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驕奢): 교만과 사치
귀히 되면 교만하지 않으려고 해도 교만이 절로 생기고, 부하게 되면 사치하지 않으려 해도 절로 사치하게 된다. 주(紂)가 상저(象箸, 상아로 만든 젓가락)를 만들었을 때, 기자(箕子)가 탄식한 것은 궁실(宮室)과 여마(輿馬, 왕이 타는 수레와 말)의 사치에 조짐이 될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가령 주가 마음대로 하도록 버려 두었다 하더라도 후세의 임금들과 비교하여 주의 사치가 미치지 못함이 있었을 것이다.
자공(子貢)은 “주의 악(惡)*이 이렇게 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였고, 맹자도 “나는 무성(武成 《서경》 편명)에 대해서 두서너 대문만 취할 뿐이다.”라고 하였으니, 이로 본다면 모든 악명(惡名)이 돌아가는 사람에게 무슨 말인들 이르지 않겠는가?
지금 사람도 나라를 멸망시킨 임금을 논할 때면 반드시 걸(桀)ㆍ주(紂)로써 우두머리를 삼는 것은 그가 교만과 사치를 맨 먼저 시작했기 때문이다. 가령 걸ㆍ주가 후세에 나서 그의 행동이 이와 같은 데에 그쳤을 뿐이라면 반드시 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옛날 조양자(趙襄子)가 5주야(晝夜)를 계속해 술을 마시고 병이 생기지 않았다는 것을 자랑하자, 우막(優莫)은 “그래도 주보다는 이틀이 모자랍니다.”라고 하였다. 양자는 다시 “내가 망하겠구나.” 하자 우막이 대답하기를 “걸과 주는 탕(湯)과 무왕(武王)을 만난 때문에 망했지만 지금 천하의 임금들은 다 걸과 주입니다. 걸과 주가 같은 세상을 함께 살아가고 있으니, 어찌 서로 멸망시킬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으니, 그의 말이 역시 옳다.
후세 사람은 보고 듣는 데 습관이 되어 걸ㆍ주를 보통으로 여기기 때문에 망하지 않을 수 있으나, 천하에 탕ㆍ무처럼 공손하고 검소한 자가 있다면 온 천하가 어찌 그에게로 돌아가지 않겠는가?
사책(史策,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문서나 책, 즉, 과거가 기록된 역사)을 보면서도 스스로 반성하지 않고 남의 잘못만 나무라니, 걸과 주가 다시 살아난다면 반드시 입을 가리고 한바탕 비웃을 것이다.
*[역자 주] 주(紂)가 상저(象箸)를 만들었을 때, 기자(箕子)가 탄식한 것 : 이 말은 《사기》 미자세가(微子世家)에 “주(紂)가 처음으로 상아(象牙) 젓가락을 만들자, 기자(箕子)가 탄식하기를 ‘저 사람이 상아 젓가락을 만드니, 반드시 옥배(玉桮)도 만들 것이다. 옥배를 만들면 반드시 먼 지방에서 생산하는 진귀(珍貴)한 물건을 구하여 사용할 것이니, 여마(輿馬)와 궁실(宮室)의 사치하게 될 조짐이 이 상아 젓가락에서 시작될 것이다.’ 했다.”고 한 것을 간추린 것이다.
-이익(李瀷, 1681~1763), '교만과 사치(驕奢 교사)', 『성호사설(星湖僿說) 제10권/ 인사문(人事門)』-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김철희 (역) ┃ 1978
**[옮긴이 주]
1. 주의 악(惡) : 이에 관한 출전은 《논어》 자장(子張)편 제20장이다. 논어의 원문엔 주지악(紂之惡)아닌 주지불선(紂之不善)으로 나온다. 어찌되었건 맥락상 같은 의미다. 원문은 이렇다. 자공이 말하기를, “주의 악함이 그토록 심하지는 않았다. 이런 까닭으로 군자는 하류(下流)에 있기를 싫어한다. 온 천하의 악이 다 그에게로 돌아가기 때문이다."(子貢曰 紂之不善 不如是之甚也 是以 君子惡居下流 天下之惡 皆歸焉/ '공자의 논어', 이준구 역).
2. 맹자/서경의 무성편(武成篇): 서경의 무성편은 무왕에 대한 기사다. 여기서 기록된 역사를 대하는 맹자의 통찰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성현이 기록된 역사를 헤아리고 통찰하는 그 논거가 분명하다. 내용은 이렇다. 맹자가 이르기를 “서경을 그대로 다 믿는다면 서경이 없느니만 못하다. 나는 무성편의 글은 그 중의 두서너 쪽을 취할 따름이다. 인자한 사람은 천하에 그를 대적할 사람이 없고 지극히 인자한 사람이 극도로 인자하지 않은 사람을 쳤는데 어찌 그렇게 피가 방패를 띄워 내도록까지 되었겠는가?(고전번역원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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