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와 짐승에게서 배운다 (雜說 三)
거미이야기
거미는 공중에 그물을 쳐서 날것들이 걸리기를 기다리는데, 몸집이 작은 모기ㆍ파리로부터 몸집이 큰 매미ㆍ제비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 거미줄로 잡아서 배를 채운다. 한 번은 벌이 거미줄에 걸렸다. 그런데 거미가 그 벌을 급히 거미줄로 동이다가 갑자기 땅에 떨어져 배가 터져 죽었다. 벌침에 쏘인 것이다.
어떤 아이가 벌이 거미줄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것을 보고 손으로 풀어 주려고 하는데 벌이 또 침을 쏘았다. 그러자 아이는 화가 나서 벌을 발로 밟아 뭉개 버렸다.
아, 거미는 날아다니는 온갖 것을 다 거미줄로 잡는 솜씨만 믿고 벌이 침을 쏠 수 있다는 생각은 못하였고, 벌은 침 쏘는 것만을 능사로 여겨 자신을 해치려는 사람과 구해 주려는 사람을 막론하고 만나는 족족 예외 없이 쏘는 바람에 구해 주려던 사람이 도리어 해치게 만들었다. 아이는 거미가 낭패한 것을 다행으로 여길 뿐 벌의 나쁜 점은 생각지 못하였고, 벌이 곤경에서 벗어나기만을 바랄 뿐 벌침의 독이 사람을 해칠 수 있음은 헤아리지 못하였다. 천하의 일이 어찌 이와 같을 뿐이겠는가?
고양이 이야기
고양이를 좋아하는 어떤 사람이 고양이 세 마리를 키우고 있었다. 그 중 한 마리는 낮이면 잠만 자고 밤이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쥐를 잡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고양이가 쥐 잡는 모습을 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 고양이는 쥐를 잡을 줄 모른다고 생각하였다.
다른 두 마리는 밤이면 사람 곁에서 잠만 자고 낮에 이따금 쥐를 잡으면 반드시 자랑하며 사람 앞에 물어 왔다. 그러고는 쥐를 가지고 놀며 사람들을 재미나게 해 주었다. 사람들은 모두 이런 행동을 기특하게 여겨 두 마리의 고양이가 습관적으로 음식을 훔치고 닭을 물어뜯어도 꾸짖지 않았다.
세 마리 중 밤에 사냥하는 고양이 때문에 쥐들은 많은 수가 죽고, 죽지 않은 놈들은 모두 멀리 달아났다. 그리하여 마침내 집 안에서 쥐가 완전히 사라졌다. 사람들은 이것이 다른 두 마리의 공이라 생각하고 밤에 사냥하는 고양이를 매질하여 내쫓았다. 그러자 쥐들이 다시 몰려들어 집 안에 온통 쥐가 들끓었다.
지혜로운 사람에게 선택하게 한다면 내쫓긴 한 마리를 키우려 할까, 아니면 나머지 두 마리를 키우려 할까?
개 이야기
어떤 사람이 남에게서 강아지를 얻어 와 키우기 시작했는데, 강아지가 어리고 또 새로 왔기 때문에 먹이를 자주 주고 늘 어여삐 어루만져 주었다. 그 집에는 본디 늙은 개가 있었는데, 속으로는 새로 온 강아지를 질투하면서도 겉으로는 아껴 주어 볼 때마다 핥아 주고 보듬어 주고 벼룩과 파리를 물어내 주기도 하였다. 이 때문에 주인은 늙은 개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며칠 뒤에 늙은 개가 마침내 주인이 곤히 잠든 밤을 틈타 강아지의 목을 물어 죽이고 대문 밖에 물어다 놓았다. 이튿날 주인이 일어나자 늙은 개는 주인의 옷자락을 끌어당기며 강아지가 있는 곳으로 나가서 슬피 울며 강아지를 가리켜 보였다.
저 늙은 개는 속으로는 죽이고 싶으면서도 겉으로는 아끼는 시늉을 하여 주인이 의심하지 않게 만들고, 악독한 계획을 실행한 뒤에는 또 강아지가 자기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닌 것처럼 꾸몄으니 참으로 교활하다. 개도 이러한데 하물며 사람이랴!
-윤기(尹愭 1741~1826), '잡다한 이야기 세 가지〔雜說 三]',『무명자집(無名子集)/무명자집 문고 제5책/ 잡설(雜說)』-
▲원글출처: 한국고전번역원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 강민정 (역)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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