 사마도 혀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을〔惜乎 夫子之言 君子也 駟不及舌〕”이라고 하여 안타까워했다. 《論語 顔淵》
7. 서자(庶子)의 춘화(春華): 춘화(春華)는 문채의 찬란함을 가리키는 말이고 추실(秋實)은 덕행의 질실함을 가리키는 말이다. 가승(家丞)은 한대(漢代)에 태자의 가정(家政)을 보필하는 관직이다. 삼국 시대 형옹(邢顒)은 덕행이 당당하다고 칭송받던 인물로 조조가 매우 존경하였다. 이로 인해 조조의 둘째 아들 조식(曹植)이 자신의 가승으로 삼았으나 형옹은 한사코 사양하였다. 이에 서자(庶子) 유정(劉楨)이 조식에게 글을 보내어 ‘형옹은 참으로 절조 높은 아사(雅士)인데 소홀히 대우하고 자신은 못난 사람인데 특별히 예우하니, 이것은 서자인 자신의 문채를 채택하고 가승인 형옹의 덕망을 잊는 것이다.〔採庶子之春華 忘家丞之秋實〕’라는 요지로 간언을 하였다. 《三國志 魏書 卷12 邢顒傳》
8. 자공(子貢)의 화려함: 공자가 재여를 초나라로 심부름 보냈다. 초 소왕(楚昭王)이 재여를 통해 공자에게 화려한 물건을 선물하려 하였다. 재여는 왕에게 이런 물건으로 공자에게 선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하였다. 왕이 이유를 묻자 자신이 공자를 모시며 지켜본 결과 공자는 의를 귀하게 여기고 덕을 숭상하며 검소하고 실질을 중시하는 분이라서 귀한 장식물은 선물해도 소용이 없다는 뜻으로 대답하였다. 재여가 돌아와 전말을 아뢰자 공자는 재여의 대답을 가지고 여러 제자들에게 평가를 하라고 하였다. 이에 자공이 “선생님의 아름다움을 극진히 말하지 못했습니다. 선생님의 덕은 높기는 하늘과 짝하고 깊기는 바다와 맞먹습니다. 재여의 말과 같은 것은 행사(行事)의 실질일 뿐입니다.” 하였다. 그러자 공자가 “말이란 실질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니 실질을 버리고 무얼 칭송할까. 자공의 화려함이 재여의 질실함만 못하다.〔賜之華不若予之實也〕” 하였다. 《孔叢子 記義 第3》
9. 기름덩이에 그림 : 기름덩이에 그림을 그리고 얼음에 조각을 새긴다는 것은 실질 없이 멋을 내는데 힘을 쏟는다면 애만 쓰일 뿐 아무 보람이 없음을 뜻한다. 한나라 환관(桓寬)의 《염철론(鹽鐵論)》에 “안으로 바탕이 없이 겉으로 문만 배운다면, 아무리 어진 스승이나 훌륭한 벗이 있더라도 마치 기름덩이에 그림을 그리거나 얼음을 조각하는 것과 같아서 시간만 허비하고 보람은 없을 것이다.〔內無其質而外學其文 雖有賢師良友 若畫脂鏤冰 費日損功〕”라고 하였다.
10. 견백(堅白)의 설(說) : 견백(堅白)은 궤변을 뜻하는 말인데, 전국 시대 조(趙)나라의 논변가 공손룡이 ‘견백동이(堅白同異)’라는 궤변을 제출하였다. 단단하고 흰 돌이 있을 경우, 단단함〔堅〕과 흰색〔白〕과 돌〔石〕 세 가지를 동시에 충족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공손룡이 그것은 불가능하고 두 가지를 충족시키는 것은 가능하다고 하였다. 눈으로 보면 색이 ‘흰 돌’이라는 것만 알 수 있고, 손으로 만져보면 ‘단단한 돌’이라는 것만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결국 단단한 돌과 흰 돌은 서로 다른 것이요 절대로 같은 것이 될 수 없다고 하였다. 요컨대 사실상 같은 것을 다른 것으로 만들고, 다른 것을 같은 것으로 만드는 괴상한 논리를 말한다. 《公孫龍子 堅白論》 혜시는 전국 시대의 궤변가로, 견백동이설과 같은 현란한 말솜씨를 자랑했다. 《장자》 〈대종사(大宗師)〉에 “하늘이 그대의 형체를 갖추어 주었는데도 그대는 궤변으로 천하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天選子之形 子以堅白鳴〕” 하였다.
11. 양웅(揚雄) 현상백: 양웅이 《태현경(太玄經)》을 짓자, 당시 사람들이 태현(太玄)을 표방하면서도 도가 깊지 못하여 여전히 희다는 뜻으로 현상백(玄尙白)이라고 조롱하였다. 이에 양웅이 《해조(解嘲)》를 지어 스스로 변호하였다. 《漢書 卷87 揚雄傳》
-윤기(尹愭 1741~1826), '색(色)',『무명자집(無名子集)/무명자집 문고 제7책/ 책(策)』-
▲원글출처:한국고전번역원ⓒ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 이규필 (역)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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