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과 속을 서로 바르게
겉과 속을 다같이 수양해야 하지만 속을 더 중하게 여겨야 한다. 그러나 속이란 것은 마음이다. 마음이란 형상이 없어서 쉽게 잡아 지킬 수 없는 까닭에 성인(聖人, 공자)이 안연(顔淵)을 가르칠 때 사물(四勿)*에 지나지 않았으니, 다만 시(視, 보는 것)ㆍ청(聽, 듣는 것)ㆍ언(言, 말고 표현하는 것)ㆍ동(勳, 실행하고 지키는 것)에 공부를 더하도록 하였다.
이 시ㆍ청ㆍ언ㆍ동이란 것은 겉으로 하는 행동이다. 겉을 바르게 하면 속도 역시 바르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자(程子)가 이 사물잠(四勿箴)을 짓는 데에도 역시 이와 같이 하였다. 시잠(視箴)에는 “보는 것을 법으로 삼아야 한다.” 청잠(聽箴)에는 “간사한 생각을 막고 성실한 마음을 길러야 한다.” 언잠(言箴)에는 “말을 입밖에 낼 때 조급하고 망령됨을 금해야 한다.” 동잠(動箴)에는 “옳은 행동을 지켜 나가야 한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곧 표면에 역점을 두어 예(禮)에 회복하는 절차를 삼은 것이다.
세상에서 떠드는 일종의 의논은, “본원(本原)을 중히 여겨서 지키는 바를 마음에 두면, 겉모습은 마음을 바르게 하기 전에 저절로 바르게 될 것이다.” 하여 위의(威儀, 예법에 맞는 몸가짐)와 동정(動靜, 실제로 벌어지는 낌새) 사이에는 유의하기를 즐겨하지 않는다. 이런 기풍이 한결같이 길어지면 필경에는 황잡하고 방탄한 사람이 되어서 끝내는 소위 본원이라는 것조차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성인의 훈계라는 것은 만세의 법이 되는 것이니 이를 어기는 자는 모두 그르게 된다. 주자(朱子)의 경재잠(敬齋箴)에 이르러서는, “겉과 속을 서로 바르게 해야 한다.”는 것으로써 포괄했으니, 이는 더욱 물샐 틈도 없이 되었다.
-이익(李瀷, 1681~1763), '사물잠(四勿箴)', 성호사설(星湖僿說)제20권/경사문(經史門)-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김철희 (역) ┃ 1977
※[옮긴이 주] 사물(四勿): 마음을 닦는 방법으로 공자가 제시한 네 가지 가르침, 즉 비례물시(非禮勿視), 비례물청(非禮勿聽), 비례물언(非禮勿言), 비례물동(非禮勿動)" (예禮가 아니면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며, 말하지도 말고, 행동하지도 말라"(『논어 안연편』). 이를 사물잠이라 한다. 참고로 이에 대한 자기성찰의 방법론으로 공자의 제자인 증자(증참)의 '삼성오신(三省吾身)'이 있다. “나는 날마다 세 번 나 자신을 반성한다. 다른 사람을 위해 도모하는 데 진정과 성실을 다하지 않았는가?(不忠) 벗들과 사귀면서 믿음이 없었는가?(不信) 배우고 전수받은 것을 익히지 않았는가?(不習)". 이를 ‘오일삼성(吾日三省)’이라고도 한다. ‘성(省)’은 반성(反省), 또는 속을 살피고 헤아리는 내성(內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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