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의 강함은 부드러움에 있다

천하에서 지극히 부드러운 것을 들어 보자면 몸에 있어서는 혀만 한 것이 없다. 음식을 먹을 때나 말을 할 때 모두 이것을 쓰니, 의당 쉽게 닳아버릴 것 같지만 죽을 때까지 닳지 않는다. 


사물에 있어서는 물만 한 것이 없다. 물은 성질이 흘러가고 스며드니 의당 힘이 없을 듯하지만, 만곡(萬斛, 아주 많은 분량, 매우 큼을 뜻함)의 배를 띄우고 천 길의 절벽을 무너뜨리고도 여유롭다. 


이 두 가지는 천하에서 아무리 강한 것을 가져와 대치한다 하더라도 감당해낼 수가 없다. 가령 혀가 강하다고 한다면 그 자리에서 닳는 것을 볼 수 있고, 물이 강하다고 한다면 힘에 반드시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강한 것은 강할 수 없고 부드러워야 강할 수 있으니, 부드러움의 덕이 지극하다 하겠다. 그러므로 입술을 놀리고 입 끝을 삐죽여 수다스레 떠벌리는 자는 한 번의 침묵으로 감당할 수 있고, 눈꼬리를 찢고 머리털을 곤두세워 화를 내는 자는 한 번의 웃음으로 이길 수 있다. 그렇다면 천하의 강함은 부드러움에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부드러움은 또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 있다. 닳지 않는 부드러운 혀라 하더라도 말과 음식을 삼가지 않는다면 도리어 그 부드러움 때문에 해를 입고, 다루기 쉬운 부드러운 물이라 할지라도 행여 함부로 다룬다면 그 부드러움 때문에 침몰당한다. 


가령 부드럽게만 다루어 진작(振作, 떨쳐 일으킴, 떨치고 일어남)할 줄도 모르고, 부드럽게만 써서 삼갈 줄을 모른다고 하자. 이는 상종(常樅)*이 혀를 보여준 뜻이 아니요, 끝내 반드시 지푸라기 하나도 띄우지 못하는 약수(弱水,전설상의 강)*처럼 무기력하게 되고 말 뿐이리라.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런 까닭에 군자는 반드시 전전긍긍 경계하여 외면은 부드럽게 하고 내면은 강하게 해야 한다.


※[역자 주]

1.상종(常樅) : 상종은 노장류의 인물로, 노자(老子)보다 나이가 많다. 그가 병이 들었을 때 노자가 “선생께서는 제자에게 전해줄 만한 무슨 말씀이 없습니까?” 하니, 상종이 입을 벌리고 노자에게 입안을 보여주고는 “혀가 남아 있더냐?〔舌存乎〕”라고 물었다. 노자가 “남아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자, 상종은 “어찌 부드러워서 남아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豈非以軟耶〕”라고 하였다. “이는 다 빠지고 없지?〔齒亡乎〕”라고 물으니, 노자가 “다 빠지고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상종이 “강해서 다 빠진 것이 아니겠느냐?〔豈非以剛耶〕”라고 하였다. 《說苑》

2. 약수(弱水) : 봉래산이 있는 섬으로부터 30만 리쯤 떨어진 곳에서 섬을 둘러싸고 있어 인간 세상과 격리시켜준다고 하는 전설상의 물 이름이다. 이 물은 기러기 털도 띄울 수 없을 만큼 힘이 없기 때문에 인간은 도저히 이 물을 건널 수가 없다고 한다. 《海內十洲記》 《太平廣記 神仙》


 -윤기(尹愭 1741~1826), '강함과 부드러움에 대한 설(剛柔說)',『무명자집(無名子集)/무명자집 문고 제6책/문(文)』-


▲원글출처: 한국고전번역원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이규필 (역)┃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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