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행합일(知行合一)
양명(陽明)의 지행합일(知行合一)의 설은 또한 이유(理由)가 있다. 그러나 그의 말에, “무릇 행(行)이라 하는 것은 다만 착실히 그 일을 하는 것이니, 만일 착실히 학(學)ㆍ문(問)ㆍ사(思)ㆍ변(辨)의 공부를 한다면, 학ㆍ문ㆍ사ㆍ변이 곧 행(行)이다.
학(學)은 그 일을 배우는 것이요, 문(問)은 그 일을 묻는 것이요, 사(思)는 그 일을 생각하는 것이요, 변(辨)은 그 일을 변별(辨別)하는 것이니 행(行)도 또한 학ㆍ문ㆍ사ㆍ변이다. 만약 학ㆍ문ㆍ사ㆍ변을 한 연후에 행한다 한다면 어떻게 공중에 띄워 놓고 먼저 학ㆍ문ㆍ사ㆍ변을 할 수 있을 것이며, 행할 때에 또 어떻게 학ㆍ문ㆍ사ㆍ변 하는 일을 배울 것인가?
행(行)의 밝게 깨닫고 정하게 살피는[明覺精察] 것이 곧 지(知)이며, 지(知)의 참되고 간절하고 돈독하고 성실한[眞切篤實] 것이 곧 행(行)이다. 만약 행하면서 명각정찰(明覺精察)하지 못하면 그것은 곧 명행(冥行, 어둡고 캄캄한 길을 감)이요, 곧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아니하면 속임이다[學而不思則罔].는 것이니, 반드시 지(知)를 설(說)해야 하는 것이요, 지(知)하면서 능히 진절독실(眞切篤實, 참되고 절실하며 그 뜻과 믿음이 두텁고 성실함)하지 못하면 곧 망상(妄想)이요, 곧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아니하면 위태롭다[思而不學則殆].는 것이니, 반드시 행(行)을 설해야 하는 것이나 원래는 다만 합일(合一)의 공부일 뿐이다.” 하였다.
나의 생각으로는 학(學)에는 지(知)ㆍ행(行)을 겸해서 말한 것이 있으니 “배우며 때로 익힌다[學而時習之].”는 등이 그것이다. 사람 중에 효제(孝悌)하는 이가 있어서 내가 효제하는 것을 배우는 것은 과연 행(行)이요, 사람 중에 이치를 궁리하여 글을 읽는[窮理讀書]이가 있음을 보고 내가 궁리독서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 학(學)이 아닌가?
학은 몸으로 배우는 것이 있고 마음으로 배우는 것이 있으니, 학(學)은 다 행(行)이라 할 수 있다. 그런즉 효제 같은 것은 몸의 행(行)이요, 독서궁리 같은 것은 마음의 행(行)이다. 이에서 말미암아 밝게 살피는 데에 이르면 바야흐로 지(知)가 되는 것이니, 행(行)이 지(知)보다 먼저가 될 것도 같다.
그러나 몸으로 효제를 행하는 것을 두고 말하면, 먼저 알고 뒤에 행한다는 것에는 원래 의심이 없다. 만약 독서궁리하는 마음을 두고 행이라 한다면, 저 캄캄하게 무식한 사람이 어떻게 얼른 독서궁리를 할 수 있겠는가?
능히 독서궁리하는 것은 지(知)의 이치에 먼저 통한 것이다. 혹 나보다 먼저 알고 먼저 깨달은 자가 있어 지도하여 하도록 하든지, 혹 자신이 능히 합당히 이렇게 해야 할 것을 깨달아서 독서궁리를 할 수 있다면 어찌 지(知)가 행(行)보다 먼저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람들은, “《소학(小學)》을 먼저 읽고 《대학(大學)》을 뒤에 읽는 것은 곧 행(行)이 지(知)보다 먼저 되는 것이다.” 한다. 나의 생각으로는 《소학》도 먼저 안 사람에게 배운 연후에라야 되는 것이니 곧 지(知)가 행(行)보다 먼저인 것이 이와 같다.
만약 지(知)와 행(行)이 두 가지가 아니라 한다면, 사(思, 생각 사)와 학(學, 배울 학, 가르칠 교)의 사이에 어찌 태(殆, 위태할 태)와 망(罔, 그물 망, 없을 망)의 잘못됨이 있겠는가?
※[역자 주]
1.지행합일(知行合一) : 지와 행이 일치됨을 말함. 주자(朱子)의 선지후행설(先知後行說)에 대하여 왕양명(王陽明)은 치지(致知)의 지(知)는 양지(良知, 타고난 앎)라고 하여, 지(知)를 사물의 위에 두지 않고 지(知)와 행(行)은 병진(竝進, 함께 나란히 나아감)하여야 한다는 것으로서, 알고 행하지 않음은 진실로 아는 것이 아니며, 참된 앎은 반드시 실행을 예상하므로 앎과 행위는 항상 서로 표리(表裏, 겉과 속)가 된다는 설이다. 《類選》 卷2上 人事篇 論學.
-이익(李瀷,1681~1763), '지행합일(知行合一)', 성호사설 제18권 / 경사문(經史門)-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김철희 성낙훈 양대연 (공역) |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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